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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칠선계곡 통제 구간이 연장되면서 마을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고 있다. 사진은 칠선계곡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추성리 마을. 눈쌓인 곳이 칠선계곡 들머리다.
▲ 칠선계곡 입구 지리산에서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칠선계곡 통제 구간이 연장되면서 마을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고 있다. 사진은 칠선계곡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추성리 마을. 눈쌓인 곳이 칠선계곡 들머리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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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계곡 통제기간 연장에 따른 주민들의 반발, 댐 건설 과 골프장 문제, 케이블카 설치에 따른 찬반 논란 등등 지리산 주변을 둘러싼 개발과 보전의 대립이 해가 갈수록 더 거세지고 있다.

이에 따른 주민들과 지자체, 환경단체 간의 대립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주민들이 환경단체 행사의 물리적 저지 의사를 밝히는가 하면, 지자체와 연계한 주민 조직을 만들어 대응하는 등 사안에 따라 국립공원관리공단 및 환경단체와도 대립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지리산권의 주민들과 지자체, 관리공단, 환경단체들의 갈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주민들의 생각과 환경단체들의 방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선거를 앞두고 지역 정치인들이 지역 개발을 명분으로 주민들의 여론을 자극하고 있는 것도 한 이유다.

지자체와 연계해 주민 조직 만들어 대응

이전에는 골프장 문제로 극심한 진통을 겪었던 구례 사포마을의 예처럼, 개발이 시도되면서 삶터에서 쫓겨날 위기에 있는 주민들이 환경단체와 함께 지자체나 개발주체들과 대립적 관계를 형성했다면, 최근에는 환경보전이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그 반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칠선계곡 통제 연장발표로 인해 해당지역 주민들이 집단 반발해 농성이 진행 중인 사안이나, 성삼재 도로 폐쇄 문제가 공론화 되자 주민들이 환경단체의 관련 행사를 물리적 저지로 압박하며 무산시킨 것이나, 산청군의 주도아래 주민들이 대규모로 나서 케이블카 설치 요구 시위를 벌인 것 등이 이 사례에 속한다.

칠선계곡 문제에는 지역 국회의원과 도의원이 주민들의 농성현장을 찾아 관심을 표명했고, 성삼재 도로 폐쇄 공론화 문제는 시의원이 주민 대책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생태 환경 보전 문제가 본질적인 부분보다는 주민 생존권 요구로 대표되는 이해관계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칠선계곡 개방을 요구하며 마을주민들이 입구에 걸려놓은 펼침막
 칠선계곡 개방을 요구하며 마을주민들이 입구에 걸려놓은 펼침막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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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칠선계곡의 개방을 요구하며 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 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주민들
▲ 칠선계곡 개방요구 시위 지난해 12월 칠선계곡의 개방을 요구하며 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 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주민들
ⓒ 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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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찾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칠선계곡 입구의 추성리 마을은 ‘칠선계곡 통제를 풀어라’는 펼침막 주위로 주민들이 모여 앉아 농성을 벌이는 중이었다. 한 마을 주민은 “칠선계곡을 계속 막아놓는 것은 마을 주민들의 어려움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처사”라며 칠선계곡 통제기간 연장에 격한 불만을 토해냈다.

지난해 12월 지리산 칠선계곡에 대해 관리공단이 통제기간을 연장을 발표하며 시작된 이들의 시위는 생계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쉽사리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지자체와의 협력 속에 ‘지리산을 사랑하는 국민연대’라는 조직을 만들어 대통령직인수위에 칠선계곡 개방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청원서에서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이하 국시모)이나 지리산 생명연대(=이하 생명연대) 등의 좌파 환경단체들이 ‘환경부’와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지원을 받으며 환경사업을 벌인다는 미명아래 자신들의 조직과 이익을 극대화 했다”면서 이들은 반달곰 살리기라는 자신들의 사업을 위해 칠선계곡 개방을 가로막고 있으며, 거대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리산을 사랑하는 국민과 지역주민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리산 반달곰 살리기는 국시모의 위상강화를 위해 국시모 부대표가 주관하는 사업으로,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해 연하천 대피소를 사유화해 이익사업으로 삼고 있고, 거점 확보를 위해 뱀사골 대피소를 폐쇄하게 만드는 등 지리산 쪽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시모, 가치관 차이는 인정하나 왜곡된 비난은 대응할 것

이에 대해 국시모 윤주옥 사무처장은 “가치관 차이에 대한 비판은 인정하지만 주민들이 주장하는 내용에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며 “제대로 알지 못하는 환경단체 구성원들에 대한 인신공격적 비난은 용납하지 힘든 부분이고 서로의 윤리를 무너뜨리는 모습”이라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또 “주민들과 접촉해가는 과정에서 해명할 부분이 있겠지만 마을의 몇몇 인사가 주도해 만들어 놓은 문건 중 왜곡된 부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으며, 이것이 정리되는 대로 국시모의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칠선계곡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국시모에 대한 분노가 있을 수 있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을 일방적으로 사실처럼 표현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칠선계곡 개방을 요구하며 마을 주민들이 대통령직인수위에 보낸 보고서. 칠선계곡 개방에 반대입장인 환경단체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다
 칠선계곡 개방을 요구하며 마을 주민들이 대통령직인수위에 보낸 보고서. 칠선계곡 개방에 반대입장인 환경단체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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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연하천산장지기 김병관씨는 온라인에 올린 글을 통해 “최근 뱀사골 대피소 폐쇄가 연하천과 관련이 없다는 재판 결과가 나왔듯이 제가 환경단체와 결탁해 이익창출을 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반달곰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지리산 생태 보존회 우두성 대표도 “국립공원 관리공단으로부터 어떤 사업이나 이권을 받은 일이 없으며, 곰 복원 사업이 마치 내가 돈을 버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억울하다”면서 “내 사비가 많이 들어갔지만 구례군에서 환경단체에 지원하는 지원금 받기도 거부했고, 국시모나 생명연대는 곰 복원 사업에 깊게 참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지리산 생명연대의 한 관계자도 “이권사업이라고 말한 숲길 사업은 지역사회에 이득이 생기는 일이지 정부예산을 지원받는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안에 대해 주민들과의 입장차이가 발생하면서 지리산권 환경운동단체들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주민들의 입장과 단체 본연의 활동 사이에서 딜레마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환경운동의 관점만을 고집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지역에서 얼굴을 맞대고 사는 주민들을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다.

