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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이란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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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바쁜 하루가 될 것 같다. 뜨거운 태양이 솟아오르기 전, 자전거를 끌고 필요한 정보들을 알아보러 다니려 하기 때문이다. 여행 정보를 위해 파키스탄에 파키스탄 관광개발조합(PTDC, Pakistan Tourism Development Corporation)가 있다면 이란엔 이란여행관광기구(ITTO, Iran Touring and Tourism Organization)가 있다.

물어물어 찾은 ITTO 사무실. 언제나 그렇듯, 여행정보 사무실은 준비된 자들에게만 열려있는 법이다. 궁금한 사항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런 장소는 빛을 발한다.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을 종이 한 장에 앞뒤로 정리한 후 사무실을 찾았다.

말이 안 통해 고생했던 자헤단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짐짓 걱정했건만, 다행히 영어를 잘하는 친절한 이란 아가씨가 둘이나 되었다. 그리고 비록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대화였지만, 대부분의 의문 사항은 풀렸다.

이 친절한 아가씨들의 이름은 엘라즈와 나히드. 둘다 나이는 열일곱으로, 서로 단짝 친구라고 했다. 나중에 영어 가이드가 되려 한다는 이 발랄한 아가씨들은, 지금 이 곳 여행자 사무실에서 실습을 하는 중이다. 둘 다 워낙 친절하고 싹싹한 아가씨들이었기에, 영아와 잠시 얘기를 나눈 후 함께 점심을 하기를 청했다.

일단 이들의 흔쾌한 대답을 얻긴 했지만, 둘 다 일이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점심시간에 맞춰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한 후 우리는 그 곳을 나왔다. 그리고 오후에 다시 만난 우리는 이곳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케밥집을 찾았다.

발랄한 이란 아가씨들과의 만남... 역시 열쇠는 사람

 메뉴판을 받고 망연자실. 이란 문자를 모르는 건 차치하고 이란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도 사용하지 않는다.
 메뉴판을 받고 망연자실. 이란 문자를 모르는 건 차치하고 이란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도 사용하지 않는다.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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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를 비롯한 중동 지역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케밥'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겠지만, 동(아시아)에서 서(유럽)로 움직이고 있던 우리는 이란에서 처음으로 케밥을 만났다.
 터키를 비롯한 중동 지역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케밥'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겠지만, 동(아시아)에서 서(유럽)로 움직이고 있던 우리는 이란에서 처음으로 케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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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시라즈(Shiraz)의 현지인 사이에선, 꽤 유명한 레스토랑인 듯 손님들이 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란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나 됐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글자와 말이 너무나 낯설기에 적응이 쉽지 않다. 게다가 이렇듯 번듯한 식당에서 제대로 된 주문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현지인과 함께 이런 번듯한 식당에 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단지 점심 식사나 함께할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이 두 아가씨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오늘은 엘라즈네 집, 그리고 내일은 나히드네 집 순이다.

벌써 집에 전화를 해 두었다며 우리보다 더 좋아하는 그들을 보며, 우리 또한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언제나 문을 여는 열쇠는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 우리는 드디어 이란 속으로 들어간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란의 대표적인 시인 하페즈(Hafez)의 무덤을 방문한 뒤 엘라즈네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엘라즈의 어머니가 얼마나 환영을 하는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금세 마음이 푸근해졌다. 엘라즈의 집은 꽤 잘사는 중산층인 것 같았다. 그리고 집안을 돌아보는 동안 벽에 걸려있는 식구들의 사진을 구경하며, 가족 구성원들을 소개받았다. 사진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잘 교육받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집안엔 온통 붉은색 페르시안 카펫이 깔려있는데, 방이며 거실이며 손님을 맞는 응접실까지 모두 붉은색 페르시안 카펫으로 도배되어 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느낌이랄까! 현대적인 가전제품들과 전통을 상징하는 붉은색 페르시안 카펫들이 만들어 내는 고풍스럽고도 아늑한 분위기. 게다가 집안엔 가족 구성원들이 하나하나 손수 만들어 진열해놓은 수작업 품들이 그득했다.

 근처 동산에서 바라본, 시라즈 전경.
 근처 동산에서 바라본, 시라즈 전경.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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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라즈의 바자르(전통시장)를 방문했을 때 만난 페르시안 카펫 상점
 시라즈의 바자르(전통시장)를 방문했을 때 만난 페르시안 카펫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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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끼리 결혼하는 건 당연한 일... "한국은 안 그래?"

