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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파헤쳐진 빈터는 모두 골목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길을 낸다니 어찌어찌 말을 못하고 보상받고 떠나야 했지만, 그냥 길이 아닌, 남은 사람들마저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산업도로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살아가고 싶어서 막공사를 반대합니다. 이렇게 넓은 길이 뚫리면 동네사람은 어찌 사나요.
▲ 산업도로 예정터 파헤쳐진 빈터는 모두 골목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길을 낸다니 어찌어찌 말을 못하고 보상받고 떠나야 했지만, 그냥 길이 아닌, 남은 사람들마저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산업도로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살아가고 싶어서 막공사를 반대합니다. 이렇게 넓은 길이 뚫리면 동네사람은 어찌 사나요.
ⓒ 깨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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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인 2008년 2월 20일, <연합뉴스>와 <세계일보>에 거의 똑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인천 중구와 동구를 연결하는 도로개설 공사가 시민단체와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지난해 9월 중단된 이후 6개월째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시 관계자는 '도로 부지 보상이 97%가량 끝나고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황에서 사업 전면 중단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해당 도로가 인천에 부족한 남북방향을 잇는 중요한 기능을 맡게 될 만큼 주민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공사를 곧 재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인천 배다리 골목집 한복판에 '너비 50∼7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끝끝내 꿰뚫어 버리려고 하는 인천시와 인천종합건설본부는, 그동안 어느 한 번도 이 동네 주민과 터놓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천시와 종합건설본부는 주민들한테 '그냥 길 하나 낼 뿐'이라고 속여서 '나라가 시키는 대로 땅과 집을 팔고' 자리를 내주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동네 주민들은 지난 2006년 겨울에, 시가 이곳 배다리에 놓으려고 하는 길은 '그냥 길'이 아닌, '덤프와 컨테이너차와 원목수송차 들이 싱싱 달릴 산업도로'를 내려고 했음을 처음으로 알아채고 이에 반대하는 싸움에 접어들었습니다.

숫자로만 적으니 살갗으로 안 와닿을 수 있습니다. 너비 50∼7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놓는다 함은, 초중고등학교 운동장 2/3에 이르는 너비입니다. '왕복 12차선'을 생각하면서 놓는다고 하는 산업도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조용히 살고 있는 동네 한복판에 너비 50∼70미터에 이르는 길이 놓인다고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너비 50미터이면,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전철 복복선보다도 깁니다.

<연합뉴스>와 <세계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면, 인천시 관계자(이름을 안 밝히고 있습니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도로가 지나갈 구간 중 일부인 '배다리' 일대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도로가 생기면 대형 트럭 탓에 먼지와 소음 피해가 우려되고 배다리 중심부인 헌책방거리 등 역사·문화 공간이 사라진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 2.51킬로미터 길이로 놓일 산업도로 예정터를 헤아린다면, 지금 동네 사람이 살고 있는 한복판을 꿰뚫는 길이는 1/3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1/3은 바로 옆에 송림초등학교가 있고 솔빛주공아파트가 있습니다. 나머지 1/3 구간에는 신광초등학교와 정보산업고등학교가 바로 옆에 닿아 있으며, 삼익아파트와 풍림아파트 들이, 또 인천보건연구원이 찰싹 붙어 있습니다.

종합건설본부는 언제든 공사를 다시 하려고 기회를 엿보기만 할 뿐, 한 번도 주민 뜻을 묻거나, 스스로 '대안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 가림막 울타리와 종합건설본부는 언제든 공사를 다시 하려고 기회를 엿보기만 할 뿐, 한 번도 주민 뜻을 묻거나, 스스로 '대안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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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수치로 따지지 않아도, 사차선이나 팔차선만 되어도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시끄러워 창문을 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왕복 12차선이나 되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 살림집에서, 학교에서, 보건연구원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인천시는 1989년부터 전국에서 가장 공기와 물이 나쁜 도시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는데, 지금 인천에 푸른 숲을 마련하지 않고 자꾸만 어마어마한 찻길을 도심지에 뚫으려고 한다면, 사람이 어찌 살아갈 수 있을는지요.

두 매체에 기사를 쓴 기자님 형편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이분들은 '너비 50∼70미터에 이르는 산업도로를 내려고 하는 현장'을 한 번이라도 찾아와 보셨을까 하고.

저도 이곳 인천 배다리 동네 주민이고, 지난 2006년 겨울부터 주민들이 힘을 모아 벌이고 있는 싸움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그동안 지켜보아 오기로, 인천시 관계자 어느 한 사람도 이곳 현장에 찾아와서 주민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다가온 적이 없습니다. 주민설명회를 연 적이 없습니다. 간담회를 한 적이 없습니다.

