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 사단에서 너희들이 갈 수 있는 자리는 두 곳뿐이다. 한 곳은 최전방 철책부대이고, 다른 한 곳은 신병교육대인데 너희 둘이 알아서 결정해라. 너희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니들이 결정한 대로 명령을 내겠다.”

요즘 한참 초중고의 졸업식이 열리고 있다. 졸업을 하고 나면 초등학교는 ‘중학교’, 중학교는 ‘고등학교’, 고등학교는 ‘대학교’, 그리고 대학교는 ‘사회’라는 또 다른 세계(?)로의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특히, 학업수준이 올라가는 학교와는 달리 대학 졸업 후 접하는 ‘사회’라는 세계는 그야말로 강하고 능력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생존경쟁의 세계이다.

지금 들려주는 이야기는 취업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요즘 바로 생존경쟁의 세계에 첫 걸음을 ‘군(軍)’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세계에서 시작한 나의 초임장교 시절의 에피소드다.

평범한 길이 아닌 '직업군인'의 길을 가다

남들은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 공무원 등 안정된 직장을 찾아 사회로의 첫 걸음을 시작하지만 나는 그러한 평범한 길보다는 ‘직업군인’이라는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은 가시밭길을 택했다.

대학 졸업 후 나는 대구 영천에 있는 3사관학교에 입교해 12주의 기나긴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육군 소위 계급장을 달았다. 오만촉광의 빛나는 다이아몬드 계급장을 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받았는지 모른다. 팔꿈치가 다 까지고 발바닥은 살인지 물집인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망가져 있었지만 계급장을 다는 순간 그러한 것들은 모두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 후 10주간 실무에 필요한 군사교육을 더 받은 뒤 마침내 직업군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딜 부대로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떠났다. 내가 직업군인으로서 출발을 하게 된 부대는 강원도 철원의 백골부대. 비록 부대 이름을 듣고 두려움이 들기도 했지만 백골부대는 6·25당시 ‘38선 최초돌파부대’라는 명성을 지난 최정예부대였다.

버스를 타고 5시간여를 이동해 겨우 부대 앞에 도착하자 병과(정훈병과) 선배들이 같이 간 동료와 함께 반갑게 맞아줬다. 일단 근무지가 결정되기 전까지의 대기기간 동안 잠시 머무를 숙소에 여장을 푼 후 선배들이 사주는 저녁을 먹고 앞으로 어떻게 업무를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낯선 곳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첫 부임지에서 닥친 선택의 기로, '신교대냐? 철책이냐?'

다음날, 아침 일찍 부대로 출근해서 사무실 병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사단 내에서 정훈업무를 총 책임지는 정훈참모가 들어왔다.

“이번에 새로 온 장교들인가? 중요한 얘기할 게 있으니까 조금 있다가 나 좀 보자구.”
‘중요한 얘기? 뭘까? 근무지가 나왔나?’

지레짐작으로 근무지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훈참모는 나와 동료를 불러 근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근무지를 확정해서 “너는 이곳으로, 너는 저곳으로 가”라고 말했으면 고민하지 않았을 텐데 근무지에 대한 정보가 아무 것도 없었던 터라 나와 동료는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정훈참모가 던진 한마디, “철책부대는 몸이 힘들고 신교대는 몸은 편하지만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거야!”

이 말을 듣고 석사출신으로 뒤늦게 군에 입대한 동료가 “내가 신교대로 갈게”하며 선수치는 게 아닌가! 난 속으로 생각했다. ‘나보고 몸으로 때우라는 거지? 잠깐! 아니 어쩌면 앞으로 남은 기나긴 군생활을 하려면 힘든 부대부터 경험하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몰라. 그리고 동료는 3년만 하면 제대하니까 그렇게 하자.’

“결정했습니다. 제가 군생활 오래하니까 철책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솔직히 고민 많았다. 누구를 어디로 가라고 정할 수도 있었지만 너희들의 의견을 듣는 게 아무래도 나을 것 같아 그랬는데 선뜻 철책으로 가겠다니 김 소위! 고맙다.”

그렇게 해서 나의 첫 근무지가 정해졌고, 이후 바로 명령이 떨어져 더 이상의 지체 없이 지프를 타고 부임지로 떠났다. 지프를 타고도 30여 분 이상을 달려 겨우 도착한 최전방 철책부대. 때마침 북에서 들려오는 대남심리전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TV에서만 보던 장면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마음 속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괜히 온다고 했나?’

최전방 철책부대에서 어리둥절 신임 소위를 따뜻하게 맞아 준 동료들

첫 부임지였던 철책부대에서 한탄강을 배경으로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과 한장. 맨 오른쪽이 필자다.
첫 부임지였던 철책부대에서한탄강을 배경으로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과 한장. 맨 오른쪽이 필자다. ⓒ 김동이

부대에 도착해 대대장에게 신고한 뒤, 같이 근무하게 될 부대 간부들과 그리고 병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하나같이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이날 난 장교가 아닌 직장으로 따지자면 계급을 떠나 부대의 신입사원이었다.

어제 부대로 전입온 이등병보다도 더 늦은 신입사원. 그 당시 난 처음부터 내 계급과 직책을 잊고 선배 장교들로부터, 또 병사들로부터 낮은 자세로 하나하나 업무를 배우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큰 어려움 없이 그곳 생활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북과 대치하고 있는 철책선을 바라보며 오직 동물들의 울음소리만이 적막함을 깨는 최전방 철책부대에서 직업군인으로서의 나의 신입시절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직업군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