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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마지막 날이던 10일,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TV뉴스에서는 '숭례문 화재'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눈앞의 화면에서 우리 수백년 역사의 고스란한 숨결이 살아숨쉬는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고 있었다.  

 

끔찍한 광경에 놀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속절없이 숭례문이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제발, 기적이 일어나기를… 하고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빌었다. 하지만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화마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숭례문은 그 본연의 모습을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우리의 안전 불감증이 우리 역사의 소중한 건축물을 스스로 내버린 것이다. 하루종일 마음 한 구석에 쌓인 슬픔을 가눌 길이 없어 어디로든 떠나야 했다. 우리 문화재가 있는 어디라도 다녀와야만 할 것 같았다. 그것이 '국보1호'를 잃어버린 부끄러운 세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기 위안이었다.

 

발길이 닿은 곳은 곳은 대전시 가양동에 있는 대전시 유형문화재 4호인 우암사적공원이었다. 이곳 우암사적공원은 조선시대 유명한 유학자였던 우암 송시열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또한 조선의 건축을 감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사실 이곳은 숭례문 화재가 일어나기 전에도 들렀지만 숭례문 화재 이후 다시 한 번 찾게 되었다. 불안했다. 문화재가 보호되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스러움이 이제는 당연스럽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다행히(?) 우암사적공원의 건축물들은 너무도 평온스레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대전시 유형 문화재 4호인 우암사적공원을 국보 1호인 숭례문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는 둘 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 따질 수 없이 가치를 지닌 것들이었다. 

 

우암사적공원내의 문화 유산들을 돌아보며 다시는 우리의 안전불감증으로 문화재를 잃는 '망각' 증세가 생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화재를 보는 눈은 내 시선은 불과 이틀 사이에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매일 봐서 상투적이라 느꼈던 그 문화재들에 더욱 더 애착이 가고 애정을 쏟고 싶었다. 우리 문화재에 제대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언제든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 이번 숭례문 화재를 통해 철저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쓸쓸한 마음으로 우암사적공원 걸었다. 겨울 한파가 온몸을 떨게 만들었지만 마음에서는 뜨거운 열이 났다. 울분이 났다. 어떻게 나라의 보물이 그렇게 불에 탈 수 있는지 화가 났다. 아쉬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못했다.

 

그런 마음을 간직한 채, 우암사적공원 돌아다녔다. 공원 이곳저곳에서 오래전 제자들을 양성해내던 우암의 많은 공부방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공부방에서 우암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 공부방 하나하나의 이름에 새겨진 우암의 뜻을 알 것만 같았다. 

 

제일 처음 들른 곳은 견뢰재(堅牢齋)였다. 이곳은 '우암 선생의 마지막 교훈을 받들고 선현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라'는 뜻의 공부방이었다. 하지만 과연 선현들의 얼을 굳게 지키라는 그 가르침 앞에 우리 세대는 당당히 설 수 있을까? 그럴 자격이 있을까? 나는 답할 수 없었다. 

 

 

또다른 심결재(審決齋)라는 공부방은 나의 가슴을 더욱 아리게 했다. '매사를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라'는 그 이름은 당시 많은 선비들에게는 따끔한 죽비소리였겠지만, 지금은 미숙한 판단으로 나라의 보물을 상실케 한 후손들을 반성케 하는 울음소리로 들린다.

 

화재가 나기 전에 미리 안전검점을 제대로 했다면, 화재가 난 후 바로 올바른 대처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돈다. 올바른 결정을 하지 못해 소중한 문화유산을 잃었다는 그 미숙함, 동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일이었다.

 

 

그런 무거운 마음을 안고 계속 걸어갔다. 그러데 눈앞에는 '마음을 곧게 쓰는 집'이라는 이직당(以直堂)이 보인다. 그 이름은 그 옛날 이곳에서 공부하던 선비들의 고민을 풀어주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 이직당이란 이름이 필자에게도 작은 마음의 평온을 쌓아줄 수 있을까? 부디 그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마지막으로 인함각(忍含閣)에 들렀다. 단아하게 잘 정돈된 공부방은 당시 공부에 매진했을 선비들의 고풍스런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 풍경속에서 우암 선생님이 따끔하게 외치는 듯했다. 괴로움은 잊고, 참아야 한다고. 그리고 지금을 반성의 기회로 삼으라고 말이다.

 

인함각의 뜻은 '모든 괴로움을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지금 우리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중한 국가 제일의 문화유산을 잃어버렸다는 정신적 공황상태 속에서도 '모든 괴로움을 참고 또 참자'는 그 한줄기 문장은 작은 희망이나마 갖게 만들었다.

 

그 인함각의 뜻을 우리는 아로새겨야 할 것 같다. 국보 1호, 민족의 자부심을 상실했다는 그 괴로움이 크지만 그런 괴로움을 참고 또 참아야 할 것 같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두 번 다시 조상들의 숨결이 담겨있는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런 다짐 속에 우암사적공원 기행은 끝이 나고 있었다.


태그:#우암사적공원, #송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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