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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물으며 강물 따라 떠나는 사람들…."

"하늘의 질서 아래 지구의 모든 생명들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시 낭송회에 온 듯 했다. 그들과의 만남은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감성적인 목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12일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 전망대에서 있었던 출정식에서 순례단 사람들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우리 인턴들을 당황케 했다.

 

길 위에서 길을 묻는다고? 이런 표현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나 듣던 말이었는데. 종교인·시인들이 모여서 그런지 생소한 언어가 우리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우리 인턴들은 실용논리에 사로잡힌 채 인문학이 무너져가는 대학을 다니는, 세속에 찌든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자비의 종자가 말라가고, 뭇 생명이 죽음으로 내몰릴 현장으로 이 길을 떠납니다."

 

우리들의 머리를 혼란케 했던 그들의 감성적인 목소리는 2박3일 동안 계속되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낯설었다. 생명·생태·자연, 이런 것들과 참·가치·근본 등의 단어는 책 속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단어였다.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치열한 경쟁시대. 저런 말들은 사치가 되어 버렸다. 혹시 그들은 구름 위에 둥둥 떠다니는 도인들은 아닌가. 멋들어진 언어로 자신들을 포장한 채 현실을 도외시 하는 이상적인 사람들은 아닌가.  

 

환갑의 어르신들께 순수한 '동심'을 느꼈다

 

그러나 언어 뿐만이 아니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힘찬 발걸음과 진심어린 행동은 잠자고 있던 감성의 세포를 흔들어 깨웠다. 이들은 말을 하길 원하지 않았다. 그저 걸을 뿐이었다.

 

자신들부터 행동을 보이고, 참회하자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벤트성 행사로 걷는 게 아니라고 했다. 보여주기식 쇼를 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저 생명과 강을 모시고 가는 길임을 실천으로서 보여주고 있었다. 문득 이원규 시인이 첫날 밤 비닐하우스 안에서 해주었던 말씀이 떠오른다.

 

"우리가 걷는 것은 국민들에게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야. 그저 강을 받아 모시고, 성찰하는 의미로 가는 거야. 사실 우리도 이 문제에 대해 소홀했단 말이지. 누구 탓하기 전에 우리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 겸허한 반성의 의미로 참회하면서 길을 갈거야. 억지로 드러내고자 하면 탈만 나잖아. 조용히 실천하면서 보여줄 뿐이지."

 

칼바람 부는 겨울 밤, 나는 꽁꽁 언 손을 비비며 이 말씀을 받아 적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이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코 지나쳐 버린 가치들이 너무 많았다. 아직 사회에 진출도 하지 않은 내가 환갑의 어르신들께 순수한 '동심'을 느꼈다. 도법스님은 마지막 날 절간에 앉아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가치에 천착하지 않고, 현상에 대해 우왕좌왕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야. 가치에 천착했고, 그래서 졌다고 한다면 결코 억울하지 않아. 참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 법이지. 우리가 참을 추구하지 않고, 인기에 편승해서 가치를 버렸잖아. 이게 경제논리고 대운하 파자는 걸로 나타나는 거야. 100년을 보고 참·옳음·가치 이런 것들을 추구해야 돼."

 

이러한 삶도 있구나. '삼성학과', 'LG학과'에 다니고 있는 우리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근본적인가치를 실현하려는 사람들도 존재하는구나. 그리고 아직 우리 사회에도 참을 추구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어르신들, 그리고 비뚤어진 모습에 대해 바른 말 해주시는 진정한 스승 같은 사람들도 있구나.

 

우리는 경제·효율에 매몰된 차가운 기계였다

 

 

부끄러웠다. 우리 젊은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가장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잘못된 기존 질서에 대해 패기로 맞서야 될 사람들이 우리들 아니었던가. 이렇게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께서 추운 겨울날 맨몸으로 길을 걸으며 고생해야만 하는가.

