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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그러니까 온갖 불법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한반도 대운하' 구상이 모든 국민들에게 파문으로 다가왔던 몇달 전의 이야기입니다. 해외에 계신 지인과 인터넷 메신저 대화를 하면서 국내 사정을 말씀드렸을 때, 그분의 냉소 섞인 탄식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내게 과연 돌아갈 조국이 있을까?"

 

솔직하게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애국'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구태여, 앞장서서 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에 가면 조국에 대한 향수병이 느껴지고, 정작 조국에 있을 때는 하지 않았던 '나라 생각'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그 마음을 느낀다는 가정 아래에 자문해 봤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지율 50%를 넘나들던 유력 대선후보였을 때, 그 '유력한 당선 가능성'에 제 지인은 왜 '돌아갈 조국'의 존재 여부를 걱정하는지에 대해서요.

 

물론, 대한민국 사회는 경기불황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대전제에 동의한 대통령 후보와 국민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고, 구한말과 같이 외세에 국권을 침탈당할 위기에 처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분은 왜 '돌아갈 조국'의 존재 여부를 걱정했는지, 그리고 왜 그게 하필이면 '이명박 대선 후보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이유였을지, 이것은 제가 줄곧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유와 직결될 수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실용'이란 대관절 무엇인가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합니다. 실용정신은 동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합리적 원리이자, 세계화 물결을 헤쳐나가는 데에 유효한 실천적 지혜입니다.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개인과 공동체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삶을 구현하는 시대정신입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이룩하는 데에 나와 네가 따로 없고, 우리와 그들의 차별이 없습니다. 협력과 조화를 향한 실용정신으로 계층갈등을 녹이고 강경투쟁을 풀고자 합니다.

 

정부가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는 나라, 경제가 활기차게 돌아가고 노사가 한마음 되어 소수와 약자를 따뜻이 배려하는 나라, 훌륭한 인재를 길러 세계로 보내고 세계의 인재를 불러들이는 나라, 바로 제가 그리는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룩하고자 하는 선진 일류국가의 꿈입니다. 기적은 계속될 것입니다. 신화는 이어질 것입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발전의 엔진에 다시 불을 붙여 더욱 힘차게 돌아가게 하겠습니다. 제가 앞장서고 국민 여러분이 하나 되어 나서면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취임사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을 강조합니다. 저는 대관절 그 '실용'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새삼 궁금해졌습니다.

 

"실용(實用)-실제로 씀. 또는 실질적인 쓸모."

 

당신이 말하는 '경제 살리기'란 곧 '실질적인 경제 살리기'를 의미하는 것일 듯 합니다. 당신과 한나라당은, '경제'와 '경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먹혀들 수 있는 표현을 선택한 것입니다.

 

당신을 선택한 유권자들은 "북한에 퍼주기나 하고 야당과 싸움질이나 하면서 무능한 좌빨(좌익 빨갱이) 노무현보다 '실용'을 하는 이명박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준 것입니다.

 

유권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이나 '규제 완화', 그리고 '세금 감면'을 자신들에게 향할 것으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노무현 때문에 경기도 어렵고 세금도 많이 내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원성이, 앞서 언급한 3가지를 이야기하는 '불도저 리더십 이명박', '가난이라는 개천에서 벗어나 용이 된 이명박'이라는 환상과 연결돼 당신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로 연결된 것입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기만적인 표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도덕성이나 준법 정신 준수 여부보다 능력있는 이를 우선적으로 기용해야 한다"는 '실용'이 숨어있을 당신의 인사 기용에 대한 '땅부자 내각'이라는 비난에 대해서도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단지 부자라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대국민 기만'입니다. '부자'라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불법과 탈법을 가리지 않았음이 드러나고 있기에 문제 되는 것입니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는 아니라"는 누구 놀리는 해명이나 하는 장관 내정자에 대한 비난입니다. 그리고 자신 역시 불법비리 의혹에 휩싸인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라는 냉소적 체념의 표현입니다.

 

가진 자들의 실용적인 경제

 

이른 바 '경제 살리기'를 한다고 나선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서서히 깨닫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취임도 하기 전에 50% 대의 국정 지지율이 나오는 현상은 이명박 대통령이 시도하려는 정책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할 것인지 깨닫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으로 봐도 됩니다.

 

당신은 '당연지정제 완화 및 폐지'로써 건강보험을 무력화시켜, '비싼 사영의료보험' 보험료를 낼 능력이 안 되는 이들이 병원을 다닐 수 없도록 할 것입니다. 당신은 '영어몰입교육'으로써, 우리 어린이들이 젖병을 빠는 갓난아기 시절부터 알파벳을 외우고 영어보습에 치이는 사회를 만들 것입니다.

 

당신은 '금산분리 완화 및 폐지'나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로써, 위기에 빠진 삼성그룹 이건희 일가를 구출하며 재벌이 은행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재벌이 은행을 지배해 까다로운 대출 기준과 높은 대출 이자를 제시하면 울며 겨자먹기로 감수해야 할 서민의 모습, 그리고 은행을 비자금 관리 수단으로 삼을 재벌 총수 일가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당신은 '상수도 사영화'를 대표로 김대중 정권부터 추진된 온갖 공공시설 민영화를 보다 빠르게 추진해 서민들에게 '진정한 세금폭탄'이 무엇인지 직접 맛보여줄 계획일 것입니다.

