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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가섭은 몰라도 '이심전심'이란 말은 불자가 아니라도 다 안다. 이심전심이란 말은 그러나 불가의 용어. 이 말의 유래는 부처님 제자 '가섭'에 의해 유래 됐다. 
 
석가는 영산에서 제자를 모아 놓고, 한 마디도 말을 않고 연꽃을 손가락으로 집어 여러 사람에게 보였다. 일동은 그 의미를 몰라 잠자코 있는데, 가섭만 석가의 손가락 끝의 꽃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고 한다.
 
이는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한다고, 이심전심(以心傳心). 그 이심전심에서 꽃피는 '염화미소'를 만나기 위해, 불가인이나 세속인이나 추구하는 길(道)은 하나가 아닐까.
 
 
석불사는 1930년 당시의 주지 조일현(용선)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석불상의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약사 여래불, 십일면관세음보살, 미륵존불, 십육나한, 사천왕(동방지국, 남방중장, 서방광목, 북방다문) 등 각위 불상이 봉치 되어 있다.
 
바위 절벽 정면에 절세가인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자비로운 미소를 띤 십일면관세음보살 입상이 연꽃과 같은 향기를 풍기며 반긴다. 새삼 지구 저 편 헤세의 "불타의 보배와 비밀은 그 가르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대각할 때에 체험한,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가르칠 수 없는 그 속에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범인에게 이 말은 가섭이 석가를 향해 웃는 미소만큼 어려운 화두이지만, 우리 삶 속에 진실하게 체험하고 겪은 것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게 될 때를 이르는 말 아닐까.
 
 
시간이란 왜 이렇게 거침없이 흘러가는 물과 같을까. 그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나는 석불사 오는 길, 초행길이 아니면서 정말 낯설었다. 꼭 10년 전에 이곳을 올라가던 내가 아닌 것이다. 나는 더듬더듬 기억을 더듬어서, 부산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해 구포역에 하차해서 200번 시내 버스를 타고 만덕터널 입구인 '병풍사 입구'에서 하차했다.
 
그러니 이 길은 지름길이 아닌 에둘러 온 길인 셈이다. 범어사 역에서 내려 범어사 행 버스를 타고, 금정산행길을 타고 넘어올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랬다면 더 산길의 풍경과 산성들과 성문과 그리고 금정산의 깊은 산품을 느끼면서 석불사에 당도했을 것이다.
 
그래도 숲길의 나무들이 우거진 숲 속의 새들이 아그르르…찌리리릭…호로록…짹짹… 반기듯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뽀족뽀족 돋는 새순들이 까치의 혀처럼 내밀고, 겨울 숲의 나무 향기에는 봄의 내음이 폴폴 바람에 날렸다. 
 
 
석불사… 석불사…. 그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절 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경주에도 석불사가 있다. 학창시절 수학 여행 때 봤던 거대한 석굴암 속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석가모니불과 함께 줄 지어 서 있던 십육나한상의 모습들이, 이곳 병풍암 속에 생불처럼 턱하니 둘러 서서 나를 내려다 본다.
 
살아오면서 남에게 죄 지은 것이 그리 많지 않다고, 감히 생각하는 내 죄(罪)를 향해 나무람을 하듯이 내려다 보는, 석불들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부리부리한 눈동자의 사천왕상들을 빤히 시선 마주 치기 힘든 것은 왜일까.
  
 
사리탑과 석등이 호위하듯이 서 있는 석불사 대웅전과 함께 장엄한 석불상은 국보급이다.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불상의 웅장미와 절로 고개가 숙여져서, 나는 절실한 불자처럼 백팔배를 했다. 그러나 여기 와서는 불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빼어난 신의 조각예술품을 보는 듯 넋을 잃을 것이다.
 
1930년에 창건된 석불사. 벌써 백년 가까운 세월의 이끼가 묻은 고색 창연한 사찰. 숱한 불자들의 손때가 묻은 반질반질한 석불상들은, 그 숱한 세월 속에서 민중의 기원과 기도로 더욱 성스러운 혼이 배인 돌 속의 부처들은 바로 미륵불의 현현이 아닌가.  
 
 
용왕당(석굴) 속에는 관세음보살 좌상이 모셔져 있고, 왼쪽 석굴 속에도 작은 불상들이 수십 개 놓여진 기도장이 있다. 기도장 위로 돌계단을 오르면 왼쪽 바위에 석가모니불을 위시한 십육나한상이 있다. 제일 높은 곳에 산신각이 있다. 대법당 처마 밑에도 사방으로 군데군데 불상이 놓여 있다. 얼마나 많은 불상들을 모시고 있는 것인가 열손가락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곳은 여행객에도 좋은 명승지지만, 부산 지역 외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는 곳이라 안타깝다고 혼자 생각하는 것도, 여기서는 유죄가 될 듯하다. 정말 이곳에 와서 발 아래 세상을 내려다 보면, 정말 와불이 된 듯 바위에 몸을 눕히게 된다.
 
편안한 몸과 마음이 되어 저 사바 세상이 부럽지 않고, 모든 욕심을 버리고 탈속한 스님들이 존경스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석불사의 예불 종소리…. 장엄한 신의 교향곡이다. 댕댕댕 울리는 저 종소리에, 불가에서 말하는 가릉빈가의 길고 긴 날개가 단숨에 삼천대계에 닿는 상상이 푸른 하늘에다 불화를 그리게 한다.
 
 
불교는 이미 '죄에 대한 싸움'을 말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현실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면서
'고뇌에 대한 싸움'을 말한다.
 - 니체
 
 
나는 불꽃보다 너를 사랑하노라
그 무슨 원을 그리며
불꽃은 밝게 빛나면서 세계를 경계지어도
그 바깥에선 아무것도 그것을 알지는 못하노니
- 릴케, 구도생활의 서(書)

태그:#석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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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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