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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길에서 바라보는 영축산... 저 멀리 보인다...
능선길에서 바라보는 영축산...저 멀리 보인다... ⓒ 이명화

내가 만난 2월의 영축산은 바람의 산이었다. 날은 쌀쌀하고 바람까지 불어 더 춥게 느껴졌지만 구름 한점 없는 파아란 하늘, 햇볕이 쨍~한 날이라 좋은 날, 남편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내게 다가와서 햇살이 잘 비쳐드는 옆방으로 내 손을 이끈다. 과연, 날씨는 맑음, 쾌청 그 자체다.

“여보야! 오늘 날씨가 으뜸이다!”
“와~ 정말 그러네요. 으뜸이에요!”

외출할 때 도시락은 항상 남편이 책임진다. 평소에 늘 하는 식사준비를 이럴 때만이라도 자기가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 남편의 지론이다. 도시락이든 직접 그 장소에 가서 해 먹든 식사담당은 남편 몫이다. 이날만큼은 나는 내가 가지고 갈 것들만 챙기면 된다. 영축산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자동차를 운전해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도 모처럼 쉬는 날이 돌아와서 좋고 날씨마저 화창해서 좋은지 남편은 휘파람 불듯 ‘여보야! 오늘 날씨가 으뜸이다, 으뜸!’이라고 말한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한 점 구름도 보이지 않는 푸른 하늘,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은 뽀송뽀송한 날씨다. 영축산으로 가는 길은 일반적으로 양산 통도사에서 영축산으로 많이들 간다. 우리가 지금 가는 길은 양산을 벗어나 물금을 지나 원동을 거쳐 배내골로 해서 영축산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좀 멀지만 드라이브 하면서 가기에 좋은 길이다. 물금을 지나면서부터 계속 우리 옆을 따라오는 낙동강도 보고 원동 매화마을엔 먼저 봄이 당도해 매화가 피었는지 보기도 하면서 한적한 길로 간다.

영축산 가는 능선길에서... 저 뒤로 신불산이 보인다...
영축산 가는 능선길에서...저 뒤로 신불산이 보인다... ⓒ 이명화

영축산은 양산시 하북면, 원동명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상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영남 알프스에 속한다. 영축산은 그동안 '영취산'과 '취서산' '축서산' 등 4가지로 쓰여 혼선을 빚어오다가 통도사 뒷산의 명칭을 2001년 1월 양산시지명위원회에서 '영축산'으로 통일하기로 하여 영축산으로 지명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영축산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제약산이 보인다...
영축산 정상에서 내려오면서...제약산이 보인다... ⓒ 이명화

영축산... 정상에서 보이는 오룡산...
영축산...정상에서 보이는 오룡산... ⓒ 이명화

영축산 가는 길은 양산 어곡동에서 가는 길도 있지만 경사가 가파르다. 어곡동에서 가는 것도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어곡에서 배내골로 가는 길이 있고, 어곡에서 화제, 배내로 가는 길이 있다. 우리가 가는 길, 즉 양산을 벗어나 물금을 거쳐 화제, 원동을 지나 배내로 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아주 좋다. 아직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이 길에는 차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우리 전용도로인 양 한적하고 조용해서 좋다.

물금에서 화제로 가는 길부터 줄곧 따라오는 낙동강 그리고 호젓한 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낙동강 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 원동이다. 원동은 매실로 유명하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이다. 곧 3, 4월이면 매화꽃을 피울 매화나무들이 길가에, 산 산에, 희망의 마른 가지들을 하고 펼쳐져 있다. 3월 매화꽃이 필 무렵과 4월 매실 딸 때 그때, 잊지 않고 다시 와야 할 것 같다. 배내골로 가는 길까지 매실나무들 도열해 있다. 바로 옆으로 천태산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토곡산이 보인다.

