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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는 바다가 푸른 빛깔을 이룬다.
▲ 거제 바다 거제도는 바다가 푸른 빛깔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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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하면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이어 해금강이 떠오른다. 그 모습이 각각 다르고 아름다워서 마치 금강산의 해금강을 연상하게 한다는 해금강. 그만큼 바위섬과 주변 경치가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다. 주변은 모두 사면이 바다여서인지 푸른 쪽빛 바다를 이루고 있다. 또 한국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거제 포로수용소가 생각나는 곳인데 이곳에는 의외의 산성이 많다.

바다만 아름답다고 생각한 거제도는 미처 몰랐던 산성의 고장이다. 20여 곳의 산성이 있으니 말이다. 좁은 면적에 비해 많은 산성이 있는데, 그것은 아마 왜구와 치열한 관련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좁은 면적에 비해 많은 산성... 지세포만은 거제도를 지키는 전초기지

지세포에서는 견내량이 보인다.
▲ 지세포성 지세포에서는 견내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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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세포성은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선창 마을 뒤편에 있는 산성으로, 돌을 쌓아 성벽을 이루고 있다. 성의 동쪽은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지만 그 외의 부분은 논밭의 축대나 가옥의 담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동쪽은 일본 대마도 방향으로 견내량 바깥쪽의 지세포만은 거제도를 지키는 전초기지였다.

성벽이 위로 갈수록 잘 남아 있다.
▲ 지세포성벽 성벽이 위로 갈수록 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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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사방에 성문을 두고 그 사이 사이에 성루를 두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인종 때 왜적의 침입을 걱정하여 영남 6부의 2만5000명의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쌓은 성으로, 성 아래 진을 두고 수군을 배치하여 방어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성은 함락되었고 대마도의 왜구들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인 것으로 보인다.

가배량성

성벽 일부가 평지에 남아 있다.
▲ 가배량성 성벽 일부가 평지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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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19년(1486) 처음 쌓은 것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우수영을 한산도 두억포에서 전라도 녹도, 진도로 옮겼다가 거제 오마포로 옮기면서 성을 쌓았다. 선조 34년(1601)에는 오마포에 통제영이 있었으나 통제영으로 적당하지 못해 고성군 춘원포로 옮겼다가 다시 통영으로 옮겼다. 성의 서쪽과 남쪽 일부에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지키기 위해 물길을 내어 만든 해자가 있으며, 서남쪽 봉우리에는 망대터가 남아있고 통제영의 관아가 있던 곳도 주춧돌이 남아있다. 지금은 성벽 일부만 남아 있다.

거제도민들의 힘으로 축조한 성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주변이 내려다 보인다.
▲ 옥산성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주변이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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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성은 수정봉 정상에 쌓은 산성으로, 수정봉성이라고도 부른다. 성문 밖에 세워진 비석에 새긴 글에 의하면 조선 고종 10년(1873) 거제부사 송희승이 조정에 지방의 행정·경제·군사 중심지에 읍성을 쌓자고 건의하였다. 이에 왕은 거제의 읍터를 3번이나 옮겨서 백성의 부담이 너무 크다 하여 허가하지 않자 송희승은 대신 수정봉에다 거제도민을 동원하여, 8개월만에 성을 완성시켜 군기와 군량을 비축하고 해변방어의 거점으로 삼았다고 하며, 동·서·남·북 4개의 문이 있다.

비문에는 축성 당시 내용과 거제부사 송희승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 옥산성지 비 비문에는 축성 당시 내용과 거제부사 송희승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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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암 목조여래 삼존불좌상

작은 불상이나 거제지역 불상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세진암 목조여래 삼존불좌상 작은 불상이나 거제지역 불상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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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성지 아래에 있는 이 불상은 1703년(숙종 29)에 와룡산 심적암에서 제작된 것이다. 현재 세진암의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고 삼존불 모두 방형의 대좌 위에 가부좌한 상태이나, 대좌는 후대 것으로 추측된다. 1991년 개금불사 당시 불상의 저부 복장공에서 동참한 지본주서명의 시주자 명단이 들어 있는 복장기가 발견 되었다. 양협시의 보관은 후대에 별도 조립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이 지역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폐왕성지 

주변이 잘 정비되어 있다.
▲ 폐왕성지 주변이 잘 정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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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면 우두봉에 정상에 쌓은 산성으로 고려 의종 24년(1170) 정중부를 비롯한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의종을 폐하고 아우인 명종을 왕위에 올리는 무신정변이 있었다. 폐위된 의종은 거제도로 추방되어 3년간 이 산성에서 지냈다고 전한다.

성 밖 주위에 돌을 쌓아 참호를 만들어 외부의 적을 경계하였고, 성의 서쪽 산등성이에는 산성을 쌓았다. 곳곳에 누각을 세웠던 터와 연못이 있으며, 북단에는 기우제와 산신제를 행사하던 제단이 놓여 있다. 이 지역은 고려 관아의 터로 아랫마을에는 군량을 위한 밭을 두어 농사를 짓도록 했으며, 윗마을에는 말을 기를 수 있도록 하였다. 2004년 10월 주변 발굴조사 결과 시대가 통일신라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거제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성곽으로 판된된다.

오량 석조여래좌상 

예전 호분의 흔적을 말끔히 다 벗겨내어 전체적인 느낌은 예전과 다르다.
▲ 오량 석불좌상 예전 호분의 흔적을 말끔히 다 벗겨내어 전체적인 느낌은 예전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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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현재 신광사에 있으며 1950년경에 오량리 절골의 석불암 앞산에서 발견된 불상이다. 거제도에서 이런 큰 불상이 나온 것은 드문 일인데, 1170년에 고려 의종이 거제도에 폐왕성(廢王成)을 쌓고 3년간 머물면서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불상은 예전 호분 흰칠을 두껍게 했던 것을 벗겨낸 듯하며 오른쪽 귀는 일부 파손된 것을 보수한 듯 보이며, 허리가 잘록하며 상체에 비해 무릎이 높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입은 옷은 비교적 얇은 편인데 밀집된 옷주름을 보인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으로 석가모니불로 보이며 대좌는 연꽃무늬가 상대와 하대에 새겨져 있고 중간 중대석은 후대에 것으로 보인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오량성

주변이 잘 정비되어 있다.
▲ 오량성 주변이 잘 정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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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연산군 6년(1500)에 쌓은 성으로, 성의 형식은 인근의 사등성이나 고현성과 같이 큰돌을 밑에 쌓고 작은돌을 그 위에 올려 쌓았다. 성 안은 대부분 민가가 들어선 마을이고 성 밖은 논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평면 형태는 남북이 조금 긴 장방형의 석축성으로 사방에 문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세 곳에 치(雉)가 남아 있다. 2007년 석축을 쌓아 성곽 일부 복원했다.

거제시는 왜구의 침략 등으로 쌓은 옛 성이 많이 잘 남아 있어 산성 들을 묶어 거제만의 독특한 성(城)문화를 투어 코스로 개발하고 역사적 사실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다면 주말 각광 받는 명소가 되지 않을까? 산성은 유구한 역사를 규명하듯 오늘도 우리를 기다린다.


태그:#거제도, #폐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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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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