엘라즈네는 대가족이었다. 특이한 것은, 주로 결혼사진을 중심으로 식구들의 사진들이 집안 곳곳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사진을 보며 설명을 듣던 우리는 그만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첫째 언니의 남편과, 둘째 오빠의 부인이 남매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게다가 형부와 올케는 엘라즈와 사촌지간이라고 했다. 근친결혼, 즉 사촌끼리 결혼을 한 셈이다.

이란 대가족 구성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부부가 한 집안사람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 결속력도 대단해 보인다. 근친간의 결혼을 통해, 집안의 비밀을 유지하고 재산이 분산되는 걸 막을 수 있고, 또한 결혼 전부터 가족끼리 알고 지내던 사이다 보니,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아껴줄 수 있기에 그 결속력은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한다.

깜짝 놀라는 우리의 반응을 보며, 한국은 그렇지 않냐고 되물으며 놀라는 건 오히려 엘라즈다. 지금은 폐지된 한국의 동성동본끼리의 결혼금지법에 대해서 잠깐 얘기를 해주었더니 엘라즈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으로 답해왔다. 

엘라즈의 형제들은 룩셈부르크에 가 있다는 오빠 내외를 제외하곤, 결혼 후에도 모두 한 집에서 산다고 했다. 어머니, 아버지, 오빠 셋, 언니 둘,  그리고 그 자식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한 집에 살고 있으며 삼촌 고모들이 다 집 근처에 모여 산다고 했다.

차를 마시며 엘라즈의 통역으로 어머니 그리고 엘라즈의 언니와  한참을 애기하고 있을 즈음, 가족 구성원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기소개와 인사. 벽에 걸린 사진에서 본 사람들을 이렇게 직접 만나니 낯설지도 않고 더 반가운 것 같다.

하지만 하도 여럿과 인사를 한 데다, 누가 한 집안사람 아니랄까, 서로 다, 비슷하게 생긴 바람에 나중엔 누가 누군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특별한 요리를 대접한다고 바쁘고, 다른 식구 구성원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느라 바빴다.

 엘라즈 집안에 걸려있던 형제, 자매들의 결혼사진
 엘라즈 집안에 걸려있던 형제, 자매들의 결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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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 한 명이 이사라도 가면 몇날며칠 눈물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본 결혼식 장면은 전통적인 결혼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네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하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결혼식이라는 행사가 완전 집안 식구들끼리의 잔치라는 것이다. 친구들보다는 형제자매·사촌들이 모여서 결혼식을 주관하고 진행해 나간다. 하나의 가족 잔치로 즐기는 듯한 모습이다. 부모 양측의 가족 구성원들이 결혼식에 모두 모이면 150명이 넘는다고 했다.

이들의 끈끈한 가족 연대감이 좋아 보이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개인적인 판단 하에 독립적인 삶을 살기에는 쉽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일을 하고 싶으면, 언제나 부모 형제의 의견을 먼저 물어야 하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니!'

부모님의 동의도 얻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은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한다는 걸, 이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빠져나오기 쉽지 않겠는 걸…, 설령 할 수 있다고 한들 엄청난 아픔이 따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예를 들어 가족 중에 한 명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면 다른 식구들은 몇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운다고 했다. 심지어는 역전이나 공항에서 울고 있는 이 가족들에게, 지나가던 행인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기라도 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게 되었냐며 함께 울고 슬퍼한다고 한다. 이란인들 뿐만 아니라 무슬림들에게 있어, 형제애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유별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혼식이 끝나면, 이 대가족은 모두 함께 밤을 지새우는 춤판을 벌인다. 그러고는 신랑 신부가 코란(이슬람의 경전)의 밑을 통과하는 의식을 마쳐야 결혼이 완성된다. 이란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 뿐 아니라 어디 먼 길을 떠날 때는 나그네의 안녕을 위해 이렇게 코란의 밑을 통과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 관례다.

해서 이곳 시라즈에는 코란이 들어있는 코란 게이트라는 건축물이 따로 있는데, 시라즈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차를 타고 이 게이트  밑을 지나게 되면 코란의 밑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밥 먹다 말고 흥겨운 춤판

결혼식 테이프를 보고 있는데 이 집의 대장 격인 맏아들 알리가 돌아왔다. 35살의 회계사인 알리는, 한 눈에 보아도 이 집안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아버지가 돌아오셨고 주변의 삼촌과 고모들까지 우리를 직접 보러 방문해 주셨다.

