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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닥터 포드가 얼었나? 이깟 날씨에 문을 닫다니.”

 

아직 날이 채 새기도 전인 어둑한 2월의 첫 금요일 아침. 잠이 덜 깬 큰딸이 급하게 내려와 컴퓨터 전원을 누른다.

 

전날 일기예보에 의하면 이날은 얼어붙는 비(freezing rain)가 내려 학교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딸아이가 기대하던 '학교 문 닫음(School Closed)'이라는 정보는 올라와 있지 않다. 대단히 실망스러워하는 큰딸.

 

"아니, 그럼 학교를 가야 되는 거야?"

 

포기하기에는 아직 일러? 희망과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딸아이는 다시 시 교육위원회 홈페이지를 들어가 본다.

 

"앗싸. 오늘 학교 문 닫는다. 좋아 좋아."

 

 

교육위원회 홈페이지에는 해리슨버그의 모든 공립학교는 궂은 날씨 때문에 문을 닫는다는 공지사항이 올라와 있다. 학교에 안 가게 된 큰딸, 싱글벙글하면서 농담을 건네기까지 한다. 닥터 포드가 지난 번 사건 때문에 단단히 얼은 모양이라고.

 

큰딸이 ‘얼었다’고 표현한 닥터 포드는 누구?

 

바로 이곳 해리슨버그 시 교육위원회 최고 책임자이다. 교육위원회 수장으로서 그는 날씨가 궂은 날이면 그냥 정상 수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문을 닫을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그가 내리는 결정에 따라 학생들은 일희일비(?)하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는 그가 지난 1월에 큰 곤욕을 치렀다. 날씨가 궂은데도 불구하고 학교 문을 일찍 닫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이 많았던 그날 아침, 큰 눈은 내리지 않았다. 스쿨버스를 타러 가는 아이들의 머리 위로 새하얀 눈꽃이 내리고 있었지만 깃털 같이 가벼운 눈이었다. 사실 그런 정도의 눈으로는 학교 문이 닫힐 리 만무했다.

  

그런데 오후가 되면서 눈은 주먹만한 크기로 바뀌었다. 정말 눈 깜짝할 새였다. 언제 그랬냐 싶게 무서운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학생들의 하교 시간이 앞당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여느 때와 같은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그래서 아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해리슨버그 일간지인 ‘데일리뉴스 레코드’에는 많은 학부모들의 불만과 비난의 글이 실려 있었다. 이들은 교육위원회가 전날 하교 조처를 일찍 취하지 않는 바람에 많은 피해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얘기인즉, 스쿨버스 운행이 많이 지연되었고 아예 안 된 경우도 있어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로 아이들을 데리러 와야 하는 경우에도 심한 폭설로 자동차가 눈밭에 처박히거나 도랑으로 빠지는 일이 발생하여 대단히 위험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많은 피해를 가져오게 된 것은 폭설이 예정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안전을 무시한 채 수업을 강행한 학교 측과 교육위원회 측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었다.

 

학부모들은 이들의 늑장 대응과 판단 착오 때문에 사고가 커진 것이라며 특히 교육위원회 수장인 닥터 포드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었다. 결국 그런 영향이 있었던 것일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해리슨버그 교육위원회는 금년 들어 벌써 두 번째 휴교령을 내렸다. 얼마 전에는 2시간 늦은 등교를 명했고.

 

 
미국에 와서 흥미롭게 느낀 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안전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철저한 의식이다. 위의 경우처럼 날씨가 궂을 경우 곧 바로 학교 문을 닫거나 조금은 호들갑스럽다 할 정도로 난리(?)를 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니,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고소가 잦은 나라인 만큼 어떤 식의 책임이라도 지지 않기 위해 아예 일찌감치 문을 닫는 것이라고. 어찌 되었건 이런 식의 느닷없는 휴식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엄마, 에어컨을 켜서라도 온 동네를 꽁꽁 얼게 만들고 싶어.”

 

얼마 전 눈이 내리고 있을 때 그 눈이 꽁꽁 얼어붙어서 학교에 안 가면 좋겠다고 한 철없는(?) 큰딸의 발언이다.

 

그나저나 한국에 있을 때 눈 많이 왔다고 학교 문이 닫힌 걸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날씨 때문에 주어진 이런 느닷없는 휴식이 얼마나 달콤할지 짐작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옛날 엄마 어렸을 때는 눈도 정말 많이 왔었는데…. 하지만 너희처럼 학교 문이 닫힌 걸 본 적이 없다. 우린 그야말로 '줄기차게' 학교를 다녔는데 너희는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학교 안 가는 게 정말 좋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옛날 엄마 어렸을 때는…"이라는 식의 고리타분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걸 보니 이제 나도 많이 늙은 모양이다.


태그:#스노우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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