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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폐지반대의원모임과 해수부해체 국회통과저지 국민연대, 해수부사수전국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2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해양수산부 해체는 망국으로 가는길이다"이라고 정부조직개편안의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해수부폐지반대의원모임과 해수부해체 국회통과저지 국민연대, 해수부사수전국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2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해양수산부 해체는 망국으로 가는길이다"이라고 정부조직개편안의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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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개편안 협상이 파국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가 한치의 양보없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양측 협상의 최대 핵심 쟁점은 '해양수산부 존폐' 문제다.

손학규 대표는 연일 부산과 여수 등 항구도시를 방문, 해수부 사수 의지를 불태우며 전방위 공세에 나섰다.

반면 이명박 당선인 측은 "'작고 효율적'이라는 정부조직개편 취지를 무너뜨릴 수 없다"며 해수부 폐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이 당선인측이 해수부 폐지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해수부 장관 출신이어서 이번 정권 동안 해수부가 비대화됐다는 문제의식도 깔려있다.

그런데 해수부의 존폐 위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해수부는 이미 1998년 김대중(DJ) 정부 출범 직전 폐지 위기에 내몰렸다가 한나라당의 반대와 김영삼(YS) 당시 대통령의 적극적인 '로비' 덕분에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10년전 'YS-DJ 담판'으로 기사회생한 해수부

이전에 해양 관련 통합행정 업무는 1955년 만들어진 해무청에서 담당하다가 해양주권 주장이 한·일 외교협상의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에 따라 1961년 해체됐다. 이후 1966년 농림부 외청으로 수산청, 1976년 교통부 외청으로 항만청이 분리 신설됐고, 1994년 유엔 해양법 협약이 발효되면서 해양영토의 선점을 위한 통합행정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해수부는 YS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는 1996년 8월 당시 13개 부처에 분산돼 있던 해양정책, 수산정책, 해양안전, 해운물류, 항만, 어업자원 등 해양관련 기능을 끌어 모아 현재의 해수부를 출범시켰다. 앞서 YS는 "21세기 해양시대를 대비하고 해양행정 일원화를 위해 해수부를 창설하겠다(1996년 5월 '바다의 날' 기념식 축사)"고 선언했다.

그러나 DJ정부가 출범하면서 출범 2년만에 해수부는 폐지 위기에 직면했다. DJ정부 인수위측 정부조직개편심의회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위해 당초 현행 23개 부처 중 7개 부처를 통폐합해 16개 부처로 줄이는 정부조직개편안을 마련하면서 해수부를 폐지키로 한 것.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3월 열엇던 에세이집 출판기념회에서 이명박 전 시장과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3월 열엇던 에세이집 출판기념회에서 이명박 전 시장과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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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한나라당은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해수부 폐지에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해수부 신설로 자부심을 가져왔던 YS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해수부를 김대중 당선인측이 없애겠다고 하자, 전전긍긍했다. 정치적 고향인 부산의 반대 여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심을 거듭하던 YS는 측근인 김광일 청와대 정치특보를 김대중 당선인에게 보내 '부산민심'을 언급하며 해수부 존치를 위한 '로비'를 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나흘 뒤 열린 DJ와의 주례회동에서 직접 해수부 설립 취지와 존치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고, 결국 DJ로부터 '폐지 재검토'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DJ로서는 정권 초기 국민화합을 위해 '부산민심'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던 데다, 퇴임하는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의 판단을 한 것이다. 해수부가 YS에 대한 '퇴임선물'이 된 셈이다.

