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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 끝에 보이고...
▲ 승학산 정상... 이 저 끝에 보이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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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부터 바람이 씽씽 불더니 오늘 아침 역시 창문너머 바람 소리가 거칠다. 산행 가서 먹을 점심을 남편이 준비하는 동안 나는 일어나 씻고 준비한다. 미적미적 하는 나를 향해 몇 번이고 얼른 준비하라고 말하던 남편이 방에 들어와 하는 말,

“제발~와서 차린 밥 좀 먹어줘!”

오늘 목적지는 부산 승학산이다. 승학산(높이 496미터)은 부산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산으로 부산 사하구 하단동에 위치해 있다. 이 산은 고려 말 무학대사가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산세를 살폈는데 이곳에 오니 산세가 준엄하고 기세가 높아 마치 학이 나는 듯하여 승학산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오늘은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양산지하철 역에 차를 주차해 놓고 전철을 탔다. 거친 바람이 불어 온 몸이 벌써부터 움츠려 드니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도 마음도 망설여진다. 하지만 이미 내친걸음이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서면, 서면에서 다시 하단역에 도착하니 11시였다. 하단 역에서부터 동아대학교 정문에 이르니 11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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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학산 가는 길... ...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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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학교 정문을 지나 등산로 들머리에 들어섰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산인 것 같다. 들머리에서부터 등산복차림을 한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산을 오른다. 사거리에 이르니 12시다. 사거리에 있는 등산안내도에는 약수터 표시를 해놓지 않아 약수터를 한참을 찾던 중 오가는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아 간다. 약수터에서 통에 물을 담는다.

정상을 향해 산을 올라가는 길에서 작은 봉우리를 만났다. 오후 1시다. 벌써 두 개의 산을 넘은 셈이다. 세 번째 봉우리, 즉 승학산 정상이 저만치 보인다. 승학산 올라가는 길에는 이따금 바위지대로 되어 있어서 산행이 밋밋하지 않다.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승학산 정상에 도착! 1시 20분이다.

주변에 앉아...
▲ 승학산 정상... 주변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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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들머리에서부터 쭉 낙동강과 을숙도, 명지, 녹산공단, 낙동강과 바다의 경계를 짓는 낙동강 하구둑이 보이더니 승학산 정상에 이르자 한 번에 펼쳐져 보인다. 드넓게 펼쳐진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승학산 정상엔 산이 좋아 산을 찾은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정상 표시석 아래, 바람이 잘 닿지 않는 양지언덕에 자리를 잡고 점심도시락을 먹는다. 자연 속에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는 시간. 남편이 하는 말,

“여보,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셔요!”

그 말에 둘이 한바탕 웃음으로 마주 본다. 준비해 온 점심을 먹고 보온병에 넣어 온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바라보는 곳이 어디인지 손을 가리키며 얘기한다. 마치 퀴즈 내기라도 하듯 멀리, 혹은 가까이 보이는 장소들 지명을 알아내기 바쁘다.

낙동강 하구둑과 바다...그리고 을숙도...저 멀리 명지, 녹산...가덕도 보이고...
▲ 승학산 정상에서 바라본... 낙동강 하구둑과 바다...그리고 을숙도...저 멀리 명지, 녹산...가덕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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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부터 부산 기상 레이더관측소와 항공무선표지소가 있는 구덕산, 오륙도, 영도 봉래산, 태종대, 송도, 다대동 일대와 몰운대, 그리고 밀물일 때와 썰물일 때마다 달라 보이는 모래톱, 명지, 그 뒤로 녹산, 그 뒤 바다 저 너머에 가덕도, 을숙도, 바다와 낙동강의 경계를 짓는 낙동강 하구 둑, 긴 띠를 넓게 이루고 있는 낙동강 등이 보인다. 아무리 보아도 사랑스러운 풍경이다. 높은 하늘과 강과 바다 사이로 비행기가 이따금 가로질러 가는 것이 보인다.

