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단순한 문화재 아닌 역사와 삶의 숨결이 깃든 '생명'

 

유행하는 사극의 한 장면처럼 숭례문이 불타오르던 지난 밤, 새벽이 밝아오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2층 누각이 주르륵 폭삭 무너지는 것을 보고서는 더욱 잠들 수가 없었다. 지난 밤을 그렇게 지새운 이가 어디 나 뿐이겠는가!

 

아침이 되자 방송사들을 비롯해 온․오프라인 신문을 비롯한 매체들도 '국보1호' 숭례문의 주검을 펼쳐 보이며 보도하고 나섰다. 한결같이 숭례문 앞에 '국보1호'라는 수식어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숭례문이 '국보1호'여서 더욱 안타깝다는 논조였다. 방송사와 인터뷰를 한 시민은 "국보1호 숭례문이 무너진 것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무너진 것"이라며 울기까지 했다.

 

안타까운 마음을 진정하고 좀 생각해보기로 하자. 우리가 안타까움으로 분노를 느끼는 까닭이 숭례문이 '국보 1호'이기 때문인가? 그것이 국보500호나 보물1000호쯤이었다면 불기운에 휩싸인 생중계 화면을 외면하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안타까운 마음이 지금의 1/500이나 1/1000로 덜해졌을까? 또 대한민국의 자존심은 온전했을까?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일제가 붙여놓은 숫자의 나열에 불과한 '국보 1호'라는 의미에만 혹해서는 안 된다. 숭례문 화제가 안타까운 이유가 '국보1호'이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국보1호이든 보물1000호이든 그것들은 우리의 역사와 삶의 숨결이 고스란히 깃든 ‘생명’이다. 수백년 수천년을 우리와 함께 숨쉬며 살아온 '생명'이기에 소중하고 안타까운 것이다. '생명'에 숫자로 매겨진 등급이란 있을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600여년의 생명을 이어온 숭례문 불과 5시간 만에 폭삭 주저앉고 만 것은 그래서 안타깝고 분노할 만한 것이다. 생명을 생명으로 느끼지 못하고 박제된 '문화재'로 방치, 마침내 숨통을 끊어버린 우리의 무지와 천박함에 마땅히 분노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복원됐을 때는 '자존심 살아났다'고 기뻐할 것인가 

 

사실 오늘의 사태는 충분히 예견된 바 있다. 얼핏 생각나는 것만 들어보아도 ▲국제검사협회 경복궁 경회루 만찬(2004년) ▲ 세계신문협회 창경궁 명정전 오찬(2005년) ▲여주 효종대왕릉 재실 앞 오찬(2005년) 등이 이러한 사태의 전주곡들이었다.

 

이들은 문화재를 관리·감독하는 관청에서 주관하거나 허락한 '문화재 죽이기'였다. 더불어 드러나지 않게 개인들이 행한 문화재 죽이기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이것은 문화재에 대한 기본적 인식을 갖추지 못한 천박함이 낳은 '횡포'였다. 이 횡포의 처참한 결과가 지난 밤 우리가 생중계 화면을 통해서 본 숭례문의 모습이다.

 

그러나 여전히 개발 우선 논리를 앞세운 정책들은 추진돼 왔고 또 추진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화재는 모른 척 깔아뭉개거나 안 본 척 덮어버리는 사례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안다. 겉으로는 5000년 역사라며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마다하지 않지만 뒷구멍으로는 한 번의 삽질로 거덜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마저에도 무관심한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래놓고서 "‘국보1호’가 불에 타 버려서 어떠하다"고만 과장된 슬픔을 보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숭례문은 복원될 것이다. 그 때 가서 또 '국보1호' 숭례문의 복원을 두고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살아났다"며 과장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일이 얼마나 알량한 것인지는 굳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5천년 역사와 문화를 하루아침에 거덜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과장된 슬픔이나 분노, 싸구려 책임공방 따위가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숭례문#남대문#국보1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