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남해 바다와 섬들은 계속 '안녕'할까? 사람들은 앞으로 그것들과 잘 살아갈 수 있을까?

23일 하루 종일 남해안 선상 기행을 다녀온 뒤 품게 된 의문이다. 남해안 곳곳에서 벌어지는 각종 개발 현장을 배를 타고 둘러보았다. 대형 시멘트 구조물이 곳곳에 들어서 있고, 산 전체를 없애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바다 속에 왕복 4차선 터널을 놓는 공사(거가대교)도 진행중이다.

'참여정부'가 끝나는 시점에도 이럴진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남해안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남해안을 둘러본 소감은 기대와 우려의 교차다.

공무원-교수-환경운동가-어민 등 참여

오전 9시 30분 마산수협 선착장. 창원대 경남학연구센터와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이 마련한 '남해안의 현명한 이용을 위한 남해안 선상기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유람선에 올랐다. '남해안 시대 프로젝트' 업무를 맡고 있는 이창희 경남도 정무부지사를 비롯한 경남도청 공무원들이 눈이 보였다. '경남학'을 연구하는 창원대, 경남대 교수와 '남해안 시대 프로젝트'를 걱정하는 환경운동가, 항만 개발 방향을 연구하는 창원대 항만물류학과 학생들이 참여했다. 어민단체 대표도 동승했다.

최근 국회와 정부는 동서남해안발전특별법을 제정했다.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이 특별법은 각종 개발로부터 남해안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인 '수산자원보호법'과 '해상국립공원법'보다 개발이 우선한다는 내용이다. 경남도 등 연안권 자치단체는 이 특별법 제정으로 '산업'과 '관광'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환경단체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비롯한 남해안 연안이 이 특별법으로 인해 파괴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런 속에 관련자들이 모여,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면서 남해안을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선상기행'을 벌인 것이다.

창원대 경남학연구센터와 마창진환경운동연합은 23일 "남해안의 현명한 이용을 위한 남해안 선상기행과 워크숍"을 벌였다. 사진은 부산항신항 모습.
 창원대 경남학연구센터와 마창진환경운동연합은 23일 "남해안의 현명한 이용을 위한 남해안 선상기행과 워크숍"을 벌였다. 사진은 부산항신항 모습.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마창대교 건설 한창, 오는 6월 준공

유람선은 마산수협 선착장을 서서히 빠져 나왔다. 고깃배가 드문드문 보였다. 마산수협은 수년 전만해도 한 해 위판고가 1000억원이었으나 지금은 300억원에 그치고 있다고 하니, 고깃배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산 앞바다 해상유원지인 돝섬을 뒤로 하고 20여분을 달렸다. 마창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유람선은 2개의 대형 주탑 사이를 지났다. 오는 6월 완공을 앞두고 있는 다리다. 다리 바로 아래서 위를 보니 주탑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어마어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그런 느낌을 받는데, 바다 속에 사는 물고기는 어떤 느낌일까?

박영제 마창어업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마창대교로 인한 어민의 피해에 대해 말했다. 마치 물고기가 대형 다리로 인해 받는 위협을 대신 전하는 것 같았다.

박 위원장은 "육지로 치면 바다는 어민의 논밭과 같다, 마창대교로 인해 지역 경제에 효과가 있겠지만 어민들은 피해가 크다, 대형 시멘트 구조물이 바다 깊숙이 박혀 있는데 물고기가 싫어할 것은 뻔하다, 다리로 인해 고기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철 마산수산업협동조합 조합장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마산만은 우리나라 최대의 어류 산란지였다, 고기가 살 수 있는 조건을 잘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산란은 물론 일반 어류들도 줄어들었다, 어민들의 생존도 지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임희자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소모도 일대를 가리키고 있다.
 임희자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소모도 일대를 가리키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소모도 매립지, 마산만 물길을 막아"

