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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발자국>을 읽었을 땐, 이 책이 단순히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간략히 해설을 달아놓은 해설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보니 연대도 뒤죽박죽, 기록된 사건, 인물들이 엉켜있어서 참 이상한 책도 다 있구나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참을 읽다보니 필자의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자국>은 단순히 해설서로 규정할 수 없는 책이었다. 그 이유는 각 인물, 사건에 대한 짧게 혹은 적잖게 들어가 있는 저자의 평 때문이었다. 저자의 평은 객관이라는 이름 아래 평이하게 흐르기 쉬운 책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각 역사적 사건에 대한 주관을 담은 저자의 생각은 속이 시원할 만큼 시원하고 후련했다. 특히 한국 근대 현대사 부분에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였다. 뒤늦게 책의 성격과 저자의 신상에 대해 눈길을 둔 것은.

 

<발자국>을 지은 저자는 파리 유학을 다녀온 저널리스트 고종석이었다. <고종석의 영어이야기> <모국어의 속살> 같은 언어책을 낸 저자의 문장은 <발자국> 책 속에서 빛을 발한다.

 

<발자국>은 2000년 11월부터 2005년 2월 말까지 한 일간지에 칼럼으로 연재했던 글을 추려서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때 쓴 칼럼의 내용은 그날 그날에 있었던 역사 사건의 논평이었다. 저자 고종석은 책을 준비하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어떤 글들은 밋밋한 기술에 치우쳐 있고, 어떤 글들은 위태로운 논평에 치우쳐 있다. 사람이나 사건에 따라 내게 개입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정도가 달랐다는 뜻이겠다. 의견이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겠으나, 기록된 사실(事實)들만이라도 사실(史實)과 어긋나지 않았으면 좋겠다.(407쪽)      

 

그런 역사적 사건과 인물이 정확히 한 주제당 한페이지씩 기록되어 있는 <발자국>은 '고작 1페이지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겠어?' 하는 우려를 보기좋게 깨버린다.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담은 고종석의 의견은 역사를 읽는 이에게, 현상을 풀어가는 올바른 열쇠를 제공해 준다.

 

정당의 이름이 반드시 그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공화당이 실속 있는 공화주의를 실현해 오지 않았듯, 지금의 영국 노동당도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1979년 12월의 군사반란과 이듬해 5월의 민간인 대량 학살을 밑절미 삼아 만들어진 정당이 민주정의당이라는 이름을 내건 것은 우리 현대사의 한 희극적 에피소드를 넘어서 한국어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할 만했다.(25쪽)

 

한국 역사에 대한 저자 고종석의 개입은 짧지만 강렬했고, 또한 정확했다. 그런 평은 비단 한국 역사를 넘어 세계의 역사적 사건으로 넘어간다. 링컨에서부터 시작한 저자의 역사 바라보기는 에이프릴 풀과 바오다이를 거쳐 나폴레옹과 조세핀 그리고 보어전쟁으로 끝을 맺는다.

 

그 각각의 인물들, 그 각각의 사건들이 다른 역사적 사건들과 어떤 차이를 통해 선정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책 말미에 고종석은 남성보다는 여성, 백색보다는 유색인, 다스리는 자들보다는 저항하는 자들을 다루려고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사가 힘 센 자들에게 편향되어 있다는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그런 아쉬움 속에서도 저자의 따끔한 일침이 조금이나마 역사의 균형을 잡아주니 말이다.

 

사람들이 결코 건드리지 못한 것

난 그걸 건드렸고 그걸 말했네

아무도 그것에서 상상하지 못하는 것

난 그 모든 걸 캐냈네

- 아폴리네르

 

책 서두에 씌여져 있는 말처럼, 고종석은 결코 쉽게 건드릴 수 없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용기 내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역사의 무게에서 보자면 그의 의견은 하나의 물방울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고정석의 <발자국>도 '과연 어떤 역사를 바라보아야?'하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푸는 열쇠를 제공해준다.

덧붙이는 글 |  발자국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발자국 - 역사의 발자국 헤아리기

고종석 지음, 마음산책(2007)


태그:#고종석,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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