이와 관련해 환경운동가 김석봉씨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지리산권 환경단체들은 지리산 주변의 정서를 따라야 한다”면서 “지리산권 단체들이 지리산 환경운동연합의 성격이 될 수 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주민 입장을 외면한 채 환경운동 측면만을 강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칠선계곡 주민 농성장을 찾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다는 그는 “지금은 입장 차이가 있지만 사안에 따라 환경단체가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면서 “주민들을 계속 품어나가면서 주민들과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또 “정책결정은 환경단체의 몫이 아니”라며 “이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주민들의 오해도 불식시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시모 또한 “지역운동 측면에서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면서도 그러나 “환경운동 단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가치를 버리면 단체가 존재해야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해 단체 기본 성격은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오래 지역운동을 하던 분들과는 차이가 있어 “명확하게 어떤 정답을 내리기는 힘든 부분”이라는 것이다.

지리산 주변 정서, 환경단체도 존중해야

지난해 10월 개최된 성삼재 도로 폐쇄를 염원하는 걷기 행사. 주민들의 반발로 인해 구례 천은사쪽에서만 진행됐다.
▲ 걸어서 성삼재까지 지난해 10월 개최된 성삼재 도로 폐쇄를 염원하는 걷기 행사. 주민들의 반발로 인해 구례 천은사쪽에서만 진행됐다.
ⓒ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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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이해나 동의에 대한 고민은 성삼재 도로 문제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지리산권 주민들의 반발은 지난해 환경단체와 관리공단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성삼재 도로 폐쇄 문제를 결국 원점으로 돌려놨다.

환경단체들은 지난 5년간 지리산을 관통하며 생태 환경에 피해를 주고 있는  성삼재 도로 개선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공론화 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민박집과 상가들이 몰려있는 남원시 산내면 주민들이 생존권 문제를 거론하며 거세게 반발하자 결국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이를 철회한 것.

문제제기를 주도한 한 축이었던 지리산 생명연대 또한 주민들의 동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상태라 성삼재 도로 문제는 당분간 해결이 어렵게 됐다.

이와 관련해 지리산 생명연대 사무처장을 역임한 윤정준 사단법인 숲길 이사는 “도로문제를 공론화 시킬 당시 자연 상태로 복원시킨다는 것에 막연히 찬성하던 주민들이 관리공단이 적극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존권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적극 반대했던 것"이라며, 주민들과 계속적인 접촉을 통해 설득해 과정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환경단체도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주민들과의 관계를 유지했어야 했는데, 관리공단이 일을 주도하게 되면서 이 부분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시모는 “관리공단의 일방적 용역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하고, “남원과는 다르게 구례 쪽은 사고도 많이 나고 도로 폐쇄를 이해하는 주민들도 있어 문제점을 제기하는 관련 행사는 계속 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슬기롭게 대처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지만 환경단체로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시모가 12월 13일 공청회를 마련해 계속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 같은 맥락인데, 이에 앞서 관리공단은 12월 10일 주민들과 화합의 장을 마련해 철회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10일 관리공단은 성삼재도로문제의 공론화를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후, 갈등관계에 있던 주민들과 화합을 위한 행사를 가졌다.
▲ 성삼재도로문제 공론화 철회 지난해 12월 10일 관리공단은 성삼재도로문제의 공론화를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후, 갈등관계에 있던 주민들과 화합을 위한 행사를 가졌다.
ⓒ 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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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의식한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행동도 문제 커

한편으로 주민들과 환경단체들 간의 갈등에는 지역발전을 명분으로 주민들을 자극하는 정치인들의 태도도 자리하고 있다. 칠선계곡 문제는 칠선계곡 주변을 생태관광지로 만들겠다는 함양군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으며, 천왕봉까지의 케이블카를 요구하는 산청군 역시 관광수입 증대를 지역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의 요구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이들이 주민들을 자극하면서 지자체와 환경단체 간 대립이 아닌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제대로 일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지역의 분위기이기에, 현행법과 관련 규정상 될 수 없는 일임에도 지역 정치인들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진주환경운동연합의 한 관계자는 “산청군이 케이블카 설치를 요구하며 벌인 주민집회도 연구용역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벌인 전시적 성격이 짙다”며 “불가능한 일임에도 일단 벌여 놓고 주민들을 들쑤셔 놓은 다음 안 되면 말고 식으로 빠져나가는 정치인들의 행동은 환경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발과 보전의 대립 속에 정치 논리마저 개입돼 환경단체와 주민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현실, 지리산 생명연대 하승수 감사가 지난달 26일 총회에서 발표한 2008년 사업제안에는 이러한 고민의 일단이 담겨 있었다.

지리산댐 계획, 성삼재길 폐쇄, 칠선계곡 개방 등등 여러 가지 현안과 관련해 지역주민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인데,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지리산 생명연대 모든 구성원들이 지혜를 모아나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델을 한 가지라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지리산권 환경단체인 지리산 생명연대의 총회가 지난 1월 26일 열렸다.
▲ 지리산 생명연대 총회 지리산권 환경단체인 지리산 생명연대의 총회가 지난 1월 26일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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