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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진 3년 전 여든을 넘기셨고 어머닌 여든을 바라보신다. 이젠 부모님이 생전에 계시다 해도 언제 어느 때 자식들 곁을 떠나실지 몰라 늘 불안하고 걱정이 앞선다.

필자도 50년 이상의 세월이 어찌 흘렀는지 속절없이 느껴질 때면 괜스리 허망하고 마음이 분주해 지는데 노인 분들은 인생에 대한 회한이 오죽하실까?

아직은 자식들한테 의존하지 않고 잘 사시지만 가끔 친정엘 가면 전과 다른 변화된 모습들이 눈에 뜨인다. 현관 옆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엔 두 분의 병원 예약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고 집안은 어머니의 예전 살림솜씨가 아니다. 

화이트보드에 빼곡히 적혀 있는 두 분의 병원 예약일정.
 화이트보드에 빼곡히 적혀 있는 두 분의 병원 예약일정.
ⓒ 김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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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눈에 거슬리는 게 보이면 치워드릴 생각은 않고 "우리 엄마 요즘 다른데 신경 쓰시느라 살림을 등한이 하시나보네 ~"  하고 놀림 비슷하게 말을 했는데 이젠 집안청소하는 것도 힘에 부치시는지 사람을 사서 해야겠다고 말씀을 하신다. 

듣고 보니 자식들이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관절을 비롯해 여기저기가 편찮으시고 눈도 침침하다고 하셨는데 식탁 위에 늘어가는 약봉지와 전 같지 않은 살림솜씨도 그 때문이었구나 생각이 들자 대책이 시급함을 느꼈다. 

남을 위해 봉사도 하는데 정작 우리 부모님께는 무심했다니…. 그럼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리를 하다가 우선 가까이 사는 세 자매만이라도 1주일에 하루 친정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더니 동생들도 좋은 생각이라며 당장이라도 시간을 정해 실천에 옮기자며 오히려 더 서둘렀다.  

우린 말이 나온 김에 모두에게 별일이 없는 날을 택해 지난 금요일(22일)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편한 옷과 앞치마, 고무장갑 등을 챙겨 집을 나섰다. 아직 아무것도 하질 않았는데 하고자 하는 계획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편했다. 둘째한테선 늦둥이 챙기느라 시간내에 도착이 어려울 것 같다고 연락이 왔고 셋째는 서둘러 나온 듯 잰걸음으로 오고 있다.    

벨을 누르자 아버지의 인기척이 들렸다. 누구냐고 물으시기에 “저예요 아버지~” 이른 시각 예고도 없이 방문한 딸들을 맞으시며 “너희들 왔구나 ~” 하시면서도 의아한 눈치시다. 엄마는 벌써 운동을 가시고 아버지 혼자 계시기에 얼른 온 이유를 말씀드렸다.

“엄마가 청소하시는 게 힘이 드시다고 해서 청소하러 왔어요” 했더니 좋으신지 거실바닥에 펼쳐 놓고 보시던 신문에 난 기사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어디에 뭐가 있으니 꺼내다 먹으라고 하셨다.

예전엔 풍채 좋고 당당하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세월엔 어쩔 수가 없으신 듯 걸음걸이도 힘이 없어 보인다.

옷을 갈아입고 각자 맡은 곳(화장실, 거실과방 그리고 베란다)을 쓸고 닦기 시작했다. 세 자맨 우렁각시처럼 엄마가 돌아오시기 전에 청소를 말끔히 끝내 놓고 깜짝 놀라게 해 드릴 요량으로 땀을 흘리며 더욱 분주히 움직였다.

거실 청소를 하다가 카메라를 의식한 둘째
 거실 청소를 하다가 카메라를 의식한 둘째
ⓒ 김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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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뒤 베란다를 구석구석 쓸고 닦는 셋째
 앞, 뒤 베란다를 구석구석 쓸고 닦는 셋째
ⓒ 김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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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 필자.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 필자.
ⓒ 김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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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가까워오자 아버진 “너희들 먹고 싶은 걸로 시키거라”하셨다. 뭘 먹을까 망설이다가 오랜만에 어렸을 적 최고의 외식 메뉴였던 자장면과 짬뽕 그리고 탕수육을 시켰다. 잠시 후 음식은 배달이 되었는데 엄마가 오시질 않는다. 혹시 점심 약속이라도 있으신 건 아닐까 하고 있는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현관벨이 울렸다. 

설날에 뵈었건만 세 딸들을 보시자 엄마 역시 반가워하신다.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가 되어있는 걸 보시고는 무척 좋아하셨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뵈니 왜 진즉에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싶었다.  

땀 흘려 노동을 한 끝이라서 일까 아버지가 쏘신 중국요리는 지금까지 먹어 본 그 어느 음식보다도 맛있었다. 청소도 하고 점심도 먹고 시계를 보니 벌써 세 시가 넘었다. 이제 둥지로 돌아가야 할 시간, 각자 가져 온 것들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데 엄만 뭔가를 주머니에 쿡 찔러 주시며 “집에 갈 때 반찬거리라도 사 가~”라시며 세 딸들에게 만 원씩을 주셨다. 

우린 이구동성으로 이러시면 봉사의 의미가 없다며 극구 사양을 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사람을 사서 쓸 생각을 하고 계셨던 부모님, 자식들은 조금만 힘이 들어도 당연한 듯 도움을 청하곤 했는데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사소한 것에 기뻐하시고 늘 자식들을 기다리고 계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우린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자주 찾아가 살펴드릴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음 주에도 아버지께서 쏘신다고 하시면 뭘 먹을까?


태그:#대청소,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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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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