 

우리들이 먼저 나서서 해야 할 일이지 않는가. 이들은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말 한 마디조차 꺼내지 않고 있다. 우리는 경제적 가치, 효율의 가치에 매몰된 차가운 기계처럼 세상을 살고만 있었던 것이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이 시대의 일그러진 홍길동은 아닌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취재를 하고 있지 않았다. 내가 취재원이 되었다. 동시에 나는 강의를 듣는 제자가 되었다. 나는 둘째 날 오후, 한강 길을 걸으며 김민해 목사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러면서 가치를 잃은 요즘 젊은이들 혼 좀 내달라고 말씀드렸다.

 

"젊은 사람들 탓할 것 없어. 강요·지시의 방법으로 요즘 세상에 무엇이 되겠나. 이러한 사회를 물려준 우리가 잘못했지. 사실 이건 우리들의 책임이야. 참된 가치를 추구하고, 옳게 살면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가 너희들에게 못줬어. 젊은이들까지 이런 거리로 나오게 하는 것은 맞지 않아."

 

그날 저녁, 수경스님도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표현해 주었다.

  

"요즘 보면 부모의 고마움, 사회의 고마움, 자연의 고마움을 모른 채 자기 혼자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많아. 그러나 모든 게 조화롭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안 되는 거야. 한 순간도 자연 없이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데, 이제는 이러한 사실들을 젊은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 풀어내야 되는 거야.

 

효순이 미선이 사건, 그 때 젊은이들의 움직임을 보니까 놀랍더라. 하루가 다르게 숫자 불어나잖아. 그건 뭔가 자기들끼리의 소통이 됐으니까 그런거야. 인터넷 세대들이 쓰는 언어로 소통이 된 거지. 그런 것처럼 인식을 해야 돼.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젊은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풀어갈 것이 아니라 공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합리적으로 이해를 시킬 수 있어야지."

 

그들은 결코 탓하지 않았다. 혼내달라는 나의 말은 금방 무색해졌다. 탓하고 비난하기 보다, 자신들부터 성찰하고 반성하자는 말씀만 계속 하셨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였다. TV를 보면 서로를 물어뜯기에 바쁜 정치인들만 나온다. 왜곡된 사회 현실에 대해 남 탓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종교인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나부터 성찰하자는 것이고, 실천으로서 교화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적과 아를 구분하고, 논리 싸움만 계속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극과 극 논리로는 싸움만 될 뿐이며 우리만 옳다는 식의 방식으로는 싸움만 될 뿐이라고 말했다.

 

우리부터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참회할 때만이 국민들을 움직일 수 있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번 도보 순례도 그러한 의미라고 계속해서 강조했다. 대운하 문제도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인의 삶... 다시 생각했다

 

사실 난 종교인들을 막연하고 이상적인 존재로만 여겼다. 아무리 신성한 일을 한다지만, 그리고 세속에 찌들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라지만 저렇게까지 살아야 할까. 그리고 과연 저러한 삶이 행복할까 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2박3일 동안 느꼈던 그들의 삶은 막연했던 나의 생각을 변화케 했다. 순수한 가치를 추구하고, 물질이 아닌 다른 가치를 좆는 삶도 충분히 매력 있지 않을까.

 

마지막 날 저녁, 아내가 순례 장소로 신발을 챙겨 온 이필완 목사의 모습을 보고 연관스님은 "마누라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라며 농담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은 더 행복하다는 자랑을 하듯 말을 이어갔다.

 

"아무도 없는 한 겨울, 눈 펑펑 내린 깊은 지리산 속에서 텐트 쳐 놓고, 산골 개울에서 물 길러다가 짐 정리를 싹 해놔. 물 있지, 식량 있지, 나 혼자 있지. 이건 완전 내 세상이야. 거기서 라면 반개 삶아서 고추장 풀어서 소주 한잔 하면 캬…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오지 한가운데서 자연과 함께 했던 순간을 회상하는 연관스님의 표정에는 행복이 가득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깊은 산속, 하얀 눈 위에서 연관스님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는 상상을 했다.

덧붙이는 글 | 송주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대운하, #종교인, #도보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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