원동마을을 지나고 있다. 길은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빈 논밭, 보이지 않게 봄을 잉태하고 있는 산과 들, 끝없이 이어진 길. 원동 자연휴양림 팻말이 보인다. 다음에 한 번 가봐야겠다. '여기서부터 배내골입니다'라는 팻말이 나온다.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배내골은 행정구역상 울산, 양산에 속한다. 여기서부터 길은 S자 코스로 경사가 제법 높다. 배내사거리를 지난다. 배내사거리는 왼쪽으로는 밀양 가는 길, 오른쪽으로는 배내골 가는 길로 갈라진다. 또한 원동과 어곡에서 오는 차들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영축산... 억새능선...
영축산...억새능선... ⓒ 이명화

푸르른 하늘...그리고... 눈이 부시도록 하얀 눈...
푸르른 하늘...그리고...눈이 부시도록 하얀 눈... ⓒ 이명화

우리는 밀양호 가는 길을 잠시 보류하고, 배내골 쪽으로 간다. 얼마쯤 갔을까. 도로가에 있는 배내골 약수터(10:34)에서 물을 담고 다시 가던 길을 따라 간다. 배내골 약수터는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쉽기 때문에 잘 봐야 발견할 수 있다.

산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라 청정약수터이다. 물맛이 좋다. 배내골 주변은 음식점, 팬션, 관광명소(파래소 폭포, 밀양호, 신불산자연휴양림, 영남 알프스산들) 등이 있다. 여름엔 그토록 콸콸 흘러내리던 강과 계곡물이 깡깡 얼어붙어 있다. 하지만 얼음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은은하다.

해빙의 계절, 봄이 오고 있다. 청수골 산장 팻말이 보인다. 청수골산장 옆 도로에 차를 주차했다. 등산객들이 몇 팀 보인다. 우리는 청수골 산장에서 등산 입구를 찾는다. 먼저 온 사람들은 파래소 폭포가 있는 쪽으로 가는 것이 보인다. 날씨가 몹시 춥다. 바람이 차다. 11시, 등산로에 진입한다. 우리는 입장료, 주차료를 받는 ‘신불산자연휴양림’ 쪽이 아닌 오른쪽 등산로에서부터 출발한다.

깊은 계곡을 끼고 걷는 등산로는 좁은 비탈길이다. 걸어 올라갈수록 높이 우는 바람소리가 잦다. 높이 부는 바람은 멀리서 군마들이 달려오는 소리 같기도 하고 큰 해일을 몰고 오는 소리 같기도 하다. 둘이서 걷는 길은 인적없이 적요하다. 바람만이 멀리서 가까이로 들리는가 싶으면 벌써 머리 위를 지나 또 멀리 몰려가는 소리 들린다. 11시 45분, 너덜지대가 나왔다. 얼마쯤 갔을까. 깜짝 놀랐다. 염소 두 마리가 비탈진 양지에 앉아 있다. 아니 이 높은 산중에 염소가 어떻게 올라왔을까.

나중에야 알아낸 사실인즉, 저 아래 염소고기 집에서 방목해서 키우는 짐승이란다. 능선길이 저만치 보인다. 가까이 혹은 멀리 보이는 계곡이 흘러내리다가 꽁꽁 얼어붙은 것이 보인다. 높이 올라갈수록 언제 눈이 왔는지 잔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얼어붙어 미끄럽다. 잠시 휴식하는 사이, 한 팀의 등산객들이 올라온다. 반갑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은 이런 겨울산에서 인적 없는 가운데 뜸하게 만나는 사람들은 반갑기 그지없다. 이제 계곡이 끝나고 능선길이 시작된다. 1시 5분이다.

영축산 정상에서... 바람이 높이 불어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영축산 정상에서...바람이 높이 불어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 이명화

이제부터는 바람 길이다. 계곡을 따라 올라오던 길은 아무것도 아니다. 바람이 높이 분다. 칼바람이다. 바람이 칼춤을 추는 듯하다. 바람 능선이다. 모자를 썼는데도 얼굴은 춥다.  그 위에 옷에 달린 두 개의 모자를 더 덮어쓰고 얼굴을 거의 숙여서 걷는다. 바람에 몸이 흔들린다. 바람에 날려갈 것 같다. 손끝은 장갑을 끼고 있어도 시리다 못해 아프다. 1시 15분, 돌탑이다.