공사 책임이 있는 인천종합건설본부 관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한 번도 흉허물없이 '그래, 이곳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습니다. 토론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동네 주민과 인천 지역 시민단체는 벌써 두 해에 걸쳐서 인천시 관계자와 종합건설본부 관계자한테 공문도 띄우고 집회도 하고 면담요청서도 전달하고 1인시위도 하면서 '제발 이야기 좀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태껏 한 번도 이런 이야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어제 2월 20일치 언론매체에는, "시는 그동안 공사재개를 위해 주민설명회, 간담회 등을 열고 설득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찔했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숨 한 번 돌리며 마음을 추스르고 생각해 봅니다. 기자님들이 쓰신 글을 보니, 인천 배다리 골목집을 꿰뚫는 산업도로 본질을 살갗으로 느끼기 어려운 한계가 여러모로 보여서 슬프기도 합디다. 그러나 기자님은 이곳 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종합건설본부나 인천시 도로과 같은 곳에서 보내주는 공문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기자님이 전화로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 사람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여, 이 산업도로라는 길 본질로 다가가기는 쉽지 않을 테지요. 두 발로, 몸뚱이로 현장에 와서 주민들을 하나하나 만나보면서 이야기를 듣지 않는 바에야,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턱이 없을 테지요.

온갖 환경문제를 더욱 크게 일으킬 산업도로는 '인천보건연구원' 앞길로도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보건연구원에서는 무엇을 연구할까요? 보건연구원 옆으로 우뚝 올라선 "아파트가 산업도로 때문에 어떤 환경 피해를 입는지"를 연구할는지? (사진 맨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건물이 보건연구원입니다)
▲ 보건연구원 앞 온갖 환경문제를 더욱 크게 일으킬 산업도로는 '인천보건연구원' 앞길로도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보건연구원에서는 무엇을 연구할까요? 보건연구원 옆으로 우뚝 올라선 "아파트가 산업도로 때문에 어떤 환경 피해를 입는지"를 연구할는지? (사진 맨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건물이 보건연구원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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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되는 길은, 그냥 '도로'가 아닌 '너비 50∼70미터, 길이 2.51킬로미터짜리 산업도로'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기자님이 사는 동네에 너비 50∼7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낸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런 길은 소음과 먼지 피해만 일으키지 않습니다. 바로 이웃하고 있던 옆집하고 우리 집이 남남이 되어 버립니다. 길이 놓인 뒤에도 남남이 되지만, 공사를 하는 동안에도 이웃집으로 놀러가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학교로도 못 갑니다. 걸어서 1분이면 가던 길을 한참 빙빙 돌아서 15분 20분씩 걸려서 가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덩치 큰 차에 치이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야 하니, 학교 다닐 교육터전이란 그예 사라져 버립니다.

이곳 사람들 삶을 아예 짓밟아 망가뜨리고 마는 산업도로입니다. 도심지 한복판에서 동네 주민들은 이산가족으로 쪼개어집니다. 더욱이, 산업도로 예정구간 2.51킬로미터 구간 바로 옆에 초등학교 5군데와 고등학교 2군데가 맞닿아 있습니다(동명초, 송림초, 신광초, 영화초, 창영초, 영화여상, 정보산업고).

인천경찰청에서는, 도심지(배다리가 인천 도심지입니다)에 덤프 같은 화물차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무기한 단속'을 한다면서 교통경찰을 곳곳에 배치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도심지 한복판을 가로지른다는 산업도로를 놓으려고 하고 있어요.

방음벽을 놓아 준다고 해서, 너비 50~70미터나 되는 큼직한 찻길을 싱싱 달리는 덩치 큰 차가 내뿜는 매연과 소음을 막을 수 있을까요. 정보산업고등학교를 비롯한 일곱 군데 학교 교육권과 수업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 길을 함부로 밀어붙여도 좋은지요?
▲ 정보산업고 옆 예정터 방음벽을 놓아 준다고 해서, 너비 50~70미터나 되는 큼직한 찻길을 싱싱 달리는 덩치 큰 차가 내뿜는 매연과 소음을 막을 수 있을까요. 정보산업고등학교를 비롯한 일곱 군데 학교 교육권과 수업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 길을 함부로 밀어붙여도 좋은지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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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에 실린 기사, "인천시가 설득작업을 벌였지만"이라는 대목에서도 가슴이 싸합니다. 눈물이 핑 돕니다. 배다리 주민들과 시민모임에서는, 인천시장 면담을 지난해 5월부터 꾸준히(열 차례도 넘게) 신청했으나 한 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시장 밑에 있는 비서라든지 기획실장이라든지 도로과장이라든지 어느 누구하고도 면담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공사 때문에 피해를 받게 될 주민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안상수 인천시장이 다른 볼일 때문에 지나가다가 잠깐 들른 한 번이 있을 뿐(지난해 가을), 실무자들도 현장인 이곳 배다리에 한 번도 안 찾아왔고 한 번도 주민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주민설명회와 간담회를 가졌"다고 쓰셨는데, 언제 주민설명회를 했고 언제 간담회를 했습니까? 확인해 보셨는지요? 주민설명회와 간담회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인천시'가 아닌 '인천 종합건설본부'에서 지난 2008년 1월 10일, 주민들 어느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고, 구청 공무원한테만 몰래 연락해서 '깜짝 주민설명회'를 열려고 했습니다.

