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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이현이 쓴 <풍선>은 제목이 주는 가벼움처럼 상쾌하게 읽히는 산문집이다. 책 서두에서 저자는 이 책이 소설 작업 틈틈이 쓴 산문이라고 밝혔는데, 그렇기 때문일까? <풍선>은 대부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소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소소한 것들에 관한 감상, 또 일상에 대한 사소한 잡담들이 책을 채우고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영화, 혹은 드라마 그리고 심지어 만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그렇기 때문일까. 저자의 시선은 이런 일상적인 것에 머물러 독자와의 자유로운 잡담을 시작한다.

 

나는 속물인가? 그것이 세상의 속된 기준에 민감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라면, 흠흠, 쉽게 부정하지 못하겠다. 친구가 아파트를 구입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시세가 궁금해지고, 그저 그렇다고 여겼던 작품이 유수의 문학상을 탔다는 말을 들으면 부박한 내 취향을 의심하게 된다. - P.37

 

그의 여러 대중매체 프로그램에 대한 평은 3인칭, 혹은 1인칭, 혹은 작가 관찰자 시점이 되어 자유자재로 각 작품을 넘나든다. 재밌는 것은 책 속에 소개된 작품들을 대부분 봤던 필자도 이책을 쓴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아 저 작품에선, 저랬었는데"하는 일종의 동질감을 말이다.

 

아마 대부분의 '대중적인 사람'들 역시 비슷하게 공감할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을 쓴 저자가 대중적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런 대중적이라는 말이 소설가인 저자에게 실례되는 말은 아닐까? 아니다. 사실 저자 스스로도 사람들이 자신을 소설가라는 직업만으로 어렵게 생각하는 것을 조금은 부담스러워할 정도니까 말이다.

 

그의 생각은 일반 대중의 그것과 참 비슷했다. 일반인과 참 비슷하게 생각하고, 생활하는 소설가가 있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 같다. 그렇기에 <풍선>을 통해서 독자들과의 잡담을 진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잡담의 끝은 대부분 사랑에 관련되어 끝이난다. 책 표지에 빨간 글씨로 씌여있는 '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다'는 것처럼 <풍선>은 영화, 드라마 속 인물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사랑이야기에 대해 때론 긍정, 부정 등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이윽고 소녀는, 문을 연다.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껴안는다.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나는 천천히 깨닫는다. 어떤 영화가, 해피엔드로 끝난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바로 그 시간부터 인물들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게된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이 우르르 몰려나간 뒤에도, 부대끼고 아파하고 기뻐하고 울고 웃으면서 그들은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 P.157

 

가령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공감하고, <마파도>를 보며 "할머니 멋지다"고 말하는 저자는 흔히 소설가라는 무게감을 벗어던지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이웃집 누나의 투정처럼 기분좋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그 가벼운 소재 속에서 저자가 적어내는 한줄기 언어들은 왠지 모를 여운을 남긴다.

 

아마도 똑같이 대중문화를 보고, 같이 인터넷을 즐겨도 소설가로서의 성찰은 언어라는 것에 분명히 각인되는 모양이다. 물론 저자의 사랑에 관한 잡담은 무겁지 않다.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그이지만 <풍선>에는 그 직업이 가지는 무거운 고뇌와 열병은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티 없이 맑고 가벼워서 무게감을 느끼지 못하는 명랑한 사랑처럼, <풍선>의 내용은 슬며시 우리곁에 다가와 공감의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올해로 37살인 저자보다 11살이나 어린 필자지만 서태지, 나우누리, 그리고 최근의 무수한 영화들에 고개가 끄덕여져던 것은, 필자역시 그런 문화들을 영유하고 같이 공감했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이야기는 마치 내 가슴속에 있는 어떤 추억을 꺼내는 것 마냥 따뜻하게 다가온다.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했던 것도, 나우누리라는 통신에 환장했던 것도, 그리고 마이마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별밤에 열광했던 것도,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추억들이 비단 나만의 추억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을 <풍선>을 읽으면서 느꼈다.

 

사실 서른이 되기 두려운, 사회인이 되기 두려운 스물 여섯의 필자에게 이 서른 일곱살 '같은 문화권' 누나가 들려주는 '가볍고 즐거운' 잡담들은 왠지 모를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그래 까짓것 별게 있겠어? 해보는 거야!'라고.

 

수많은 영화들, 그리고 수많은 드라마, 그리고 삶의 일정 부분까지 닮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위안이 되는 일이다. 그래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틀린 방향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일종의 안도, 그리고 나 자신이 서른 살이 넘어서도 저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빛나게 살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 정이현의 <풍선>은 그 희망을 하늘 높이 띄우게 만들어 준다.

덧붙이는 글 |  풍선/ 정이현 지음/ 마음산책 


풍선 - 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다

정이현 지음, 마음산책(2007)


태그:#풍선, #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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