유람선은 거대하게 보였던 마창대교를 계속 작게 만들면서 달렸다. 왼쪽 편으로 길게 이은 부표가 보였다. 부표 안쪽은 해군기지. 일반인뿐만 아니라 어민들도 부표 안으로 들어가면 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다. 해군기지 경계선인 부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부표 안쪽은 소모도. 1990년 해군기지로 매립된 땅이다. 군 시설물이 곳곳에 보였다. 멀리 대형 시멘트 구조물들이 나왔다. 그 안쪽에는 군함들이 정박해 있었다. 잠수함이 정박해 있다는 말도 있다. 군함의 꼭대기 부분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마산사람들은 소모도에 물길을 터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매립되기 전 소모고 수로는 마산만의 중요한 물길이었다. 해군기지가 마산만 해류 소통에 장애를 주고 있는 것. 이로 인해 어업 피해까지 발생하고 있다.

특히 가을이면 해군과 어민들은 '전쟁'을 벌인다. 해군기지 경계 부표 안쪽은 그야말로 '황금어장'. 가을에 전어가 많은데, 어민들이 부표 안쪽으로 들어가 조업하는 일들이 잦다. 어민들은 벌금을 물더라도 이를 강행한다.

박영제 위원장은 "저 앞에 보이는 기산마을에 사는데, 마을 사람 95%가 전과자다"고 말했다. 해군기지 안에 있는 전어 등 고기를 잡기 위해 경계선 안에 들어가 조업하다 법 위반으로 벌금을 무는 사례가 허다하다는 것.

어민 임영택씨는 "20여년 전에는 경계선이 더 안쪽에 있었는데 차츰 밖으로 나오고 있다"면서 "어민들은 전과 한 번 받으나 두 번 받으나 같은 거 아니냐고 생각한다, 해군기지가 들어서기 전에는 정말 고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산 하나가 없어질 판"

유람선은 마산만을 나와 진해 용원으로 향했다. 진해 STX조선 등의 대형 타워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한참을 달렸더니 대형 크레인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일부 진해 땅을 포함해 건설되고 있는 '부산항신항'이다.

신항 뒤편으로 산 전체를 깎아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산을 파낸 흙으로 신항 등을 매립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산 하나가 없어질 판이다.

선상기행 참가자들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바깥으로 나와 아름다운 절경을 구경하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남해안의 크고 작은 섬들이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도 했다. 지리 교과서에서 배웠던 '리아스식 해안'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진해 용원 앞바다에서는 거제(장목)와 부산(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 공사가 한창이다. 다리 상판을 놓을 교각이 세워져 있기도 했다. 최근 바다 속에는 침매터널을 놓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침매터널은 왕복 4차선으로 그 길이는 8.1km. 거제 오비만에서 구조물을 만들어 배에 싣고 와 바다 속에 빠뜨려서 건설한다.

박영제 위원장은 거가대교로 인해 어민 피해는 엄청나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시멘트 구조물이 바다 속에 있으면 고기들은 오지 않게 된다, 피해가 크기에 어민들한테 보상을 해준다"면서 "사라진 고기는 어떻게 할 것이냐, 결국 어민들도 살 수 없게 된다, 고기가 사는 데 방해가 되는 구조물이 아니라 고기들이 살 수 있는 시설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창희 경남도 정무부지사(오른쪽)와 이찬원 경남대 교수가 유람선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창희 경남도 정무부지사(오른쪽)와 이찬원 경남대 교수가 유람선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태풍 매미 때 파도가 섬을 넘었는데..."

유람선은 거제 칠천도까지 갈 예정이었으나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파고가 높아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선상기행 일정을 조정해 곧바로 창포만으로 향했다.

