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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날, 봄햇살이 마음껏 피어났다. 올 겨울이 제법 길게 이어지면서 지난해 이맘때 만났던 풀꽃들을 그리움으로 기다린다. 지난주에 가까운 산을 다녀왔지만 계곡 얼음장 밑으로 가녀리게 흐르는 물소리만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2월을 보내고 맞이한 3월 첫날, 화창한 봄날이 사나흘 이어졌으니 부지런한 풀꽃들이 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봄, 그냥 맞이할 일이 아니라 찾아 나설 일이다.

 

 
봄을 찾아나선 그 길, 숲은 지난해 떨어진 낙엽들로 수북했다. 봄햇살에 잘 마른 낙엽들이 부스럭거리며 바스러지고, 아주 간혹 푸른 이파리들이 하나 둘 피어나고 있다. 어딘가에 피어 있을지도 모를 풀꽃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양지바른 곳에 눈길을 두면서 천천히 숲을 걸었다.
 
약간 비탈진 숲길을 걷다 미끄러졌다. 아직도 낙엽 속은 겨울 흔적이 남아있어 얼음이 얼어있었던 것이다. 미끄러지며 낙엽을 밀어낸 그 자리에 '아, 작은 새싹들의 생명의 몸부림'이 들어있었다.
 
 
어디보자, 가만히 살펴보니 '변산바람꽃'의 새싹들이다. 낙엽들 사이로 삐죽거리며 올라온 변산바람꽃의 새싹과 꽃몽우리를 앙다물고 피어난 새싹은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낙엽 속에서 어제 아니면 그제 정도 싹을 올린 것 같은 변산바람꽃의 새싹은 처음이다.
 
신비롭다. 마침 햇살이 따스하니 작은 새싹 감기 걸릴 일도 없을 것 같아 따스한 봄 햇살 고루고루 쐬라고 한참을 바라보다 낙엽으로 살며시 덮어주었다. 저것들이 이제 일주일 아니면 열흘이 되기 전에 옹기종기 피어나 봄을 노래하겠구나. 이제니 줄줄이 이어질 풀꽃들의 걸음걸이를 찾아 다닐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휘파람이 절로 난다.
 
 
낙엽 속에는 아직 그 작은 생명의 몸부림만으로는 어떤 꽃을 피울 것인지 가늠할 수 없는 새싹들도 있었다.
 
새싹은 부드럽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은 언 땅을 녹이고, 돌멩이를 들어올린다. 새싹의 몸부림, 그것은 이렇게 수줍은듯 고개를 숙이고 시작하지만 고개숙임이 오히려 당당하게 보인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쉬운 법이다. 새싹이 처음부터 곧게 자라려고만 했다면 저 흙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과 대면하기까지 미로와도 같은 공간들을 헤쳐나올 수 있었을까? 아니다. 돌을 만나면 피하느라 줄기가 휘고, 낙엽더미 속에서도 감히 들어올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햇살이 들어오는 빈 공간들을 찾아 구부러지며 고개를 쳐들지도 못하고 자랐을 것이다.
 
그러다 봄햇살과 대면하기 시작하면 거침없이 돌멩이도 들어내는 것이다. 새싹의 몸부림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숨죽인 듯 침묵하던 겨울을 보내고 이제 막 몸부림을 치는 그 생명의 기운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지난해 봄에는 저 낙엽도 신록의 빛으로 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파리에 봄과 여름과 가을을 새겨놓았을 것이며 계절따라 모양도 색깔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가을 날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 나무와 이별을 했을 터이다.
 
잎벌레들의 먹이가 되고, 잎맥만 남아서도 무슨 미련이 남아 빈가지에 의탁하고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 긴 겨울 칼바람이 많이도 불었을 터인데 어찌 저렇게 겨울을 났을까?
 
차갑지 않은 봄바람이 '살랑' 하고 숲으로 불어올 때 그는 바람을 따라 휘적거리며 이미 흙의 빛깔을 닮은 낙엽들 위에 기대어 앉았다. 마치 '이제 봄!' 하며 긴 겨울이 갔으니, 이젠 자기도 흙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결심을 하고 그 길을 가는 듯하다.
 
낙엽 속에서 꿈틀거리는 봄, 그를 본 것은 행운이었다. 그 행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듯 낙엽을 덮어주고 돌아오는 길,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그들의 춤사위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태그:#새싹, #변산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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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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