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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한 장면
 영화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한 장면
ⓒ '결혼은 미친짓이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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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술자리에서... "결혼? 그거 뭐 안 해도 되잖아"

일을 마치고 밤 늦게 오랜 친구 한 명과 술을 한 잔 마셨다. 우리 둘은 어울리지 않게 결혼 이야기를 했다. 친구끼리 모여서 결혼 이야기를 심각하게 나눈 적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 26살. 먼 미래의 일은 아니다.

"결혼하면 귀찮기만 하지…."

김진수(26). 나의 10년지기 친구다. 어제 얘기를 나눠 본 결과 이 녀석은 결혼할 마음이 별로 없어 보였다. 10년을 넘게 지내왔지만 이 놈이 독신 생활을 꿈꾸고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소주를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며 나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주민아.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뭔 줄 알아?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 영화야. 왜 그거 있잖아. 엄정화, 감우성 나오는 거(웃음)."
"나도 그 영화는 재미있게 봤다. 근데 말이야. 젊을 때는 몰라도 나이 들어서는 혼자 살면 너무 외롭지 않겠냐."
"야 요즘 애들 싸가지 없는 거 잘 알잖아. 결혼하고도 기껏 키워 논 자식들한테 버림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더라. 그냥 신경 안 쓰고 내 생활 하는 게 더 나아."

하긴 요즘 이 녀석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 참 많아 보인다. 내 주위에도 이런 녀석들이 하나 둘 보이는 거 보니 이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란 말이 실감이 난다. 며칠 전 신문에 전체 인구 중 1/5이 '1인 가구'라고 했는데 이 말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어느 덧 새벽 1시가 되었다. 추운 겨울 밤. 온 몸이 따뜻할 정도로 적당하게 취기가 올랐다. 술자리를 끝내고 집에 갈 무렵, 이 녀석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말이야. 대형마트 같은데서 귀여운 어린아이 손 붙들고 행복하게 쇼핑하는 가족들을 보면 정말 좋아 보이긴 하더라. 부럽기도 하고…."

진수 같은 놈들도 섬세한 면이 있네? 이 녀석도 저런 다정다감한 결혼 생활은 부러워하는 구나! 그냥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아침 버스 안에서... "나도 소박한 가정을 꾸린다면?" 

날씨가 좋았다. 환하게 내리쬐는 햇발이 상쾌하다. 학교에 놓고 온 것이 있어 잠깐 다녀오러 밖으로 나왔다. 여느 때처럼 750번 버스에 올랐다. 항상 그렇듯이 뒷좌석에 앉았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버스 안이 텅 비어 있다. MP3를 귀에 꼽고 흥얼거리며 아침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신촌쯤 왔을 때 한 모녀가 손을 잡고 버스에 올랐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어머니와 이제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였다. 그러고는 바로 내 앞좌석에 앉았다.

"엄마 나 심심해."
"그래? 우리 딸 심심한데 뭐할까?"
"쎄쎄쎄."

갓 말을 뗀 아가들처럼 부정확한 발음으로 이야기하는 여자아이가 무척이나 귀엽다. 모녀는 환하게 웃으며 그들만의 놀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푸른 하늘 으은하수, 하얀 쪽배에…."

그들이 연출하는 풍경이 문득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손으로 턱을 괸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 순간, 왼쪽 창가로 들어오는 밝은 아침햇살이 아리따운 모녀를 비췄고, 그들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그들을 바라봤다. 나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여자아이는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엄마! 저 아저씨…."
"아저씨, 아니야(웃음). 딸이 참 귀엽네요."
"아, 예. 감사합니다."

사촌 형 친구 가족의 행복해보이는 모습
 사촌 형 친구 가족의 행복해보이는 모습
ⓒ 김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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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만약 나중에 결혼해서 딸을 낳는다면 이 아이처럼 귀여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아내는 저렇게 다정다감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거창한 상상은 아니었다. 그냥 소박한 삶의 풍경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학교까지 걸어가는 내내 실없는 사람처럼 웃었다.

사실 나는 결혼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아이를 기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전혀 모른다. 어쩌면 나도 어제 만난 진수처럼 자유로운 독신 생활을 꿈꾸는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 그 녀석과 나는 생각이 좀 다르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진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 때 되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오순도순 가정 꾸리며 사는 그런 평범한 삶 말이다.

오늘은 이런 평범하고도 소박한 삶의 아름다움이 가슴 가득 다가온 하루였다. 이따가 저녁에는 <길버트 그래이프>와 같은 잔잔한 가족영화나 한편 빌려서 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송주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결혼, #대학생,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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