 

반면에, '종합부동산세'나 '양도소득세'를 폐지하고 "재벌은 애로사항을 느끼면 대통령에게 곧장 전화를 걸 수 있는" 가진 자들을 위한 '실용'은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은 결국, 온갖 탈법과 불법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의 부유층을 위한 '실용'입니다. 그 속에서, 서민은 '진정한 세금 폭탄'과 아파도 치료비나 진료비를 낼 능력이 없어 속절없이 죽어야 할 비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한반도 대운하'로 파헤쳐질, 단지 우리의 것만이 아닌 먼 훗날 후손들의 것이기도 한 우리의 국토, 그리고 그 속에서 "웬 돌덩어리"나 "물 속에 무슨 문화재가 있느냐"는 항변 속에서 속절없이 사라져야 할 우리 조상들의 유산, 이것 역시 비극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는 진정으로 아이러니컬하게 들립니다. 당신이 말하는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는 정부'에서 '국민'은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탈법과 불법으로 얼룩졌으면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에 불만을 품은 부유층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뿐만 아니라, 취임사에서도 배려하겠다고 확언한 '소수와 약자'에게는 왜 '노동시장 유연화'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라는 비극을 안겨주려 하는 것인지, 도대체 이 앞뒤 안 맞는 당신의 취임 일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저는 이명박 대통령과 맞서 싸울 것입니다

 

대통령과 맞서 싸우겠다는 '도발적인 발언'을 준비하기까지, 저도 많은 생각이 필요했습니다. 평범한 20대 젊은이에 불과한 제가, 기득권 세력과 수구언론의 지지를 업고 대통령에까지 당선된 당신과 싸우겠다는 발언을 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일이라는 사실,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싸울 것'을 결심했습니다. 제 뇌리에서는 해외에 계신 지인의 "내게 돌아갈 조국이 과연 있겠느냐"는 탄식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애국자가 되겠다는 황당한 발상을 준비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20여 년을 넘게 살아온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할 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하려는 정책이 서민을 어떻게 말려 죽일 것인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뿐입니다.

 

게다가, 갈수록 엇나가는 우리의 아이들, 의식 없는 부모들의 영향력 아래에서 인간의 상식과 도리는 배우지 못한 채, 어른들이 마치 "경제만 살리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듯 "어쨌든 학교공부만 잘해서 명문대만 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강압에 시달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해보았을 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초딩'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예의를 상실하거나 상식을 어기는 행위를 할 경우에 쓰이는 은어입니다.

 

"가슴을 주무르든 노략질을 하든 지역구에 대한 일만 잘하면 된다"던 어느 성추행 혐의 국회의원의 지역구 소속 주민들의 생각, 그리고 "불법비리 의혹에 휩싸여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생각을 실천해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어른들이 이 사회의 중심으로 계속 자리 잡는 한, 우리 아이들은 '초딩보다 더한 초딩'이 돼 어른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그런 교육으로써 자라난 아이들이 사회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사회를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끔찍하지 않습니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두고 소수의 유권자들이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느냐"는 탄식을 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20여 년을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당신을 비판하고 견제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 표시할 수 있는 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하려는 정책의 본질을 단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 정부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당선된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마음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합니다. 저같은 사람 하나가 마음으로 인정하든 안하든, 이명박 대통령에게 무엇이 대수이겠습니까만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저 하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더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도하려는 그 많은 정책, 특유의 '불도저 리더십'으로 밀어붙이는 그 순간부터,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 국민들은 더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이미 인수위 활동 두 달 동안 숱한 파문을 일으켰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5년, 결코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 두 달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을 마음으로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의 5년이 얼룩으로 뒤덮이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당신은 곧 대통령, 당신의 얼룩이 우리 국민 모두의 피해로 돌아올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국민들이 달콤한 마약과도 같았던 그 꿈에서 깨어나는 그 날,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볼 수 있는 그 날, 그 부릅뜬 눈을 지켜보면서 두려워할 줄 알고 '친부유층 정책' 이면에 숨겨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숨겨뒀을 법한 욕심을 버리는 그 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그 날부터 '진정한 대한민국 대통령'과 '진정한 대한민국의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어쨌든, 새로운 5년이 시작됐습니다. 부릅뜬 눈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바라볼 저,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고 걱정하는 수많은 국민들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5년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당신을 부릎 뜨고 바라볼 사람들을, 당신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취임 첫날, 그 기쁨과 함께 당신의 수많은 불법비리 의혹에 대한 반성과 시도하려는 정책으로부터 유도될 '수천만 인간의 원한'도 동시에 기억하길 바랍니다. 이 글과 함께 드리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유권자로서의 제 마지막 부탁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명박 취임,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한나라당, #1억달러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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