여기는 마산시 연안 중 가장 갯벌이 넓은 곳. 전국 미더덕의 90%를 이곳에서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경남도는 지난해 6월 이곳에 임해산업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매립개발계획을 세워 놓았다. 그 맛있는 미더덕찜도 넉넉하게 먹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유람선은 봄 도다리 낚시의 명소로 유명한 구산반도 원전마을에 잠시 정박했다. 몇몇 참가자들은 변화된 원전마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랬다. 석영철 전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부위원장은 "몇 해 전 이곳에 낚시하러 온 적이 있는데 그 때는 갯바위가 많았다, 그런데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원전마을 앞에는 선착장과 방파제가 만들어져 있었다. 해양수산부에서 만든 것이다. 한 주민은 "태풍 매미 때 파도가 마을 앞에 있는 작은 섬을 넘어 올 정도였다, 그 뒤 방파제며 선착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찬원 교수 "바다가 자정능력 갖추도록 총량관리제를"

유람선은 난포만으로 향했다. 경남도가 조선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매립계획을 세워놓은 곳이다. '난포'는 산란지라는 뜻이다. 그만큼 고기가 많았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불우하다'는 의미로 '남포'로 불렀다고 한다.

난포마을회관에서는 워크숍이 열렸다. 남해안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2시간가량 토론이 벌어졌다. 개발하자는 경남도와 자연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교수, 고기가 살 곳을 챙겨주어야 한다는 어민이 나와 발제했다.

이찬원 경남대 교수는 "연안의 지속 가능한 관리와 현명한 이용"에 대해 발제했다. 이 교수는 1990년부터 1994년에 걸쳐 이루어진 준설공사 이후 생태계 변화 등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오염 준설토의 생태환경은 외부로부터 오염원이 더 이상 유입되지 않는다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회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겨울에는 온도가 낮고 해서 바닷물이 맑은데, 여름에는 온도가 올라가는데다 육지에서 오염물질이 유입됨으로 인해 적조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바다의 자정능력을 감안해서 총량관리제를 해야 한다, 개발계획을 짧은 기간에 세울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본 뒤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이 소모도 해군기지의 경계 부표를 바라보고 있다.
 참가자들이 소모도 해군기지의 경계 부표를 바라보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이창희 정무부지사 "필요한 만큼만 규제 풀자는 것"

이창희 경남도 정무부지사는 "남해안시대 기본구상안"에 대해 발제했다. 이 부지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 때 남해안관광벨트사업을 세웠는데, 내년이 끝나는 해이지만 올해까지 24%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가 각종 규제 때문인데 이것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해안시대프로젝트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산업'과 '관광'이다, 규제를 완전히 풀자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풀자는 것이다, 관광은 '자연'과 '유적'에다 인공적인 관광을 해야 한다, 경치 좋고 쾌적한 곳에 위락시설을 갖추어 관광으로 개발하자는 것"이라고 설명.

이 정무부지사는 "축산폐수처리 등 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설들을 개별적으로 놓아둘 것이 아니라 모아야 한다, 이른바 거점개발을 하면 오염을 차단할 수 있다, 그래서 남해안 연안의 각종 오염물질을 바다로 흘러 보내지 말고 시설에 모아 정화처리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제 위원장은 "최근 남해안에서 대구와 청어가 많이 잡히는데 한 편에서는 걱정이다, 그 고기들은 냉대수 어종이다, 고성 안정공단에 있는 가스공장으로 인해 인근 바다의 수온이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대구와 청어는 한 철에만 잡힌다, 바다에 어종이 풍부하려면 사시사철 고기가 잡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희 전 경남한살림 이사장과 임희장 마창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등은 이창희 정무부지사한테 개발정책에 대해 질의를 하기도 했다.

신석규 마창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연안을 사람들이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행정이나 시민들이나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앞으로 정기적으로 이런 기행과 토론을 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남해안 일대를 둘러보고 열띤 토론까지 벌인 뒤 마산수협 선착장에 돌아왔을 때 시각은 저녁 7시 20분. 마산 시가지는 온갖 불빛으로 훤하게 밝아 보였지만 낮 동안 다녔던 바다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태그:#남해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