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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네도 이사갔네? 집도 다 허물어지고. 어디로 간겨?”

“모르겄어. 아들네로 갔거나 요 주변 어디로 갔겄지. 근데 서운하네.”

 

행정중심복합도시(일명 ‘세종시’)내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 중에는 1차 개발 지역이어서 이미 보상을 받고 고향을 떠난 마을도 있는 반면,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이어서 장기간 살아도 되는 마을도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고향마을(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자 중의 한 마을이었다.

 

‘올해 10월말까지는 집을 비워라’ 최후통첩

 

하지만 이번 설명절 즈음해서 갑자기 고향에서의 시한부살이 최후통보를 받게 되었다. 공식적인 문서로 통보를 받은 건 아니지만 마을 이장으로부터 받은 구두통보여서 공신력이 있는 통보였다. 그 내용인 즉 “올해 10월말까지 집을 비우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언제 고향에서 나갈지 모를 상황에서 우리 집은 미리 이사할 집을 구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다가올 현실을 생각하자니 마음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러한 소식은 설 명절을 맞아 기분 좋게 고향을 찾은 사람들에게 처음 들려온 소식치고는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 년은 더 살아도 된다고 해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올해까지 집을 비우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미리 짐작이나 했다는 듯 마을에는 이미 최후통첩을 받기 전인지 후인지는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게시물들이 벽에 나붙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내용을 살펴보니 경찰서에서 붙인 경고문이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내 가옥 및 축사 등에 대한 무단 철거 및 훼손행위를 금지합니다. 특히 슬레이트 등의 훼손시에는 '폐기물 관리법 제7조 및 동법 제58조 2항'에 의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쫓겨나는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마음대로 집을 건드릴 수도 없다. 하긴 이미 보상을 다 받은 터라 엄격히 말하자면 ‘내 것’이 아니라 ‘국가 것’이 되버렸기 때문에 당연히 훼손을 하면 안되는 것이지만 대대손손 살아온 ‘내 집’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과 이제 곧 ‘내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속에서 보낸 고향에서의 마지막 설 명절

 

이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맞은 설 명절. 명절이 즐거울 리 없었다. 지난해만 같아도 마을 사람 대부분이 집을 떠나지 않은 상태여서 민속놀이도 즐기고, 폭죽도 터트리는 등 마을이 시끄럽고 요란하여 명절 분위기가 났었는데 고향에서의 마지막 설 명절인 올해에는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고, 특히나 앞집 옆집이 이미 고향을 떠나 이웃들이 살던 건물조차 철거가 된 상태여서 너무나 쓸쓸했다.

 

연휴 둘째 날인 ‘설’에는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난 뒤 조상묘를 찾아 마지막 성묘를 했다. 조상묘도 마을 떠남과 동시에 이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성묘가 되었다. 성묘를 하고 난 뒤 다시는 보지 못할 조상묘를 카메라에 담고 산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노루 한 마리가 내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게 아닌가! 이제 마을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게 되면 산과 들에서 뛰어놀던 노루며 토끼 등이 마을의 주인노릇을 하며 활개를 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태어난 5마리 강아지들, ‘하필이면 이사해야 될 때 태어나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양지에서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는 강아지들이 보였다. 얼마 전 집에서 키우던 개가 낳은 5마리의 새끼강아지들이었다. 순간 ‘얼마 안 있으면 이사가야 하는데 왜 하필이면 이런 때 태어나서…’하는 생각과 동시에 ‘아파트로 이사가야 하는데 키우지는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부지! 강아지들은 어떻게 할 거예요?”

“키운다는 사람 있으면 줘야지 뭐.”

“어디 단독주택으로 이사가는 사람있으면 줘야 되겠네요. 아파트는 못 키우니까.”

“○○네하고 ○○네가 가져간다고 했는데 나머지는 어떻게 해야될 지 모르겠네?”

“그냥 두세 마리씩 가져다 키우라고 줘요. 여러 사람 줄 것 없이.”

“그래야 되겠다.”

 

태어나자마자 얼마 안돼서 어미, 형제와 생이별이라니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헤어지기 전에라도 잘 먹여서 보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고향에서의 마지막 설 명절은 특별한 추억도 만들지 못한 채 아쉬움 속에 지나가고 있었다. 비록 고향을 떠난 사람들도 많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만이라도 민속놀이라든가, 노래자랑이라든가 하는 어떤 행사를 해서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거리를 만들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수십 년 동안 터를 잡고 한 마을에서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아왔던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지만 함께 추억을 만들었던 고향만은 기억 속에 영원하길 기대해본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 ‘반곡리’를 가슴속에 되새기며…


태그:#반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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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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