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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이 불탔다. 길었던 설 명절 연휴의 끝자락 밤이었다. 처음엔 오보이거니 했다. 생중계되는 현장을 접하고서야 사실임을 알아차렸다. 소방 호스에서 쉼없이 뿌려지는 물. 그러나 끝내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숭례문을 살려내지는 못했다.

 

새벽 2시, 숭례문은 타다만 골조만 남았다. 기와를 얹은 지붕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무너져 내렸다며 분노했으며, 타오르는 숭례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어떤 이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렸다고도 했다. 

 

숭례문, 대한민국의 자존심? 글쎄

 

숭례문이 불타는 시간 숭례문은 이 나라 백성들에게 대한민국이기도 했고, 대한민국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국보 1호라는 서열이 만들어낸 자존심일 것이었다. 그러나 숭례문을 지켜내야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겐 숭례문이 대한민국도,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아닌 그저 하나의 문화재에 불과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의 생각이 맞다. 불탄 숭례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숭례문은 대한민국도, 대한민국의 자존심도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만 했을뿐 숭례문을 대한민국이나 대한민국의 자존심일 정도로 대접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무너졌다고 눈물을 흘렸다. 숭례문 화재로 인해 갑자기 높아진 우리의 문화 수준. 그러나 '갑자기 높아진 문화 수준'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그 열기가 흔히 그러했듯 끓어오르던 냄비처럼 쉬 식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까닭이다.

 

숭례문의 역사적 가치나 목조문화재로서의 희귀성은 인정한다. 불타는 숭례문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여느 백성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숭례문은 불탔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숭례문의 소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숭례문 화재로 인한 책임 공방도 뜨겁다. 여야 정치권을 비롯해 관리주체인 문화재청과 소방당국들도 연락을 했니 안했니 하면서 서로 치고 받느라 정신없다. 책임을 따지자면야 그 일에 연루된 이가 한두 사람일까. 책임 소재는 분명히 가려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숭례문이 우리의 눈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숭례문 반드시 복원해야 하나?

 

숭례문의 복원 문제가 뜨겁다. 완전 복원을 이루는데 최소 3년이 걸리고, 그 비용이 2백억이 든다는 섣부른 말도 나온다. 대들보용 소나무 하나 구하기도 어려운 대한민국에서 빠른 속셈이다. 이럴 땐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생각도 든다.

 

복원에 관한 문제가 나오자 이명박 당선자가 나섰다. 서울시장 재직시 숭례문을 개방했다는 자책감일까. 그는 숭례문 복원에 드는 비용을 국민의 성금으로 마련하자는 의견을 냈다. 언뜻 들으면 좋은 발상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국민의 성금으로 복원할 정도로 숭례문이 그러한 위치에 있단 말인가. 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자는 생각은 철없는 발상이다. 섬처럼 남아있는 숭례문은 불타는 순간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잃었다. 웅장한 모습으로 서울을 지키고 있던 때와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래서일까. 국민을 대상으로 성금을 걷겠다는 이명박 당선자의 의견에 반대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왜일까. 1년에 몇 차례나 자발적으로 성금을 내는 착한 백성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국민이 봉이냐, 라는 것이다. 심지어 숭례문이 평화의 댐이냐, 라는 사람도 있다. 숭례문이 대한민국도, 대한민국을 지켜낸 자존심이 아닌 까닭이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잿더미만 남은 숭례문을 반드시 복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다. 언죽번죽 정치적 논리 혹은 백성을 감성적 차원으로 몰고가서 복원을 진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국민 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려면 그 일에 따른 분명한 명분과 논리가 있어야 한다.

 

무너진 대한민국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도 숭례문을 복원해야 한다거나 국민적 자존심을 회복하자는 감성적 차원으로 접근하지는 말자. 그 일이 아니라도 우리는 지금껏 많이 아파왔으며 숱한 고통을 받아왔다. 태안 지역을 덮고 있는 유류를 제거하는 작업만도 국민은 벅차다. 차라리 죽어가는 바다를 보며, 그 일로 인해 목숨을 끊은 이들에게 눈물 흘리고 절망해야 한다.

 

서울의 상징인 숭례문. 생각없는 백성이 한 짓치고는 너무 큰 것을 잃었지만 화재 현장만 정리하고 남아있는 숭례문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면 안될까. 그 또한 우리의 역사라고 인정하며 후세에 물려줄 수는 없는 일일까. 숭례문 광장에 작은 숭례문 하나 만들어 놓고 이것이 불타기 전의 숭례문이었고, 불탄 모습이라고 문화재에 대한 교육의 현장으로 남겨두면 안되는 일인 것인가.

 

숭례문 현장 보존하여 역사를 대하는 '반성의 현장'으로 만들자

 

숭례문을 복원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문화적 자존심 또한 그렇게 한다고 해서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불탄 숭례문을 그냥 두고 그것을 '반성의 현장'으로 두는 것이 무너진 자존심을 그나마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숭례문이 비록 흉물로 남아있을지언정 우리도 '반성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 하나는 존재 시켜야 하는 것 아니던가.

 

이 나라엔 숭례문을 능가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많다. 봉정사의 대웅전이나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숭례문보다 역사적 가치가 크다. 그보다 앞선 시절에 건축된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도 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것이 문화적 자존심인 것을 감안한다면 숭례문이 아니라도 우리의 정신적 자존을 지킬 일은 많다. 

 

이쯤에서 대한민국의 상징이나 문화적 자존심이 필요하다면 숭례문이 아닌 다른 것은 생각해 봐도 되지 않을까. 국민적 성금을 걷는다면 그 돈으로 숭례문을 복원시킬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이 담긴 상징물을 만드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우리라고 프랑스의 에펠탑이나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성금이 쓰여질 곳이 있다면 숭례문이 아니라 전 백성의 이름이 새겨진 새로운 예술적 상징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대한민국이요,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다.

 

숭례문의 소실과 함께 우리가 지녔던 정신도 훼손되었다. 그러나 그 정신이 숭례문 복원과 함께 살아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제 상실감은 그대로 두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정신을, 새로운 자존심을 만들어야 한다. 문화적 자존심은 유형이 아니라 무형의 자산으로 만들어질 수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숭례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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