밝은 햇볕에 먼 사물이 희미해 보인다. 대 자연의 풍경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점심 먹고 일어나 정상표시석 있는 곳에 다시 올라오니 그 사이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있다. 단체로 온 젊은이들이 정상에서 시끌벅적이다. 이젠 내려가야 하나?! 좀 이른 시각이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뭘까?! 그래 맞다. 분명 억새능선이 있다 들었거늘, 우리가 앉아서 점심 먹던 그 자리 바로 아래 비탈진 곳에 보이던 억새가 전부란 말인가.

광활한 억새군락을 이루고 있다...
▲ 억새군락.. 광활한 억새군락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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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가장 알아준다는 억새능선 치곤 정말 시시하지 않은가. 다행히 그게 다가 아니다. 드디어 억새 군락을 찾았다. 우리가 올라왔던 길 반대편으로 해서 하산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데 저 멀리 억새능선이 보인다. 그럼 그렇지. 승학산을 올랐는데 억새능선을 못 보고 다시 내려갔더라면 그야말로 승학산 반쪽짜리 여행밖에 되지 못할 뻔했다.

수만평에 이르는 승학산 억새군락을 향해 우리는 기대감을 갖고서 걸음을 옮긴다. 억새능선 향해 가는 길은 바위지대로 되어 있어 걸음 옮길 때마다 바위가 앞에 엎드려 있거나 갑자기 불쑥 솟아 있어 걸음을 조심조심 옮긴다. 억새능선이 보이는 곳으로 더 가까이 갈수록 광활한 억새군락의 그 면모가 점점 드러난다. 대단하다. 장관이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나는 읖조려 본다. 광활하게 펼쳐진 억새 바다에 눕고 싶다.

바람이 억새에게, 억새가 바람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걷는다. 산보 나온 아이들처럼. 승학산 정상과 억새능선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승학산 정상 주변에서는 낙동강과 바다, 그리고 저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어 좋은가 하면, 억새능선은 아늑하고 넉넉한 초원으로 펼쳐져 있어 하염없이 펼쳐진 억새들 사이에 어린아이처럼 어리광 부리듯 그 속에 누웠거나 앉아서 놀고 싶어진다.

가을이면...억새꽃으로 출렁일 수만평의 억새군락지는 광활했다...
▲ 억새군락... 가을이면...억새꽃으로 출렁일 수만평의 억새군락지는 광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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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풀 사이사이에 난 길은 또 얼마나 호젓한지, 젊은 남녀가 데이트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젊은 남녀가 나누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대화처럼 억새들은 암호처럼 메마른 소리를 내지르며 눕는 듯 다시 일어서고 또 눕는다. 바람이 거칠수록 억새들은 서로 몸을 기대며 부대낀다. 서로에게 의지한다. 눕다가 일어서고 일어서다 눕는다. 바람이 불수록 몸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을 억새는 안다. 더 낮추고 더 숙이고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아니 바람을 탄다. 온 몸으로 바람을 안는다.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은 길...
▲ 억새군락 사이로...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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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속에서, 바람을 타고 생존하는 방법을 그것들은 안다. 그렇게 바람의 계절을 견딘다. 억새능선은 생각했던 것이나 멀리서 바라본 것보다 훨씬 더 광활하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면 알 수 없었을 내밀한 그 무엇을 억새바다는 보여주고 있었다. 가을이면 이곳은 억새꽃으로 온통 장관을 이룰 것이다. 억새꽃은 지고, 메마른 억새들은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겨울바람에 묻혀 오는 봄소식을 예감하면서.

산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직접 그 산에 들어와 보는 것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산행을 통해 배운다. 멀리서 바라볼 때 그야말로 아름답고 산세가 좋아 보이던 산이 막상 그 산에 들어와 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있는가 하면, 멀리서 바라볼 때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산이 직접 산에 들어 와보면 마치 깜짝 선물처럼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산이 있다.

