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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어디쯤 오고 있을까? 아랫녘에서는 봄꽃 소식이 들린다. 떠난 임이 다시 찾아온 것처럼 이른 봄에 고개를 내민 꽃을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제주에서는 유채꽃으로 노란 꽃물을 들였다고 한다. 3월의 시작과 함께 날마다 꽃 소식이 북상할 것이다.

 

동이 트기 전,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인다. 아나운서의 옷차림은 이미 봄이다. 맑고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겠다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앗싸!"소리가 나왔다.

 

"당신, 산에 가려고 그러지! 나도 따라갈까요? 오늘 같은 날, 소풍 가는 기분으로 가까운 산에 가면 좋겠네! 지금쯤 나무에는 물이 오를 테고! 맑은 공기에 지저귀는 새소리라도 듣고 오면 몸이 가뿐할 것 같아요."

 

산에 가자면 늘 바쁘다며 이런저런 핑계가 많은 아내가 오늘은 별일이다. 부산을 떨며 화장까지 한다. 빨간 등산복을 입은 아내의 모습을 보니 봄맞이 소풍가는 차림새이다.

 

강화도지맥의 들머리 별악봉

 

산악대장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정말 고마운 친구이다. 친구 덕에 나는 유일한 취미생활인 산행을 즐긴다.

 

"형님! 우리 집사람도 나오고, 여러 사람을 불러 모았어요. 세 시간 남짓 코스를 잡았는데, 막걸리는 형님이 챙기시겨."

 

기분 좋은 산행이다. 우리 일행은 별악봉으로 출발한다. 48번 국도를 따라간다. 따스한 햇살이 차창 안으로 스멀스멀 스며든다.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강화 양사면사무소 뒷길이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민간인통제선이라 군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신분을 확인하고서 산불조심하고 즐거운 산행을 하라는 군인아저씨가 친절하다.

 

강화도는 섬이지만 굽이굽이 크고 작은 산으로 지맥을 이루고 있다. 강화도지맥은 양사면 철산리 해안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곳 별악봉에서 성덕산, 봉천산, 시루메산, 고려산, 혈구산, 퇴모산, 덕정산까지 이어진다. 덕정산에서 다시 두 갈래로 나눠 남서쪽 줄기는 진강산에서 최고봉인 마니산에 도달하고, 분오리돈대에서 끝이 난다. 또 다른 줄기인 남동쪽 줄기는 정족산, 길상산을 통과한 뒤 가천의과대학 근처 조산리에서 맥을 다한다.

 

강화도지맥의 들머리인 별악봉. 그동안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자리 잡고 있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 강화 사는 사람조차도 별악봉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호젓하고 정겹고 편안한 산길, 산책로로 최고

 

산길이 그야말로 호젓하다. 오솔길 같은 등산로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푸석푸석 낙엽 밟히는 소리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간간히 들리는 새소리에 가던 길을 멈춘다. 아내도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온다. 숨이 턱에 닿을 즈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자 일행들이 아우성이다.

 

"이제 좀 쉬어요! 아이고 힘들어."

 

오솔길 같은 산길을 타다 갑자기 바위지대를 보니 이색적이다. 발아래 펼쳐진 산하가 그림 같다. 강화지맥이 하나하나 들어나는 것은 물론, 서해바다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지금부터는 산길이 아니라 동네 고샅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바닷바람의 영향인지 산기슭의 나무가 가느다란 관목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정도 되었을까? 철봉, 의자 등이 놓여있는 평지 모양의 쉼터가 나왔다. 이곳이 성덕산이 정상인 듯싶다.

 

쉼터에서 쉬는 일행들 표정에 즐거움이 묻어있다. 아내가 길을 출발하기 전 뭔가를 발견한 듯 목소리가 크다.

 

"여기 작은 이정표 좀 봐요! 저담산, 금정굴, 별악봉! 토끼나 고라니한테 산길을 안내하는 것 같죠?"

 

군데군데 등산로를 안내하는 팻말이 놓여있다. 작은 이정표가 정겹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낙엽 쌓인 푹신한 보료를 선물하려는 마음을 담으려는 바람이 담겨있으리라.

 

산길은 평평하다. 팔짝팔짝 뛰어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임도처럼 넓어진 길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 촉감이 너무 좋다. 쭉쭉 뻗고서있는 소나무 숲에서 뿜어 나오는 기가 온몸을 감싸주는 느낌이다.

 

별악봉 가는 길은 호젓하고, 정겹고, 편안하다. 거기다 아기자기함까지 있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일 수도 있다. 또 정상 가는 길목에 금정굴이 있다. 우측 산비탈 길로 약 50m쯤 내려가니 굴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금정굴은 천연굴일까? 굴의 높이가 1m, 넓이는 약 1.5m쯤 되어 보인다. 조금 들어가니 굴속에 물이 차있어서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칠흑같이 어두운 굴속에는 무슨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무슨 종류의 굴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어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별악봉은 로프를 타고 오른다?

 

산길의 편안함 때문인지 일행들의 발걸음이 씩씩하다. 코앞에 바위산이 가는 길을 가로막는다. 산악대장이 마지막 힘을 내라고 독려한다.

 

"별악봉도 악이 들어가는 산이라 정상은 험해요. 자일을 타는 기분으로 조심해서 오릅시다."

 

30여m의 급경사를 로프를 잡고 암벽을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로프가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 안전하다. 조심 또 조심이다. 앞만 보고 오르니 어느새 정상이다.

 

정상에 오른 일행들이 손을 흔들며 즐거워한다. 해발 167.3m인 별악봉. 정상 표지석 하나 없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발아래 펼쳐진 조망만큼은 환상적이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의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져 서해로 흐르는 모습이 도도하다.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강원도 충북, 경기, 서울을 굽이굽이 지나 이곳에서 바닷물에 몸을 섞는 한강하구의 모습이 아름답다. 민족의 젖줄로 생명을 불어넣고 이제 너른 바다의 품에 안긴다니! 바로 이곳에서 한강의 끝 줄기를 보고 있는 셈이다.

 

강 너머는 북한 땅인 개풍군이다. 코앞에 펼쳐진 북녘 산하를 이웃처럼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 멀리 송악산이 보인다. 손가락을 가리키며 북녘 산하를 바라보는 일행들의 표정에는 통일의 바람이 섞여있다.

 

12시가 안된 시간이지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준비한 보따리를 풀어놓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제일 연장자가 준비한 술을 따른다.

 

"자 여성 동무들은 포도주! 남성 동무들은 막걸리! 강 너머 이북 동무들과도 같이 한 잔하면 좋을 텐데…."

 

나눠먹는 음식이 꿀맛이다. 김밥과 안주로 준비한 음식이 너무 맛있다. 예전 학창시절 소풍 와서 도시락 까먹던 즐거움에 버금간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코끝을 간질이는 봄의 향기가 묻어난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일행이 오늘 산행의 즐거움을 말해준다.

 

"어이! 산악대장! 봄 소풍 잘 왔지? 주말에 나한테 전화해서 없으면 별악봉 오른 줄 알게. 산, 강, 바다, 섬, 그리고 들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있을까나!"

덧붙이는 글 | ▶ 산행에 걸리는 시간 : 양사면사무소에서 출발 별악봉까지 왕복 약 2시간 40분 
▶ 찾아가기 길 : 강화대교 -> 강화읍 -> 48번국도 인화리 방면 -> 양사면사무소
▶ 참고사항 : 민간인통제구역이므로 양사면사무소 입구 초소에서 검문을 거침


#별악봉#양사면#강화군#성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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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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