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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을 일도 별로 없다던 김봉돌씨가 오래간 만에 그의 집에서 활짝 웃었다. 김봉돌씨는 요즘 조경공사 노가다를 하려고 새벽 5시면 일어나 집을 나선다.
▲ 김봉돌 씨 웃을 일도 별로 없다던 김봉돌씨가 오래간 만에 그의 집에서 활짝 웃었다. 김봉돌씨는 요즘 조경공사 노가다를 하려고 새벽 5시면 일어나 집을 나선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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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한 평 없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배운 게 없어 17세 때 노가다에 발을 들여 놓은 지가 어언 35년이 지났으니 노가다로 잔뼈가 굵은 셈이네요. 한 마디로 평생을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거죠. 앞으로도 별일 없으면 힘닿는 데까지 이 일에 종사하다가 죽게 되겠죠. 허허허허."

자신을 '밑바닥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김봉돌(안성 일죽면 송천리, 52)씨의 말에는 35년 전 노가다에 발을 들여 놓은 자신의 인생에 회한이 많은 듯 보였다.

1975년 고향 부산에서 노가다에 입문하게 된 것은 당시 노가다 하루일당 400원을 받으면 한 달 꼬박 일했을 때 1만 2000원이라는 거금(당시 공장 단순생산직 직원들의 월급이 5000원도 채 안 되는 데가 많았다)을 손에 쥘 수 있다는 단순 계산법에 의한 것이었다.

요즘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일터로 향해야 하는 조경 노동을 하는 일용 근로자로 살고 있는 그는 아침 식사는 현장에 도착해 라면으로 때우기가 일쑤다. 그나마 점심시간만큼은 힘쓰는 일꾼들을 위해 준비해주는 푸짐한(?) 식사가 하루 중 가장 진수성찬인 셈이다.

저녁 8시~9시에 집에 돌아가면 씻고 자기 바쁜데다가 따뜻한 식사를 차려주는 사람이 없어 저녁 식사는 굶는 게 생활이 되었다. 그렇게 번 하루 일당은 7만 원 정도.

 "35년 전 보다 나아진 게 있다면 우리 같은 막노동꾼을 보는 일반 사람들의 인식이지요. 옛날에는 사람을 얼마나 낮춰보고 대하든지 힘들었죠. 요즘은 그래도 사람들이 점잖게 대합니다. 하지만, 먹고 살기는 요즘이 훨씬 힘들어요. 가난한 사람들 살기에 인심도 야박해졌고, 물가와 부동산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니 우리 같은 사람이야 평생 노가다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요."

이렇게 힘든 노가다를 그만두고 싶어 실제로 직장 생활도 간간히 했지만, 노가다 때문에 몸에 배인 떠돌이 습성으로 인해 답답한(?)직장 생활을 그만두곤 했다. 이왕 배운 노가다를 통해 성공해보려고 노가다 십장을 하는 등 여러가지 시도를 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한 것은 워낙 자신이 가진 자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전성시대'는 있었다. 지금의 안성 일죽면으로 이사 오기 전(6년 전), 성남에서의 노가다 생활 때는 ‘내 집 장만’의 일념으로 7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조그만 맨션아파트를 마련하는 쾌거를 이룬 것.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커가는 자녀들을 위해 좀 더 경제적으로 나아져보려고 생전 해보지도 않은 슈퍼마켓과 식당을 인수하여 4~5개월 경영하다가 한마디로 말아 먹고 말았다. 경험 부족으로 인해 그동안 노가다 해서 번 돈을 다 날렸고, 사랑하는 아내와 의견조차 맞지 않아 별거하게 되는 아픔까지 겪게 되었다.

수많은 회한 속에서도 6년 전 성남에서의 슈퍼마켓과 식당 경영의 실패가 뼛속에 절절이 사무친다는 그는 그래도 하루 중 노가다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 할 때가 제일 기분이 좋단다. 하지만 일당을 한 달 단위로 받는 날이면 많지 않은 급여에 비해 그동안 미뤄놓은 가정 지출이 많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된다는 별난(?) 고백을 하기도 했다.

"세상에 가난해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나요. 누구나 가난에서 벗어나 잘살고 싶죠. 하지만 워낙 밑바탕이 가진 게 없다보니 뭔가 다시 시작 해 보려고 해도 번번이 막히는 걸요. 이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노가다 말고 이 나이에 뭘 하겠습니까. 그나마 몸뚱이가 재산인데 자꾸만 몸뚱이는 약해지고 아픈 데도 점점 많아지니 걱정이지요."

그래 그렇다. 누군들 궁핍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궁핍한 가난에서 벗어나 잘 살고 싶겠지. 하지만 뜻대로 되질 않아 그럴 것은 자명한 일.

입에 풀칠하기 위해 노가다를 하고 있는 그의 인생을 아무리 둘러봐도 희망을 말하기엔 너무나 역부족인 거 같지만, 그래도 그가 힘을 내고 살아가는 것은 노가다를 해야 생존할 수 있고, 노가다 때문에 경제적인 힘이 되어 그나마 잘 커 준 아들(현재 군 입대 준비 중)과 딸(현재 고2)이 옆에 있기 때문이리라.

사실 우리나라에 있는 아무리 좋은 아파트와 주택이라도 결국 그들의 땀방울과 손길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의 피땀 어린 노고가 있었기에 현대인들의 안락한 주택생활이 보장된다는 걸 감안하면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할 법도 한데 그런 자부심조차 느낄 수 없는 척박한 상황이 그들의 현실이라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의 말대로 ‘밑바닥 인생’이 없이 어디 ‘위 바닥 인생’이 존재하겠는가. 밑바닥은 그야말로 한 사회에 있어서 가장 밑을 차지하고 있는 기초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기에 노가다 35년의 그의 인생에게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밑바닥 인생이라 자처하는 막노동꾼들이 웃을 수 있는 성숙한 사회를 하루 속히 일궈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3월 1일 김봉돌씨의 집에서 이루어 졌으며, 김봉돌 씨는 우리 '더아모의집'과 함께 더불어 나누고 사는 분입니다.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태그:#김봉돌, #더아모의집, #송상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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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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