해수부가 기사회생 하면서 정부부처는 다시 17개 부처로 늘어났고, 기존의 정부조직개편안은 연쇄 변화가 불가피했다. 경찰청으로 흡수됐던 해양경찰청도 다시 외청으로 독립됐고, 수산청을 산하기관으로 두고 농수산부로 명칭을 바꾸려던 농림부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대신 환경부에 뺏겼던 산림청을 되찾아왔다. 이 바람에 김대중 정부는 언론으로부터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아니라 '비대정부', '밀실 협상'이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김영삼-이명박', '김대중-손학규'의 엇갈린 운명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YS는 이명박 당선인을 정계에 입문시킨 장본인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YS가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지켜냈던 해수부를 이명박 당선인이 "무슨 일이 있어도 없애겠다"며 '정치적 승부수'로 삼고 있다.

이 당선인은 YS가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 대표로 재임하던 1992년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전국구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을 지냈다. 특히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YS의 지시로 김덕룡 의원 등 이른바 '민주계' 인사들이 이명박 당선인을 간접 지원했다.

지난달 11일 YS의 팔순 축하연에 참석한 이 당선인은 "지난 선거 과정에서 여러가지로 속을 태웠지만, 그 때마다 김 전 대통령이 (저에게) '기죽지 말라'고 (격려)했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YS와 이명박 당선인 만큼이나 DJ와 손학규 대표의 상황도 아이러니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직전 정부조직 개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그 이유 중 하나가 해수부 등을 폐지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지난 대선 과정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며 한나라당을 이탈해 신당에 합류했던 손 대표가 이번에는 해수부 사수를 '정치적 승부수'로 던진 것이다.

특히 DJ는 최근 당 대표 취임 인사차 방문한 손 대표에게 "이번 임시국회 한 달이 야당의 존립근거를 보여주는 중요한 한 달이 될 것이므로 국민이 강력한 야당의 존재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 안 되지만, 그런 비판이 두려워서 정당한 비판을 안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당선인과 한나라당에 대해 유화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손학규 대표가 정부조직개편 협상에서 연일 강경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DJ의 '기합'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10년 전 해수부를 없애려고 했던 DJ가 이번엔 해수부 존치의 버팀목 역할을 한 셈이다.

인수위 측의 정부조직개편안은 해수부와 함께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등 이른바 '미래지향적' 부처들을 주로 없앴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여기서 해수부 하나만 살리더라도 '예비 야당'으로서는 큰 성과다. 손학규 대표는 국무위원 내정자 발표 등 '초법 내각', 워크숍 강행 번복 등 인수위측의 '오만'한 행보로 인해 유리한 여론이 형성됐다고 판단, 해수부 존치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해수부의 운명은?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가 21일 서울 당산동 대통합민주신당 당사 대표실에서 강무현 해양수산부장관을 만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가 21일 서울 당산동 대통합민주신당 당사 대표실에서 강무현 해양수산부장관을 만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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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부조직개편을 둘러싼 여야 협상이 지난 14일 밤 타결 직전까지 갔다가 결렬된 후 사실상 협상중단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양측이 주말까지 협상 재개 여부와 시기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는 등 대립 국면이 장기화 될 조짐이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17일 브리핑에서 "협상 시기는 내일(18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이후 오전까지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일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 이후에 안상수(한나라당)·김효석(신당) 원내대표가 양당으로부터 협상 전권을 위임받은 후 두 사람이 만나서 얘기하기로 했다"며 "내일 오전에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신당측은 "한나라당이 해도 너무하는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우리는 협상을 재개하기로 하거나 만나기로 한 적이 없다"고 회동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유은혜 부대변인은 "협상재개를 위해서는 이명박 당선인의 도장이 찍힌 협상안을 제시하든가 아니면 이 당선인 없이도 독자적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며 "아무런 협상안도 내놓지 않고 협상하기로 했다고 거짓 브리핑을 하는 것은 마치 야당이 협상을 거부하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양측 모두 대통령 취임일(25일)이 불과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정치적 부담감을 안고 있어, 협상 재개를 위한 물밑접촉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해수부의 존폐 문제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새 정부의 정상 출범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해수부의 운명이 주목된다. 


태그:#해양수산부, #정부조직개편안, #이명박 당선인, #손학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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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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