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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마재 마을 길마재 마을 위쪽에서 내려다 본 아랫마을
길마재 마을길마재 마을 위쪽에서 내려다 본 아랫마을 ⓒ 이연옥

1월 31일 아침이었다. 집안 일 하느라 한참 분주한데 밖에서 방송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고 귀를 기울여 보았다. 

"알려드립니다. 오늘 저녁 길마재 마을 부녀회의가 있으니 한 분도 빠지지 마시고 마을회관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저녁식사를 하시고 7시까지 마을회관으로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을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부녀회원 집합을 알리는 방송이다. 지난해 12월 31일에 있었던 송년 부녀회의에서 결정된 일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동안 안현동 길마재 부녀회는 1년에 한 번씩 연말에만 만났다.

그런데, 그날 모임에서 "이러다가는 얼굴도 잊어버리겠다"는 의견이 나왔고, 새해부턴 한달에 한 번씩 만나기로 결정했다. 모두 모여 새로운 계획도 세워보고 예전처럼 돈독하게 지내보자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래서 마을 부녀회장이 회원들을 호출한 것이다.

길마재 윗마을 길마재 윗쪽으로 바라다 본 마을 풍경
길마재 윗마을길마재 윗쪽으로 바라다 본 마을 풍경 ⓒ 이연옥

그동안 무엇이 그리 바쁜지 한 동네에 살아도 동네 형님들이나 아우들 얼굴 한 번 보기가 힘들었다. 서로 바쁘게 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마을 부녀회의를 하지 않아도 마을 앞에 있는 대동우물에 모여 빨래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었다. 하지만, 마을에 공장이 들어서고 농지가 줄어들어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늘면서, 한 마을에 살면서도 얼굴 보기가 어려워진 것.

더구나 집집마다 수도가 생기고 세탁기로 빨래를 하니 빨래터에 나갈 필요도 없고 물을 길러 갈 필요도 없게 되었다. 게다가 집근처에 공장들이 들어서서 집과 집을 가로 막으니 담 넘어 얼굴을 볼일도 줄어들었다. 또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으니 마을에 나와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그리 쉽지 않다.

부녀회원들 오랫만에 만나서 반가운 사람들
부녀회원들오랫만에 만나서 반가운 사람들 ⓒ 이연옥

부녀회가 열리는 저녁이 됐다. 다른 일 모두 접고 마을회관으로 달려갔다. 동네 형님들이 한 분씩 오기 시작하더니 마을 부녀회원의 거의 반 이상이 모였다. 참 정다운 얼굴들이다. 내가 처음 이분들을 만났을 때는 새색시 시절이었고 형님들은 곱기만 하던 시절이었는데 벌써 60대 중반을 훌쩍 넘으셨다.

형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안현동 길마재 사람들 생활의 중심지였던 대동우물 이야기가 먼저 나와야 한다. 그 시절 우리는 새색시였고 형님들도 곱디 고운 모습으로 아주 젊은 아기 엄마들이었다. 그 때는 마을의 모든 이야기들이 이곳에서 전해졌다. 안 좋은 일일수록 너나없이 거들어 주고 함께 해주면서 그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부녀회원들 만나면 할 말도 많은 사람들
부녀회원들만나면 할 말도 많은 사람들 ⓒ 이연옥

이젠 형님들에게서 예전의 팽팽한 피부도, 고운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얼굴엔 주름지고 허리가 굽고 다리가 아파서 잘 펴지도 못하고… 영락없는 할머니 모습이다. 물론 그 시절 새댁이었던 우리들도 늙수그레한 모습이지만 동네 형님들과 만나면 우린 예전의 철부지 새색시로 돌아가게 된다.

시간이 흐르자 회관 안방이 부녀회원들로 가득찼다. 오늘은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젊은 내외가 참석했다. 모두 그들을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우리 마을은 서울과 부천 그리고 인천이 가까운 도시 근처의 자연부락이지만 젊은이들은 다들 도회지로 나가고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산다. 젊은이들의 참여는 부녀회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새로 이사온 젊은 내외 젊은 사람들의 참여는 분위기를 새롭게 한다.
새로 이사온 젊은 내외젊은 사람들의 참여는 분위기를 새롭게 한다. ⓒ 이연옥

부녀회장님은 먼저 새로 이사 와서 처음 참석한 젊은내외 소개를 하며 앞으로 부녀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협조해달라고 부탁의 말씀을 한 후, 인사말을 시작하였다.

