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손녀 낳았다고 300만원 축하금 주었다는데, 자기는 손자 낳으면 500만원은 줘야 하지 않아?""500만원? 손녀 낳았다고 누가 300만원을 줬대?"그곳에 있던 친구들의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 자기 며느리 언제 둘째 가졌어?" 내가 한 친구에게 물었다. 그는 며느리가 4월에 출산예정이라고 했다. 지난해에 분가시키자마자 그달에 둘째를 임신했다고 한다. 아마 시댁식구와 함께 살다가 두 부부와 딸아이 셋이 오붓한 하게 살게 되니 마음이 편안해서라고 짐작한다고 한다.
하여 그 친구는 다른 친구의 며느리가 3년이 되도록 아이가 안 생기자 분가를 시켜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아기가 안 생기는 친구의 며느리는 임신하려고 병원으로 한약방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쓰고 있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라 했다. 어쨌든 손자를 낳으면 500만원의 축하금을 준다는 소리에 나도 적잖이 놀란 것이 사실이다.
"아니, 돈 없는 사람은 부모 노릇도 못하겠다"지난 21일 두 달 만에 친구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우수가 지나서일까. 전형적인 화창한 봄 날씨였다. 오랜만에 외출이라 한결 마음이 들떠 있었다. 화장도 오랜만에 해서인가 기분이 더욱 화사했다. 발걸음도 가볍게 친구들과의 약속장소로 갔다. 친구들은 이젠 운전할 수 있냐면서 다친 팔목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여전히 변함이 없이 좋아 보였다.
그러다가 며느리가 4월에 출산예정이란 친구에게 한 친구가 묻는다. “자기 둘째 손주는 딸 이래 아들이래?” 하니, 또 다른 친구가 말을 잇는다.
“요즘 그거 안 가르쳐 주잖아?”“8개월쯤 되면 가르쳐주는데 아들이래.”친구들의 물음에 대답하는 친구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야, 딸 낳고 아들 낳으니깐 200점짜리이다, 200점. 어쩜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니, 좋겠다”하며 서로 자기 일들처럼 좋아했다.
그런데 아들이란 소리에 한 친구가 손자 낳으면 축하금으로 500만원을 줘야 한다는 소리를 한 것이다. 난 어처구니없는 그 소리에 한 마디했다.
“아니, 돈 없는 사람은 부모 노릇도 못하겠다. 무슨 축하금으로 500만원을 줘. 50만원도 아니고.” 다른 친구들도 한 마디씩 거든다.
“애를 낳으면 자기네들 위해서 낳지. 부모 위해서 애를 낳나?” “참 어떻게 되려고 분위기가 그렇게 되니?”“부모가 무슨 봉이니. 힘들게 공부시켜 결혼까지 시켰는데 이젠 손주들 낳았다고 거금의 축하금까지? 자식이 둘 셋 있는 집은 어떻게 하냐. 돈 천만원이 우습게 나가겠다.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줄 수 없잖아!” 그중에 작년에 손자를 본 친구가 한 명이 있다. 그에게 얼마를 줬느냐고 물었다.
“축하금은 무슨 축하금이야. 산후조리비용 120만원 내 준 것이 전부다. 무슨 축하금을 그렇게 많이 줘.”그런 말을 들으면서 생각해봤다. 우리 딸아이는 아들 둘을 낳았는데 그런 거금을 받았다는 소리를 못 들은 것이다.
딸, 아들 손주 낳았다고 300만원, 500만원 축하금 줄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나도 앞으로 결혼할 아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거금의 축하금을 줄 수도 없고,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요즘처럼 이혼율이 높다는 사회분위기에서, 자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잘 살아주는 것은 분명히 고마운 일이다. 그런 고마운 마음에 부모는 또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자식들에게 없어서 못해주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딸, 아들 손주를 낳았다고 300만원, 500만원의 축하금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그리고 그런 거금을 축하금을 받는 자식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앞으로 더 큰 액수의 축하금을 주어도 고맙거나 감사한 마음이 생길까? 그리고 고생하지 않고 생긴 돈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기나 할까?
길을 걷다가 한 친구(그는 아들만 세 명 있다)가 약간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 또래의 며느리들이 모이면 그런 이야기들을 할 거 아니야"면서 "그럼 축하금을 못 받은 며느리들은 무슨 생각이 들까?” 한다. 그러자, 한 친구가 응답을 한다.
“그러니깐 어떤 부모들이든 그런 쓸데없는 짓들은 하지 말아야 해. 고생했다고 성의껏 선물을 사주던지, 얼마간의 축하금은 줘도 되지.”"그렇게, 축하금을 주는 것은 미리 약 치는 거야. 이다음에 자기네들 늙으면 그만큼 자식들에게 바라는 마음도 분명 있을 걸."그러게 그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우리는 돈보다 더 소중한 끈끈한 정이 있지 않은가축하금을 그렇게 많이 주었다고 이야기하는 친구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에게 “자기네 아들들 결혼해서 손주들을 낳으면 그런 거금의 축하금을 줄 수 있어?” 하고 내가 물었다. 그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아니 못 주지” 한다. 자신도 그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나 역시도 그런 거금의 축하금은 주지 못한다. 다만 내 마음의 정성이 담긴 선물이나 소정의 축하금은 고려해 볼 수 있다.
거금의 축하금을 준 부모나, 작은 성의를 표하는 부모나, 경우에 따라 마음만 주는 부모 모두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한치의 기울임도 없이 똑같으리라 생각한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돈보다 더 소중한 끈끈한 정이 있지 않은가. 그런 끈끈한 정과 진정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