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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알람 소리가 울렸다. 이게 웬일? 약속이 아침 6시 40분인데, 30분에 눈을 뜬 것이다. 휴대폰 확인을 해보니 월∼-금요일까지만 울리게 해놓은 것이다. 나도 모르게. 늦는다고 우선 문자를 보내고 서둘러 준비를 했다. 이도 닦는 둥 마는 둥 로션도 못 바르고 챙겨놓았던 배낭만 대충 메고 나갔다.

 

 

봉정암에 가기로 했는데 늦잠을 잔 것이다. 다행히 10여분 내에 준비를 마치고 만나서 출발을 했다. 눈이 많이 쌓였을 텐데 잘 갈 수 있으려나? 아이젠은 확실히 챙기고 이번엔 최대한 짐을 줄여서 출발했다. 지난번 함백산행 때와 같은 고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인생관을 바꿨다.

 

너무 충분하게 준비를 해가지 말고, 살짝 부족한 듯하게 떠나서 상황에 부닥쳐 해결해 나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그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었다. 아침 7시쯤 출발해서 9시 반쯤에 용대리에 도착해서 순두부 백반으로, 넘어가지 않는 아침을 먹고 봉정암 사무장님한테 전화를 했더니 근처 식당에 계시단다.

 

 

백담사까지 버스운행 중지 기간이라 봉정암에 가는 불자들을 위해서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눈이 온 다음에는 길을 내주느라 봉정암에 오르신다고 했다. 신심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지 싶었다. 고마웠다.

 

백담사까지 7킬로미터 남짓한 길을 두어시간 걸어갈 뻔 한 것을, 시간도 체력도 절약한 셈이었다. 밥도 먹었겠다, 시간도 벌었겠다, 백담사지점부터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눈은 많이 쌓였지만 경치는 좋았다. 그리고 작년 태풍으로 곳곳이 참혹하게 쓸린 이후 공사를 해놓아서 걷기도 편했다.

 

 

중간에 눈이 흩날리는데 친구가 돌아가자고 할까 봐 걱정이 살짝 들었다. 은근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곡으로 올라가는데 건너기 힘든 곳에는 아치형 나무 다리들이 놓여 있었고, 걷기가 힘든 모서리길(?)등에는 난간을 둘러 위험하지 않도록 해놓았다. 쇠붙이로 되어 있던 것이 나무로 되어 있어 보기에도 좋았다.

 

 

눈 때문에 아이젠을 끼고 걸어선지 나무들이 많이 패이고 나뭇결이 떨어져 나온 곳이 제법 있었다. 엄청난 공사비를 들여 한 일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조금 더 가니 폐타이어를 잘라 엮은 것으로 덮어서 다행히 보호가 되도록 되어 있었다.

 

 

무리하지 않고 체력에 맞춰 걸었더니 3시 40분쯤 봉정암에 도착했다. 기도를 드리러 왔다고 하니 총무 스님(나중에 공양주 보살한테 들어서 알았다. 이분이 성원스님이란걸)이 들어오라고 하신다. 우리를 한 눈에 꿰뚫어 보시는 듯했다. 날라리 신도임을 아시는 거겠지.

 

 

절에 갔을 때 기본적인 인사법이며, 한국의 불교에 대한 얘기 등등을 말씀하시고, 우린 다소곳이 앉아서 들었다. 방은 한둘이 앉으면 적당한 곳에 다른 일행을 포함해 넷이서 앉았다. 발을 펴기도 민망하고 다리는 저리고. 겨울엔 추워서 법문은 따로 안 하신다며 이것이 법문 대신이라고 하셨다.  얘기는 끝날 줄 몰랐다.

 

사람들이 봉정암에 오는 것이 결국은 기복 신앙 때문이 아니냐고 하실 땐 찔끔했다. 그런데 어차피 대부분의 종교가 기복신앙인 것은 인정해야 할 일이지만 기왕이면 제대로 된 기복을 해야 되지 않겠냐고 하셨다.

 

 

"수능대박", "사업성공", "취업 성취" 등등을 비는 것은 결국 개인의 욕심이라고 하셨다. 모든 것을 부처님 뜻에 맡기고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지, 어떤 목적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은 크게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한 시간여에 달하는 긴 말씀 중에서 이 한마디가 와 닿았다. 나야말로 내 욕심에 눈이 멀어 그동안 징징거린 게 아니었을까? 아이의 입장을 헤아려 주지 않고 안달하고, 못한다고 야단치고, 남편한테 돈 안 갖다 준다고 언짢게 하고, 비아냥거리고, 상대방에게 못할 말까지 하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을까?

 

쉽진 않겠지만, 내 욕심으로 사물을 보지 않고, 좀 더 떨어져서 나를 가라앉히고, 상대방을 제대로 보려 노력하고, 기다려주고 상대방을 내기준이 아닌 당사자의,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했던가? 아이가, 남편이 힘들게 해도 부처님을 섬기듯이 그들을 섬기며 부처님 뜻에 맡기고 평안을 빌어야겠다.'

 

저녁 공양 후에 저녁예불을 드리고 법당 아래 마당에 내려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머리털나고 그렇게 많은 별은 처음 보는듯했다. 하늘에 빽빽하게 별이 있었다. 시골에 가서 별을 본 적이 많지만, 빛이 없는 곳에 가서도 그렇게 많은 별은 보지 못한 듯했다.

 

 

우리네 인생도 저 많은 별들 중의 하나처럼 표도 나지 않을 텐데, 그리 악착같이 죽을 둥 살 둥 올인할 필요가 있겠나 싶었다. 이제 점점 손에서, 마음에서 짐을 내려놓는 연습을 좀 더 많이 해야겠다. 집에 돌아가면 한동안 봉정암의 별빛이 생각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저도 이번에 안 이야기인데, 초보 불자님들이 조심해야 할 게 있답니다. 스님이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실 땐, 들어가셔서 3배 혹은 1배를 하는 것이 예의라고 하네요.

봉정암이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지라 많은 것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가실 때 미역 한줄기라도 가지고 가셔서 부처님전에 공양 올리면 여러분들한테 베풀어질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봉정암에서 머무르고자 하실 때는 미리 연락을 주시면 고맙겠다는 공양주 보살님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느닷없이 사람들이 늘어나서 어려움이 있다고 하시네요. 저희가 가던 날도 주말이어선지 20여명 예상하고 저녁 공양 준비를 했는데 40여명이 넘어 난감했다고 덧붙이더군요. 저도 절이 그냥 좋아서, 산이 좋아서, 내 생각만 하고 갔는데 이제 나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도 여유도 가져보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겨울산행에는 새먹이도 조금 준비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눈이 많이 쌓여서 새들이 먹이를 구하는데 어려운 모양입니다. 우리 일행이 던져준 휴식 중에 던져준 땅콩을 맛있게 먹던 박새와 먹이를 찾던 꿩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태그:#봉정암, #눈꽃,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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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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