이 소식이 '몰래 주민설명회' 하루 앞서 주민대책위 사람 귀에 들려와서, 주민들은 한낮에 벌어지는 깜짝 설명회에 참가하려고 그날 하루 일을 못하면서 회의장소에 몰려와서, 주민을 속이며 몰래 진행하려는 설명회를 무산시켰습니다. 설명회를 하려면 정식으로 주민한테 알리고 해야 하며, 이렇게 요식절차만 밟아 밀어붙이려는 설명회는 하지 말라고, 그때 주민들은 틀림없이 '인천 종합건설본부장'한테 외치기도 했습니다.

주민들 몰래 주민설명회를 열려고 한 인천종합건설본부 횡포에 맞서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이 설명회를 무산시켰습니다.
▲ '몰래 주민설명회' 막는 주민들 주민들 몰래 주민설명회를 열려고 한 인천종합건설본부 횡포에 맞서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이 설명회를 무산시켰습니다.
ⓒ 새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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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이곳 배다리에 산업도로가 놓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지금 '인천시'나 '종합건설본부'는 말하기를, 800억에 이르는 돈이 들어가서 '도로 백지화가 힘들다'고 말합니다만, 이 돈 800억은 거의 모두 '공사터 땅값 보상금'으로 쓰였습니다. 실제 공사는 2%, 13% 이런 수치로 따질 수 없습니다.

기자님이 현장에 직접 와 보시면 알겠지만, 공사는 하나도 안 이루어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기사를 보면, "이 가운데 2구간인 송현터널∼송림로(900m)는 2004년 7월 완공됐다"고 나옵니다만, 이곳 '송현터널'은, 종합건설본부가 지은 곳이 아닙니다. 인천시에서 여기에 들인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예전에 주택공사가 송현동 달동네 재개발을 하면서 아파트를 지을 때 모두 철거가 된 빈땅에 몰래 굴을 2중으로 뚫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택공사는 이 터널을 종합건설본부에 무상으로 넘겨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송현터널 구간은 '공사완료'라는 말을 쓰지만, 마치 '웬만한 공사가 이루어졌으나 지금 멈추어서 못하고 있는 듯' 눈속임을 하는 데에는 써서는 안 됩니다.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바라고 있습니다. 이미 보상이 끝나고 빈터만 남은 그 땅에 굳이 새 길을, 그것도 동네를 두 조각으로 끊어버리는 산업도로를 놓을 까닭이 없다고. 그 빈터에는 참으로 인천 중구와 동구, 아니 인천 모든 곳에 걸쳐서 참말로 있어야 하는 '푸른 숲', '공원', '어린이도서관', '자전거길'이 있어야 한다고.

우리는 자동차 권리가 아닌, 사람 권리를 바랍니다. 사람이 안전하게 다니면서 사람으로서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를 바랍니다. 우리 나름대로 일구고 있는 도심지 텃밭을 넘어서, 더 넓은 나무숲을 바라고 나무그늘을 바랍니다. 자전거로도 안전하게, 두 다리로도 안전하게 다닐 공원을 바랍니다.
▲ 우리가 바라는 것 우리는 자동차 권리가 아닌, 사람 권리를 바랍니다. 사람이 안전하게 다니면서 사람으로서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를 바랍니다. 우리 나름대로 일구고 있는 도심지 텃밭을 넘어서, 더 넓은 나무숲을 바라고 나무그늘을 바랍니다. 자전거로도 안전하게, 두 다리로도 안전하게 다닐 공원을 바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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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건설본부는, '지하화'하면 위에 숲(녹지대)을 꾸밀 수 있다고 말합니다만, 그 '지화화'한다는 구간은, 경인전철이 복복선으로 지나가는 곳입니다. 전철길 밑으로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깔 때, 지붕 높이를 맞추려면 땅밑으로 한참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굴로 파고들어가서 땅밑으로 지나가는 길은 곧바로 야산 중턱에 있는 '송현터널'로 이어져야 합니다.

