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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드라마의 조기종영 여부는 일반적으로 시청률에 좌우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국민의 낮은 지지율로 '빨간불'이 켜지면서 조기종영 논란에 휩싸였다. 인수위가 법률로 정해진 '권한과 역할'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세우지 못하고, '과속'과 '월권'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4일 한나라당에서조차 인수위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강재섭 대표는 "인수위는 인수위법에 의해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아주 신중하고, 겸손하게 좀더 차분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며 "너무 오버하면 결국 반발이 일어나게 돼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날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전재희 최고위원은 "영어 공교육 강화, 통신요금 인하와 같은 것은 부처 장관이 새로 취임해서 점검, 협의, 조정해서 발표해야 될 것인데, 그것을 인수위에서 마치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다 보니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한다"며 "과욕을 부려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강재섭 대표는 "인수위는 한나라당이 망망대해에서 잡아온 고기를 부두에서 인수받아 공판장까지 운반하는 역할"이라며 "공판장에서 다시 당이 나서서 국민들에게, 고객에게 팔아야 한다"고 '역할 규정'을 분명히 해줄 것을 요구했다. 

 

인수위 법정 활동기한은 3월 27일까지

 

이런 분위기 탓인지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이날 간사단회의에서 "이번 주는 연휴 때문에 짧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도 했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전날(3일) "규제개혁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설 연휴 전후에 청와대 수석, 비서관 인사와 조각 작업이 발표되면 그동안 인수위에서 해 왔던 여러가지 작업이 최종 정리된다"며 "사실상 그것으로 인수위 활동은 마감한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또 "큰 틀의 정책방향은 잡았으니 인수위(활동)는 90% 이상 끝난 셈"이라며 "설을 전후해서 총선에 출마하실 분들은 총선 현장에 나가서 뛰도록 배려하고, 정부 파견 공무원들도 최소 필요 인력만 남기고 원대 복귀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수위 대변인실은 기자들과 함께 5일 오후 '쫑파티' 계획을 잡고 있으며, 설 연휴 기간인 6일 오후부터 8일까지는 기자실 문을 아예 닫기로 했다.

 

오는 5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국정과제 보고를 마치고 나면 사실상 인수위 활동이 마무리 된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이하 인수위법)에 정해진 인수위의 활동 기한은 '대통령 임기 개시일 이후 30일까지'이다. 오는 3월 27일까지는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정 활동기간을 채우는 것은 고사하고, 대통령 취임식을 20여일이나 남긴 시점에서 벌써 파장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언론 친화' 정권의 '언론 원망'

 

이동관 대변인은 3일 브리핑에서 완곡한 표현이었지만, 언론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그는 "언론 기사가 때로는 엄청난 혼란을 불러온다"면서 '영어 잘하면 군대 안 간다' 등의 기사를 예로 들었다.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오늘 이후로는 불필요한 정책 기사는 쓸 필요없다. 맞지 않기 때문"이라며 취재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출범하면서 호기롭게 '프레스 프렌들리'(언론친화적)를 표방했던 인수위가 이제와서 '언론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변인은 '사담'을 전제로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참 어렵다. 구체적인 것을 하면 '인수위가 그것까지 하냐'고 하고, 안 하면 '구체적인 안을 내지도 않을 거면서 왜 했나' 비판한다. 어쩔 수 없다."

 

특히 이 대변인은 "인수위에 대한 개념 규정에 저희가 혼란이 있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했지만 실제로 언론도 혼란이 있다"며 "최종 결정처럼 기사를 쓰는데,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비판론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인수위법 위반한 인수위

 

그러나 인수위의 '조기종영'이 과연 '언론 탓'일까? 인수위의 권한과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인수위법 6조는 '대통령당선인을 보좌하여 대통령직의 인수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대통령직 인수위를 설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특히 인수위의 업무(7조)는 "1 정부의 조직.기능 및 예산현황의 파악. 2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설정하기 위한 준비. 3 대통령의 취임행사 등 관련 업무의 준비. 4 그 밖에 대통령직의 인수위 필요한 사항"으로 규정돼 있다.

 

인수위 업무의 핵심은 '파악'과 '기조설정을 위한 준비'. 인수위가 발표한 정부조직의 전면적 개편안이나 교육체계를 뒤흔들 수 있는 대학 자율화 및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 등은 인수위의 '월권' 논란을 불러오기 충분하다. "대선이전 부터 준비한 것으로 절대 졸속이 아니다"(진수희 인수위원)라고 해명하지만, 그렇더라도 인수위에서 몇 차례의 회의를 거쳐 즉각 발표할 사안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인수위는 "위원회의 직원은 위원회의 업무에 전념해야 한다(13조)"는 조항과도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왔다. 휴대 전화비·유류세 인하, 신용불량자 원금 탕감, 산업평화정착 태스크포스 구성, 영어몰입교육 제도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발표했던 많은 정책을 스스로 되돌리면서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인수위는 또 '14조 비밀누설 및 직권남용의 금지'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박광무 전문위원의 언론사 성향조사는 직권남용의 사례로, 고종완 자문위원의 고액 부동산 컨설팅 등은 비밀누설에 의한 직권남용 사례로 기록됐다.

 

시청률은 떨어지고, 출연자는 '총선 앞으로'

 

인수위의 '월권'과 정책 혼선은 곧바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당선인측 자체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대선 이후 최고치에서 무려 10%포인트가 빠진 60% 수준으로 알려졌다. 인수위에 대한 평가 역시 긍정 답변이 50%를 겨우 넘는다고 한다. 이명박 당선인이 휴일인 지난 2일 전략 참모회의를 긴급 소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인수위의 설익은 정책으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서 '이명박 피로 현상'이 나타났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 등 의욕만 넘친 설익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 국민들의 피로감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결국 인수위에 대한 '시청률'이 떨어지자, 활동을 조기에 마무리할 필요가 제기된 셈이다. 게다가 '출연자'들 역시 4월 총선을 앞두고 저마다 "고향 앞으로"를 외치고 있는 것도 인수위의 '조기종영'을 앞당기고 있다.

 

이 당선인 최측근이며 정부조직개편안 등 물밑 작업을 담당했던 박형준 의원이나 진수희,박진 의원 등은 이미 총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 당선인 캠프의 안방 살림살이를 책임져 온 백성운 인수위 행정실장이나, 한반도대운하 등 당선자의 정책 밑그림에 일조했던 김영우 국제전략연구원 정책실장 등 5~6명의 인수위 관계자 역시 공천을 따기 위해 분주하다.

 

이동관 대변인은 "인수위원들 '마음은 콩밭에'라는 기사는 쓰지 말아달라. 공천 신청을 하고 있는데,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인수위라는 조직은 알다시피 한시적 임시 조직이라 일 하다가 임무가 끝나면 돌아가는 게 온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수위 활동 시한이 아직 20여일이나 남은 상황에서 총선 때문에 이탈하는 것은 결국 인수위 활동을 '이력서용'으로 생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태그:#이명박 당선인, #인수위원회, #영어 공화국, #강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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