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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들이 왜 대단한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림이 주는 느낌과 전하는 이야기는 암호 같고 큰 의미 찾기는 어렵다. 그림과 사람 사이엔 넘어설 수 없는 강이 있고 그 사이는 화해할 줄 모르는 거 같다. 하지만 <나도 타오르고 싶다>(2001. 한길아트)는 그림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며 편안하게 그림세상 속으로 초대를 한다.

벨라스케스, 루벤스, 렘브란트, 고갱, 고흐, 고야, 드가, 모네, 마네, 피카소, 마그리트, 샤갈, 모딜리아니, 달리, 클림트 등이 소개된 차례를 보면 화가라는 것은 알겠는데, 모네가 마네같고 고갱이 고흔지 헷갈린다.  아니, 어쩌면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더 많을 수 있다.

멀게만 느껴지던 화가와 그림들을 지은이 김영숙씨는 엄마가 딸에게 알려주듯 자상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2006)이 생각난다. 최강희가 연기한 여주인공이 이 책을 보고 데이트했다면 모딜리아니를 알았을 텐데.

방종한 삶을 살았던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여자들은 무표정하면서 목선이 길쭉하게 늘어나 있는데, 14살 연하의 아내를 그린 ‘잔 에뷔테른의 초상’(모딜리아니. 1918)은 왜 묘한 분위기와 눈빛을 지녔는지.

초기에는 밀레를 따라 그려보기도 했고 파리에 머물던 시절에는 쇠라로 대표되는 신인상주의의 점묘기법을 흉내 내던 고흐, 드디어 자기답게 그리기 시작한 그림에서 물감튜브 하나씩을 그대로 짜 바른 듯, 고흐를 무겁게 짓눌렀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놀라운 두께, 어둡고 우울한 성격이지만 그 감성마저 매혹으로 표현한 그 색채.

어느 날, 서른다섯에 다섯 명의 자녀와 아내를 버리고 타히티라는 섬으로 ‘예술’하러 떠난 증권회사 직원, 고갱. 고요하고 평온한 색을 쓰지 못하고 캔버스를 뚫고 나올 듯 강렬한 색으로 화면을 뒤덮게 한 그를 덮친 운명.

거꾸로 세워진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고 놀라서 추상화를 개척한 칸딘스키, 전혀 엉뚱한 대상을 뜻하지 않은 곳에 둠으로써 낯설음을 불러일으키는 데페이즈망이란 기법을 잘 이용한 초현실주의자 마그리트, 옷을 입은 마야와 옷을 벗은 마야의 모델을 찾기 위해 무덤의 묘를 파헤치는 소동, 아름다운 꽃들을 늘 크게 그린 오키프, 사람들의 여러 해석을 두고 그냥 자신이 느끼는 대로 보면 된다고 한 피카소, 화가 난 군중들이 그림을 찢으려 했던 마네의 올랭피아, 빛의 대가인 렘브란트의 불우한 말년, 삐딱선을 타며 스페인 톨레도에 정착하여 그리스 양반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엘 그레코, 가난을 숭고하게 그린 밀레, 기존의 모든 가치들을 부정하고 예술운동인 다다이즘을 대변한 뒤샹과 유난히 발달한 서양 여자누드 이야기까지.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명화와 함께 있으니 그저 먼 예술이었던 그림이 어느새 가까운 감동이 되었다. 다정하고 친절한 문장들은 그림과 화가, 그리고 그림에 얽힌 배경을 속삭이며 설명해주는 나만의 안내원 같다.

‘가여운 우리의 달리는 성불능이었답니다. 대충 감이 잡히지 않습니까. 그림 속의 사물들이 왜 저렇게 다 처져있는지.’

‘유대인적인 신비주의,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도 샤갈을 쉽게 좋아하지요. 우리 딸도 샤갈을 아주 좋아합니다. 제가 혼자서 미술공부를 시작한 것도 샤갈 때문이었지요. 한데 저희 남편은 샤갈보다 빼갈이 더 좋다더군요.’ -책에서

그림이 사는데 뭐 도와주냐고 물을 수도 있다. 마치 사랑이 밥 먹여주냐는 식상한 말과 비슷하게. 사는 재미는 자기하기 나름이다. 그림보기는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될 수 있다. 따사로운 오후, 가벼운 차림으로 곳곳에 숨어있는 미술관으로 봄마중 가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www.bookdail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도 타오르고 싶다 - 그림 혹은 내 영혼의 풍경들

김영숙 지음, 한길아트(2001)


#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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