언제 눈이 온 것일까. 이렇게 눈이 쌓여 있는 줄은 몰랐다. 녹지 않은 눈들이 곳곳에 쌓여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무릎 높이까지 푹푹 들어가서 걸음을 옮길 수 없을 정도다. 바람은 어찌나 불어대는지 말라붙은 억새풀들이 바람의 방향을 따라 눕는다. 능선길 따라 걷는 나도 자주 몸이 흔들린다. 굉장한 추위다. 덕유산도 이렇게까지 춥진 않았었다. 1시 50분 영축산 정상 도착!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오롯이 받고 서 있던 나는 바람에 날아갈 것 같다.

손이 시려 카메라 꺼내기조차 겁난다. 우리가 도착한 후 몇 팀의 산악인이 올라온다. 여러 사람들로 구성된 팀은 시끌벅적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정상 표시석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포즈를 잡으려는데 바람을 타고 날아갈 것 같아 정상 표시석을 단단히 잡았다. 맹렬하게 추격해오는 바람을 타고 이렇게 추운 날, 높은 산에 올라온 사람들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행 경험이 많은지 완전 무장하고 온 모습들이다. 정상 바로 밑에는 조그마한 영축산 대피소가 있다. 정상 주변에는 신불산, 천성산, 가지산, 천왕산, 오룡산 등이 가까이서 멀리서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너무 추워서 정상에 오래 머물 수 없다. 다시 내려오는 길, 바람을 바로 받는다. 추위에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하다. 이 무슨 고생이람, 사서 고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정상까지 올라가 보고서 내려가는 우리들, 그래도 즐거운 것이다.

내려오는 길은 더 춥게 느껴진다. 바람이 앞에서 불어오기 때문이다. 곳곳마다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럽고 눈이 쌓여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곳이 있다. 걸음이 걸어지지 않는다. 처음 계획은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 말고 다른 방향으로 해서 파래소 폭포를 보고 가려고 했지만 다시 왔던 길을 따라 내려간다. 길을 찾다가 쉽게 보이지 않는 길, 너무 추워서 길을 찾다가 맹추위에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영축산 정상으로 해서 능선길까지 칼바람 부는 곳을 지나 다시 내려가는 길은 산과 산이 겹쳐지는 계곡을 아래 두고 걷는 길인데다 그나마 햇볕이 잘 비쳐드는 곳이라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바람이 많이 닿지 않아 좋다. 곳곳에 잔설이 남아 있고 얼어붙은 곳이 있어 조심해야 했지만 칼바람을 피해 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4시 30분 청수골 산장 도착! 이 시간쯤 되니까 산행 갔던 사람들이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밀양호 ...
밀양호... ⓒ 이명화

우리가 갔던 길에서, 혹은 반대편에서.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밀양호를 보고 가기로 한다. 차를 타고 배내골을 지난다. 여름이면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북적대던 배내골의 겨울은 고요하고 저녁 무렵은 고즈넉하다. 저 산자락 아래 들녘엔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다. 배내 사거리에서 아까 보류해 두었던 밀양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굴곡이 심한 경사길이다. 이곳에도 저녁이 오고 있다. 밀양호를 끼고 가는 길, 강은 말이 없다.

밀양호 ...인적 드문 2월의 밀양호...고요한 수심...
밀양호...인적 드문 2월의 밀양호...고요한 수심... ⓒ 이명화

밀양호 ...밀양호 위로 산그늘이 내려앉고 있다...
밀양호...밀양호 위로 산그늘이 내려앉고 있다... ⓒ 이명화

밀양호를 한바퀴 돌아보고 우리는 다시 차를 돌렸다. 배내골을 지나 원동마을을 통과한다. 어느새 저녁 밥 짓는 연기인지 군불 때는 연기인지 사람 사는 지붕 위로 피어오르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굴뚝 연기다. 천천히 내려앉는 어둠은 사물의 색깔을 지우고 있다. 어둠이 내려오면서 하나, 둘씩 불빛이 또렷해지고 더 많은 불빛들이 어둠 속에 모여들고 있다.

영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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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덧붙이는 글 | 산행수첩:청수골산장(11시)-너덜지대(11:45)-능선(1:05)-돌탑(1:15)-영축산(1:50)-돌탑(2:30)-식사후 하산(3시)-너덜지대(4시)-밀양호...



#영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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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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