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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유혹하네."

 

맑은 햇살이 손짓하고 있었다. 어찌나 따뜻하게 다가오는지, 온몸에 감미로움이 배어든다. 햇살은 맑을 뿐만 아니라 아주 밝았다. 가라앉은 마음까지도 다시 일어서게 만든다. 햇살의 힘에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든다. 햇살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 편안하고 포근해질 것만 같다. 유혹을 물리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상 일에는 늘 그러하듯이 함정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창가를 통해 시각적으로 접하게 되는 햇살의 모습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집 밖으로 나서자마자, 다가서는 것은 삭풍이다. 느슨하게 풀어진 몸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어 버린다. 바람 속에 배어 있는 날카로움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한다. 그렇다고 하여 멈출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달리기 시작하니, 삭풍의 위협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동차 차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의 부드러움을 다시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스쳐 지나가는 겨울 풍광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햇살을 받은 양지쪽은 봄기운이 물씬 피어나고 있었고 음지쪽에는 하얀 눈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옥정호 휴게실을 지나 호수를 따라 함께 돌아섰다. 필봉 농악으로 이름을 날리는 곳에서는 대보름 풍물을 실시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연수 소 마당에서는 우리 음악을 배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귀로 농악의 흥겨움을 취하면서 댐이 있는 쪽으로 향하였다.

 

눈으로는 햇살의 부드러움을 즐기고 귀로는 흥겨운 풍물에 취하게 되니,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시각이나 청각으로만 감지되는 것은 아니었다. 후각이나 촉각 등이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 온몸으로 감지되게 되는 자연의 기운을 주체할 수가 없다. 소중한 오늘을 온몸으로 확인하게 된다.

 

“어 ! 새싹이네.”

 

하얀 눈 사이에 초록의 풀이 자라고 있었다. 언제 고개를 내밀었을까? 삭풍으로 인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도 새싹은 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이란 말인가? 겨울이 아무리 심통을 부려도 준비하는 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작은 풀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살다 보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무엇 하나 귀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타성이 그것을 경시하게 되는 것이다. 어제 일어난 일이 오늘 다시 일어났으면 그것은 기적과 같은 일임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어제의 일이 또 다시 반복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중한 오늘을 망각하는 것이다.

 

일상이 계속된다는 것은 기적이다. 생각해 보라. 어제 일어난 일이 오늘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어제 떠오른 태양이 오늘 떠오르지 않는다면 어떠할 지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습관은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이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내일 또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니,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기적을 만들어가는 것은 크고 위대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은 음지에서 묵묵히 준비하는 것들의 힘이 모아져서 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봄을 준비하고 있는 작은 풀이 바로 주인공인 것이다. 더 큰 것을 찾고 있는 욕심으로 인해 볼 수 없는 작은 것들에 의해서 기적은 이루어진다. 하얀 눈 사이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리고 있는 이름 모를 풀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소중함을 확인하게 된다. 햇살이 유혹하는 데에는 다 믿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풀이 준비하고 있던 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봄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임실에서


태그:#봄, #준비,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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