지하로 가다가 야산 중턱으로 고가도로를 놓을 수밖에 없는 공사 형편이라면, 산업도로가 산업도로 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론으로도 맞지 않는 공사를 억지로 밀어붙이려고 하면서, 애먼 돈을 자꾸 쓰는 일은, 인천시 재정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됩니다. 인천시 재정은 애먼 데에 자꾸 쓰이지 말고, 참된 인천시민 복지와 문화 북돋우기에 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동네를 끔찍하게 망가뜨리는 일을, 왜, 이곳 인천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서민들 삶터에서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길이 꼭 있어야 한다면 놓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인천 중동구에는 이미 산업도로가 따로 있습니다. 이미 있는 산업도로는 살짝 에두른다고 하는 길이라지만, 그 에두름은 시간으로 치면 고작 1분쯤입니다. 자동차로 달리면서 고작 1분을 에둘러 가지 않겠다고, 몇 천 억 원에 이르는 돈을 길닦기에 들여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자동차 천국으로 가는 세상보다는, 그 수천 억 원을 동네 문화와 삶터를 가꾸는 데에 쓴다면, 인천이라는 곳은, 안상수 시장이 말하듯이, '명품도시'가 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인천시 관계자는 "해당 도로가 인천에 부족한 남북방향을 잇는 중요한 기능을 맡게 될 만큼 주민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공사를 곧 재개할 방침"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인천 남북을 잇는 길이 왜 없나요. 바닷가를 따라서 죽 놓여 있는데요. 그리고 남북을 이어야 하는 길이라면, 왜 도심지 한복판에, 더욱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동네 한복판을 꿰뚫어야 하나요.

인천시장이 이 동네에 안 살고 있으니까, 구청장도 이 동네에 안 살고 있으니까, 동사무소장도 이 동네에 안 살고 있으니까, 인천지방법원 판사님과 검사님과 변호사님들도 이 동네에 안 살고 있으니까, 인천 중동구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구의원도 이 동네에 안 살고 있으니까, 인천 이야기를 쓰는 중앙일간지 기자와 방송국 피디도 이 동네에 안 살고 있으니까, 그저 책상머리에서 지도책 펼쳐서 금을 죽 긋듯 산업도로 하나 내면 된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잣거리에서 장사를 하고, 헌 종이를 모으며 살고, 헌책방 장사를 하고, 동네사람 상대로 하는 가게를 조그맣게 열어서 꾸리고 하니까, 이 동네사람들 스스로 소리높여 외칠 줄 모르니까 그냥저냥 밀어붙이기만 하면 되리라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우리들 눈에 눈물이 흐르도록 해도, 가슴이 피멍이 들도록 해도, 몸뚱이와 마음자리가 갈기갈기 찢어지도록 헤쳐 놓아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방음벽이 아닌 햇볕과 햇살을 바랍니다. 따순 겨울햇볕에 물고기를 말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음과 먼지 때문에 창문 꼭꼭 여미고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뜩이나 여태껏 제철소와 유리공장과 화학공장과 자동차공장 때문에 창문도 제대로 못 열고 살았는데, 이제는 새로운 산업도로를 놓으며 우리 숨통을 조이려 하는지요?
▲ 동네 문화 우리는 방음벽이 아닌 햇볕과 햇살을 바랍니다. 따순 겨울햇볕에 물고기를 말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음과 먼지 때문에 창문 꼭꼭 여미고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뜩이나 여태껏 제철소와 유리공장과 화학공장과 자동차공장 때문에 창문도 제대로 못 열고 살았는데, 이제는 새로운 산업도로를 놓으며 우리 숨통을 조이려 하는지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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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를 쓰는 저는, 인천 배다리에서 태어나, 이곳 배다리에서 동네도서관을 조그맣게 열어서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동네 주민 한 사람으로서, 또 인천 토박이로 살아오는 동안 인천 삶터와 세상 흐름을 바라본 사람으로서, 또 경제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마구잡이로 주민 목소리를 짓밟으며 밀어붙이는 독재주의 개발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편지를 씁니다. 부디 이 편지를 잘 읽어 주시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만 맺습니다.

- 2008년 2월 20일 최종규 올림

덧붙이는 글 | -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 인터넷방(http://cafe.naver.com/vaedari)이 있습니다.

- 온 삶을 바쳐 땀흘려 일해 온 조그마한 몸뚱아리 드러누울 작은 집 한 칸이나 방 한 칸 마련하여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도 ‘내 집에서, 내 땅에서, 조용하면서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다가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그:#산업도로, #안상수, #인천, #배다리, #막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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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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