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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2006년 7월에 발족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조사위)가 7명의 친일 재산(시가 41억)을 몰수, 국가 귀속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번 결정은 '조사위' 발족 후 네 번째로, 제89주년 3·1절을 앞둔 시기라서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28명으로부터 몰수된 토지는 모두 563필지 360만2062㎡로, 시가로는 771억원(공시지가 343억원)에 달한다고 하는군요.

해방 이후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던 친일의 역사를 청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특별법'이 공포되자 친일파 후손들은 토지반환 소송이나 땅을 팔아버리는 수법으로 법망을 피해오고 있어 보는 이들을 분노케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조상은 독립운동을 후원했다고 억지를 부리는 파렴치가 있는가 하면, 특별법은 위헌이라며 위헌심판 제청신청을 내는 철면피도 있더라고요. 땅을 찾기 위해 모임을 갖고 의견을 조율하는 후손들도 있다는 보도에는 입이 벌어질 따름입니다.

친일파 후손들이 후안무치한 행위를 일삼고 있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라며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실용외교'가 아니라 '굴욕외교'를 자처하는 꼴이라서 이 대통령의 역사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대통령은 물론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회 답변을 보면 굴욕의 역사를 망각하고 굴절된 역사를 외면하는 것 같아 심히 우려됩니다. 하여 경각심을 일깨우는 의미에서 일제의 식량 수탈을 상징하는 도시 군산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敵産家屋)들을 둘러봅니다.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 조종안

가까운 친구가 30년 넘게 살았던 집이라서 자주 다닐 기회가 있었는데 '히로쓰 가옥'과 함께 일식 주택의 특성이 가장 잘 보존된 가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가옥 내부에는 일식 다다미를 온돌로 개조한 방이 3개이고 서재로 쓰이던 큰 응접실이 하나 있는데 천정이 높은 게 특이합니다.

특히 안방에 오시이레(벽장)와 도코노마(다다미 방의 정면을 높여 꽃이나 족자를 걸어 놓는 곳)가 설치되어 있고 현관에 계단이 있으며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의 배열은 일본인 집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몇 년 전 친구가 차를 구입했는데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차고로 사용하겠다며 향나무를 베어버리고 담을 쳐놓으니까 답답하게 느껴져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건축 설계사였던 아버님의 유지를 받들어 잘 보존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 조종안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 조종안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 조종안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 조종안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 조종안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 조종안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 조종안

 군산 내항 휴게소. 휴게소에 탱크라니.. 시청 담당자에게 전화라도 한 번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군산 내항 휴게소. 휴게소에 탱크라니.. 시청 담당자에게 전화라도 한 번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 조종안

군산 내항 휴게소입니다. 누구와 전투를 벌이려는지, 포를 쳐들고 있는 3대의 탱크가 무척 거슬리네요. 휴게소 넘어가 만주로 가는 쌀을 실어 나르던 철도이고 탱크 뒤로 보이는 건물이 호남제분(현 한국제분)입니다. 호남제분 이용구 사장은 유명한 '히로쓰' 가옥의 소유주이기도 하지요.

일제의 쌀 수탈이 절정기에 달했던 1930년대에는 5만석 이상을 생산하는 가등, 조일, 조선, 화강, 육석 정미소 등이 이 부근에 모여 있어 '정미소거리'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부두의 노동자들까지 합하면 인구밀집지역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1930년대 이 부근은 밤에도 부두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느라 불을 켜놓아 대낮처럼 밝았다는 말을 옛날 어른들에게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불야성을 이룬 부두를 구경하려고 공원에 올라가거나 째보선창에 나갔다는 말을 들을 때는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3.1절에 생각하는 절름발이 훈장 추서

친일행적이 뚜렷한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는 62년에 건국공로훈장 복장(2등급)을 추서 받았고, 3·1절을 상징하는 유관순은 3등급에 해당하는 건국공로훈장 단장을 추서 받았는데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식인 하나 보기가 어렵습니다.

김성수-유관순의 절름발이 훈장 추서는 친일 인사들이 심사에 다수 포함된 점을 문제로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50년 가까이 지나도록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거기에 국민 다수의 선택을 받아 새로 취임한 대통령은 뜬구름 잡는 식의 '경제 살리기' 구실을 내세워 혹세무민하고 있으니 후손들에게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오호!


#적산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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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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