나타난 사람들은 온갖 궁금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떠하더냐? 직업은 뭐냐? 정말 자전거를 타고 다니냐? 그런데 어떻게 그 많은 경비들을 감당하느냐? 나쁜 사람들을 만나진 않았느냐? 이란은 어떠냐?" 등등.

우리가 답을 하는 사이, 저녁 식사를 위해 거실의 카펫 위엔 방수천 같은 보자기가 펼쳐졌다. 우리의 '밥상'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는 보자기다.

모두 15명 정도의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했는데, 식사 도중 TV에서 이란 전통 음악이 나오자, 알리가 외동딸 사라에게 손짓을 했다. 사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일어나 넓은 거실로 나간 후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고, 둘째언니의 두살 난 아들인 막내둥이 구로시도 아무것도 모른 채 흥이 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에 흥이 난 알리와 엘라즈까지 가세해 모두 밥을 먹다 말고 흥겨운 춤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춤사위는 마치 아주 다정한 일상의 한 부분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우리가 그동안 생각했던 원리주의 종교의 나라 이란의 이미지가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1979년 호메이니의 원리주의 이슬람 혁명 이후, 나라의 분위기가 많이 엄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만난 이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엄하지는 않았고, 사람들의 표정과 미소 속에서 '이들도 이들 나름대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알리가 가족들과 춤추는 사진
 알리가 가족들과 춤추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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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 대한 편견, 인류의 5분의1을 오해하는 것과 마찬가지

지금 현재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계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2억에 달한다. 단 한번도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본 적이 없었던 그들을 나는 지금까지 무슨 기준으로 판단하고 저울질했던 것인가? 그들에 대한 편견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근대사를 주도했던 서양인들의 시각으로 평가 절하된 이슬람 세계, 이 평화롭던 이슬람 세계가 서구 열강에 휘둘리기 시작한 것은 석유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에너지를 확보하려는 열강들의 영향력과 이권다툼'이라는 드러나지 않는 근원적인 이유를 모른 체, 그들이 보도하는 자료로만 이슬람 세계를 판단하고 평가절하한다면 인류의 5분의1을 오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사람들에게 나쁘게 살라고 가르치는 종교는 없다. 문제는 항상 정치적 군사적으로 종교를 이용하려는 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싸잡아서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느덧 시계바늘은 11시를 넘어섰고, 자고 가라는 가족들의 부탁을 뒤로 하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리와 엘라즈가 직접 차로 우리를 호텔까지 데려다 주는 것으로 감동적인 초대의 밤은 끝이 났다.

 시라즈에서 만난 엘라즈네 집에 초대를 받은 날. 또한 엄청난 대식구를 만난 날이기도 했다. 근처에 사시는 친척 분들까지 모두 저희를 보러 오셨답니다.
 시라즈에서 만난 엘라즈네 집에 초대를 받은 날. 또한 엄청난 대식구를 만난 날이기도 했다. 근처에 사시는 친척 분들까지 모두 저희를 보러 오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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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일 엘라즈, 나히드와 방문했던 근사한 레스토랑. 예전엔 시라즈의 공용 목욕탕 이었다는데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개인적으론 영화 벤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킴.
 후일 엘라즈, 나히드와 방문했던 근사한 레스토랑. 예전엔 시라즈의 공용 목욕탕 이었다는데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개인적으론 영화 벤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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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자르(전통시장) 입구. 이 문이 닫히면 흙으로 지어진 평범한 건물로 밖에 안 보인답니다.
 바자르(전통시장) 입구. 이 문이 닫히면 흙으로 지어진 평범한 건물로 밖에 안 보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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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에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스크와, 이란의 국민차 Paykan
 이란에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스크와, 이란의 국민차 Payk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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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 긴 여정(이란,인도/네팔,터키편)- 은 작자의 홈페이지(http://www.bikeworldtravel.com/)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그리고 SLR CLUB(http://www.slrclub.com/)에서 연재가 이루어 집니다. 오마뉴스는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국이랑 영아#자전거여행#자전거세계여행#세계여행#이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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