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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쌩쌩 지나는 곳에 쓰러져 있는 할아버지

 

지난 주 토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오후 6시, 하늘은 우중충하니 흐렸고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습니다. 운전을 하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소리를 치며 급하게 차를 세웠습니다.

 

 "아이쿠! 할아버지가 넘어졌네, 넘어졌어!"

 

 피곤해서 눈을 감고 있던 제가 두리번거리는 사이 남편은 차를 세우자마자 부리나케 할아버지께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넘어져 계신 곳은 차가 쌩쌩 왕래하는 매우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남편은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시는 할아버지를 간신히 부축해서 우리 차까지 모시고 왔습니다. 할아버지를 부축해서 오는 사이에도 차들은 전 속력을 내며 두 사람곁을 위험하게 스쳐지나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앞으로 엎어지셨는지 인중에 피가 조금 비치고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습니다. 휴지로 대강 닦아 드리고 따뜻한 차 안에서 조금 안정을 취하게 한 후 댁이 어디인지 여쭈어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눌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집 뒤에 땅굴을 파고 있어…."

 

남편은 일순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아하! 할아버지댁 근처에 무슨 공사를 하고 있나보다"하고 혼자 명쾌한 해석을 내렸습니다.

 

우리 집 근처에는 땅을 파는 공사를 하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떨어진 곳일 거라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 할아버지 댁 전화번호를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가족들께 전화해서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전화 번호 몰라…."

"그럼 주민등록증이나 신분증 있으면 꺼내보세요. 주소가 있으면 찾을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주머니를 뒤져서 지갑을 꺼내셨습니다. 주민등록증을 보니 본적이 경북 어딘가 였습니다. 경북 경산이 고향인 남편이 펄쩍 뛰면서 마치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라도 만난 듯 반색을 하며 소리를 쳤습니다.

 

 "아이구, 할아버지 고향이 경북이네요. 제 고향도 경북 경산입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고향이니 경산이니 도무지 아무 생각이 없으신 듯 덤덤하니 응… 한마디 하시곤 초점없이 앞만 보시고 계셨습니다.

 

간신히 찾은 파출소, 그러나 경찰 반응은 무덤덤

 

남편은 할아버지 주민등록증에 적힌 주소인 번동 파출소를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번1동 파출소를 언젠가 내가 한 번 본 것 같아! 할아버지! 파출소에 가면 그 분들이 할아버지 댁을 금방 찾아드릴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시자 남편은 어떻게든 할아버지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릴 요량으로 또 고향 이야길 부산스레 꺼냈습니다.

 

"할아버지! 제 고향이 경산이에요. 할아버지가 사시던 곳하고 가까워요!"

 

할아버지는 여전히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할아버지를 만나기 조금전까지만 해도 늦은 아침을 먹고 점심을 건너 뛴 남편은 너무 시장해서 빨리 집에 가서 밥 먹자고 야단이었는데, 이제는 오로지 할아버지를 댁으로 모셔다 드려야겠다는 일념 뿐인 듯 파출소를 찾아서 아파트 단지를 지나 골목을 돌고 돌았습니다.

 

그러나 간신히 찾아간 그 파출소는 폐쇄된 곳이었습니다. 이런…. 다시 번2동 파출소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길 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물어 간신히 찾아갔으나 그 파출소도 현관문이 자물쇠로 잠겨있고 이런 팻말이 붙어있었습니다.

 

'용무가 있으신 분은 옆에 있는 비상 전화로 연락하세요.'

 

남편은 옆에 있는 노란 비상전화기를 집어들고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여보세요! 여기 길을 잃은 할아버지를 모셔왔는데 빨리 와서 좀 도와주세요!"

 

그러나 한참이나 지나서 온 순경아저씨는 대뜸 이러는 것입니다.

 

 "아니, 112에 신고를 하셔야지 왜 여기까지 모시고 오신 거예요?"

 

 길을 잃고 길가에 넘어져서 피를 흘리는 할아버지가 내 고향 내 친아버지같이 여겨져서 오로지 댁이 어딘지 그곳까지 모셔다 드려야겠다는 일념으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허겁지겁 달려온 남편은 일순 허탈한 표정이 되더니 금방 정신을 차리고 한마디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112에 신고해야 되는 줄 몰랐습니다. 아무튼, 여기 할아버지 주민등록증이 있습니다. 선생님들도 찾을 수 있지요? 할아버지댁을 꼭 좀 찾아주십시요!" 

 

그 누군들 나이 먹지 않으랴

 

그러자 우리 차 안을 들여다 보던 한 순경아저씨가 생뚱맞게 이런 말을 말했습니다.

 

"교회 다니세요?"

 

그러면서 우리 부부 얼굴을 쓱 한 번 훝어보고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갔습니다.

 

두 순경아저씨를 따라 가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서 있던 남편이 차에 올랐습니다. 오르고 나서도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해는 어느덧 다 넘어가고 어둑한 거리의 앙상한 가로수를 내다보며 우리 둘 다 그렇게 한참동안 하염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찬 바람 속에서 차들이 쌩쌩 달려가는 차도 한 귀퉁이에 엎어져 있던 할아버지 모습이, 콧물을 줄줄 흘리던 할아버지 모습이 이 글을 적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할아버지 댁은 어디였을까? 그 누군들 나이를 먹지 않으랴. 할아버지는 무사히 가족을 만나셨을까? 그 할아버진들 팔팔한 젊은시절이 없었으랴. 가슴이 져미듯이 아려옵니다.


태그:#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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