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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이 뭔지 모르세요?"

 

'공공노조 버스 순회투쟁단'을 동행취재한 지난 1일 청구성심병원 앞 시위를 마치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내 옆에 앉아있던 한 남자 분은 서울대병원 노조에서 전임으로 일하고 계신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노조전임자'(전임기간 동안 노동조합과 관련된 업무만 하고, 원래의 근로의무는 면제받는 사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무했다.

 

서울대병원 노조에 속해있다고 하니 '병원'이라는 말 때문인지 대뜸 그럼 '의사인가, 간호사인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비정규직이니 의사일 리는 없고, 그럼 내 옆에 앉아계신 남자 분은 간호사로 일하고 계신 건가?

 

"그럼, 어떤… 일을 하고 계신 거죠? 병원에서 비정규직들은 어떤 일을 하나요? '병원'하니까 의사랑 간호사만 떠올라서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단순한 두뇌활동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니 그 분은 의심스러우셨으리라. '얘가 비정규직이 뭔지는 알고 취재를 하러 온 걸까?'

 

"병원에는 의사랑 간호사만 있는 게 아니에요. 병원에서 청소하시는 분도, 빨래하시는 분도, 식사를 나눠주시는 분도, 간병인도 모두 비정규직이에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서울대병원 노조 전임자분이 언급하신 비정규직 노동자들 모두 병원에서 직접 보았거나 매스컴을 통해서 그 존재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병원이 의료 활동을 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 일 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명륜동에 살고 있는 나는 서울대 병원을 지나칠 일이 많다. 하지만 나는 작년 10월, 서울대병원 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했던 사실조차도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냥 흘러 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진기영 사무처장 "시민들, 비정규직 문제 자기 일 아니라 생각해"

 

 

버스 안에서 공공노조 서울지부 사무처장 진기영씨와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비정규직 개인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공공부문에서의 비정규직 문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지하철 서비스 부문에서의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생각해 보세요. 결국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 아닙니까.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있는 노동자가 공공부문 서비스를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투쟁하시는 노동자분들 대부분은 노동운동이 내 일이 아닐 거라 생각하며 살아오셨던 분들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거나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는 등의 일을 겪으면서 노동운동을 자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시민들 역시 그들 대부분이 노동자인 만큼 노동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요."

 

진기영 사무처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 역시 일반 시민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느꼈다. 말로만 '비정규직 문제 심각하다.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 그것이 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때문이다.

 

사무처장님과의 대화가 끝나자 버스는 어느새 홈에버 면목점에 도착해 있다. 홈에버 일반노조원 아주머니가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홈에버 이용하지 말라고 입구를 막고 시위를 하는데도 기어코 거기를 비집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 보면 정말… 몰라서 그렇지 그 사람들 가족 중에도 비정규직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런데도 어떻게 이렇게 도움을 안주는지. 예전에는 박성수((주)이랜드 사장)가 미웠는데 요즘엔 박성수보다 국민들이 더 미워요. (울먹이며) 나도 국민인데… 국민들이 너무 미워요."

 

내 아버지도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빠도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적이 있다. 지금은 제2의 직장을 갖게 되셨지만(정규직), 아빠가 2002년에 명예퇴직하셨을 때부터 몇 년 간은 아빠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언제 어떻게 일을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고용불안'의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물론 나는 아빠가 어느 누구보다도 성실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아빠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 아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질 때마다 아빠의 상황이 원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함께 '버스순회투쟁'을 한 해고노동자들에게 가족들은 어떤 반응인지 물어보았다. 국민체육진흥공단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 백복균씨는 "난리지. 시위 나가면 쌀이 나와. 밥이 나와. 그래도 대학생 아들놈은…. 그놈도 학생 운동하러 다니는데 응원해주더라고. 가족들한테 미안하지 뭐"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인터뷰 내내 '아버님'이라고 불렀던 백복균씨는 55세로 우리 아빠보다 한 살이 적었다. 백복균씨 뿐만 아니라 그날 함께 했던 모든 노동자분들은 나의 아빠 같고 엄마 같은 분들이었다.

 

만약 우리 아빠가 혹은 엄마가 시위에 참여한다면 어떨까. 난 백복균씨의 아들처럼 응원해줄 수 있을까. '끝까지 싸워서 이겨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노동운동의 '노'자도 모르던 이들을 투사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이들을 이 추운 날 시위현장으로 나오게 했을까. 이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 속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비정규직 문제는 남이 아니라 '내' 문제

 

 

진기영 사무처장에게 대학생들이 노동문제에 무관심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확실히 우리 때와 비교해서(진기영씨는 올해 41살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대학생들의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는 대학생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취업난은 점점 심각해지지 않습니까. 이처럼 예비 노동자들이 사회에 나오기도 전부터 경쟁에 내몰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는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그 윗세대가 함께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노동문제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대학생, 나 역시 마찬가지다. '경기가 어렵다보니, 취업준비때문에 바빠서'라는 말은 사실 핑계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문제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일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비정규직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의 가족이 비정규직이었던 것처럼 나 자신도, 나의 친구들도 비정규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곧 있으면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가 친기업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더욱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무처장님께 "시위현장에 와본 건 처음"이라고 말하자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그래도 동행취재를 통해서 비정규직의 현실에 대해 많이 알게되고 느끼게 되었다고 하자 그는 "다행이네요. 잘 오셨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덧붙이는 글 | 홍현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공공노조, #버스순회투쟁, #노동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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