"올해부터 다달이 하기로 했던 부녀회의에 이렇게 많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노년을 즐겁고 아름답게 보내기 위해서 우린 예전의 대동 우물에 모여서 물긷고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 시절처럼 인심 좋고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지 한 가지씩 의견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런데, 모두 상대방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볼 뿐,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부녀회장님의 이야기 마을의 인심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의견을 모은다.
부녀회장님의 이야기마을의 인심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의견을 모은다. ⓒ 이연옥

회장님이 "군석엄마는 밖에 자주 나가니 좋은 의견 좀 내 놓아 봐요"라고 하자, 다른 엄마들의 시선도 군석엄마에게로 향한다.

"내가 밖에 나가면 뭐 좋은 수가 있나? 다들 바빠서 얼굴도 보기 힘드니 시내로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뿐이지"

한쪽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진지하게 오가는 동안 다른 한 쪽에선 "텔레비젼 켜봐. 지금 <아현동 마님> 할 시간이야"라며 텔레비젼을 켜고 드라마를 보기에 여념이 없다.

부녀회의 전경 회의에서 진지하게 토론하는 부녀회원들
부녀회의 전경회의에서 진지하게 토론하는 부녀회원들 ⓒ 이연옥

부녀회장님은 근처 여러 동네 마을회관에 모이는 부녀회원들 예를 들어 이야기를 하신다.

“옆동네 장낙골 부녀회는 날마다 마을회관에 모여서 윷놀이도 하고 치매에 좋다고 화투도 하고, 마을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내일처럼 나서서 서로 도우며 지낸다우. 그래서 마을 회관이 동네 사랑방이예요. 우리동네도 예전과 같이 자주 얼굴도 보고 동네 돌아가는 일들도 알려면 함께 모여서 할 수있는 일이 있어야 하잖습니까? 그래서 노년을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한 쪽에선 "우리들은 화투는 못하니. 윷놀이를 하는 거 어떨까"한다. 그러자 아랫집 형님이 "윷은 우리집에 있으니 가져다 해"라고 말한다.

다과준비 다과를 준비하는 부녀회원들
다과준비다과를 준비하는 부녀회원들 ⓒ 이연옥

부녀회장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마을 회관을 이용해서 자주 얼굴을 보며 재미있게 살아보자고 의견을 제시하고 또 의견을 내놓기를 바라신다.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결론은 몇 가지로 3가지 정도로 압축됐다.

첫째.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달에 한 번씩 부녀회를 한다.
둘째. 한 달에 한 번씩 친목회처럼 집집마다 돌아가며 식사를 대접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세째. 시간이 나면 동네 밖으로 나가지 말고 마을회관에 모여서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갖자.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라 마을 회관에 모여서 소일을 할 정도로 시간이 많지 않지만 늙어가면서 모두들 함께 하고자 하는 그 마음들이 참으로 아름답기도 하다. 1년에 한 번씩 연말에나 만나던 부녀회를 한 달에 한 번씩 하기로 하고 첫 달에 과반수 이상의 부녀회원이 모인 것은 올해의 마을 인심찾기에 우선적으로 성공을 한 셈이다.

마을 행사모음 사진 마을 회관에는 마을 행사를 한 사진들을 모아 걸어 두었다.
마을 행사모음 사진마을 회관에는 마을 행사를 한 사진들을 모아 걸어 두었다. ⓒ 이연옥

젊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다 빠져나가고 공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동네에 예전의 그 인심들을 지키고자 다시 모인 우리동네 부녀회다. 아마도 올해의 계획과 결심은 앞으로 우리 마을의 인심을 새롭고 훈훈하게 하리라는 예감이 든다.

모두들 자리를 비우고 떠난 회관 안방이 새삼 따뜻한 훈기가 도는 것은 웬일일까. 돌아가는 구부정한 마을 형님들의 뒷모습이 한결 정다워 보이고 안쓰러워 보이는 것도 다시금 살아나는 훈훈한 인정의 탓이리라.


#마을 부녀회의# 대동우물# 인심찾기#노년을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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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민뉴스에 기사를 20 건 올리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오마이 뉴스에도 올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올렸던 기사는 사진과 함께 했던 아이들의 체험학습이야기와 사는 이야기. 문학란에 올리는 시 등입니다. 이런 것 외에도 올해는 농촌의 사계절 변화하는 이야기를 사진을 통해서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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