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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명이 넘는 사람들이 뉴욕에서 실종된다.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무리 뉴욕이라고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실종됐는데 어떻게 단서가 없을 수 있을까?

 

뉴욕의 거리, 벌거벗은 여자가 도로로 뛰어든다.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 머리가죽이 벗겨진 그녀는, 다른 사람의 머리 가죽을 들고 있다. 상황을 파악한 끝에 경찰은 그녀가 납치, 감금됐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심상치 않은 사건에 여형사 애너벨과 파트너가 투입된다. 그들은 라틴어 문자 등의 단서를 갖고 신중하게 범인을 쫓는다. 그 과정에서 애너벨은 범인으로 보이는 자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범인을 체포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러한 소망은 말 그대로 소망이었던 것을 알게 된다. 그 집에 있는 흔적들과 사진들 때문이다.

 

6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무슨 사진들이 있기에 그런 것인가? 실종된 사람들의 사진이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기다리고 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고문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한 것일까? 광신교들? 그럴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어딘가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사육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의 어느 곳에서 생지옥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악의 심연>은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와 함께 프랑스 장르문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막심 샤탕의 ‘악의 3부작’ 중에 하나다. ‘악의 3부작’이라고 하니 명칭만 거창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왜 그런가? ‘악’을 말하는 소설들이 버라이어티한 측면을 강조하면서 제3자로서 즐기게 한다면, 이 소설은 그 ‘악’을 마주함으로써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과장된 말 같지만 사실이다. 막심 샤탕은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악’을 이야기하는 장르소설들은 연쇄살인마의 무자비한 난도질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악의 심연>은 사육당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줌으로써 좀 더 생생한 공포를 만들어내고 있다. 즉, TV를 보듯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범죄를 구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들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한다. 더군다나 FBI 출신 프로파일러 출신의 사립탐정 조슈아 브롤린이 등장하면서 그것은 더 정밀해진다.

 

사육당하는 사람들의 심리 묘사에 공포는 더 커지고

 

프로파일러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되어 그들처럼 생각해보는 것이다. 브롤린은 생각해본다. 이유도 모른 채 납치되고 감금당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른 채 고문과 폭행을 당한다.

 

납치범이 뭔가를 요구하면 좋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들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까지 만든다. 하다못해 죽여줬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지옥을 구경하게 만든다. 기어코 납치된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데 그것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니 오싹할 수밖에 없다. 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위를 둘러보게 만드는 두려움을 만드는 힘이 있으니 오죽하랴.

 

주인공들이 범인을 추적하면 추적할수록 거대한 범죄가 나타나듯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공포의 폭이 커져만 간다. 이제껏 많은 소설들을 만나며 ‘내성’이 생겼다고 해도 소용없다. 그 힘이 다르다. 이렇게까지 실감나는 공포를 만들어주는 장르소설이 있었던가? 막심 샤탕의 <악의 심연>, 소설이 지닌 파급력이 심상치 않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놓치기 아깝다. 아니, 후회할지도 모른다.


악의 심연

막심 샤탕 지음, 이혜정 옮김, 노블마인(2008)


태그:#장르소설, #스릴러,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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