억새능선...길을 걷다가...
이 길을 걸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 승학산... 억새능선...길을 걷다가... 이 길을 걸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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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학산 또한 바로 후자에 속하는 그런 산이다. 산 높이라야 496미터밖에 되지 않아 그다지 높지도 않고 기대하지 않고 왔건만, 이 산은 생각했던 것보다 기대 이상으로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내어주고 있었다. 승학산 정상에서 잊고 있었던 억새능선을 기억해 내고 깜짝 선물 억새능선에 직접 들어와 보고선 감탄했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 걷다...
▲ 억새 길... 따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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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능선을 밟으며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거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이 내는 메마른 소리를 들으며 호젓한 억새 사이로 걷는다. 광활한 억새능선을 지나다 왼쪽으로 난 작은 길이 보인다. 당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또 얼마쯤 갔을까. 억새능선 중간쯤에서 엄궁동 화엄사 가는 길표시가 보이고 작은 소로가 보인다. 얼마쯤 가니 대림아파트, 코오롱 아파트 가는 길 표시 역시 보인다.

...하염없이 넓게 펼쳐진 억새 바다를 따라 걷다.
▲ 억새군락... ...하염없이 넓게 펼쳐진 억새 바다를 따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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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 지나 헬기장에 이르니 3시다. 억새능선 끝나갈 즈음, 사상구 거북약수터와 승학산 정상가는 팻말이 보인다. 억새봉우리에 이르니 3시 20분이다. 엄궁동으로 곧장 내려가 보려고 걸음 옮기다 이제 막 산에 올라오는 사람에게 이쪽으로 가면 지하철을 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 쪽으로 가지 말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이 내려가기에 좋다고 일러주었다.

길을 잘 모르는 데다가 일러주는 대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거북약수터에서 물을 담고 다시 왔던 길로 걸음을 옮긴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억새 능선은 새롭다. 광활하게 펼쳐진 억새군락 사이 호젓한 길을 따라 걷는다. 좋은 사람과 함께 마음껏 걸으며 데이트하기 좋은 곳이다. 다시 억새봉우리(3:40)를 지나 헬기장, 승학산 정상에 이르렀다. 아까 보았던 똑같은 전망이지만 시간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한동안 시선이 머문다.

승학산 정상 아래로 내려다보는 강과 바다, 그리고 사람 사는 집들의 지붕들…. 강과 바다는 은가루를 쏟아 부어 놓은 듯하다. 내려오는 길엔 처음 들머리였던 동아대학교 뒤쪽으로 난 길을 버리고 한 개의 산등을 넘고 나서 왼쪽 옆으로 나 있는 또 다른 길을 선택해 걷는다. 위에서 보았을 땐 널찍한 데다 금방 하산할 것 같아 보였고 지하철역이 더 가깝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선뜻 그 길을 택했다. 하지만 이 길은 만만치 않다. 완전 급경사에 비탈길인 데다 생각처럼 가깝지도 않았다.

언제 이 길이 끝날까. 하지만 언제나 길은 또 끝나는 지점이 있다. 드디어 임도를 만났다. 다행이다. 임도에서 곧장 아래로 직진, 호성빌라맨션과 한소망교회 사이 길로 해서 빠져 나왔다. 조금 걸어 내려오니 새동림맨션과 솔로몬 저축은행 그 사이 하단역 11번, 9번 출구가 나왔다. 지하철1호선을 타고 서면에서 내려서 다시 2호선을 갈아탔다. 또 하루와 작별 한다.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릴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기 위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번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 이기철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산행수첩:
부산지하철하단역(11:00)-동아대학교 정문(11:30)-사거리(12:00)-승학약수터(12:10)-봉우리(1:00)-승학산 정상(1:20)-식사후 하산(2:20)-헬기장(돌탑 3:00)-억새우리(3:20)-거북약수터.헬기장(3:30)-억새봉우리(3:40)-헬기장(돌탑 3:50)-승학산정상(4:10)-봉우리(4:30)-임도(5:15)-한소망교회. 호성 빌라맨션 사잇길(5:20)-새동림맨션-솔로몬저축은행-하단역 9, 11번출구-하단역(5:30)


태그:#승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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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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