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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버.릴.꺼.야."

 

섬뜩한 문장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불안정한 호흡 속에 입술은 파르르 떨렸고, 마른 땅을 박차는 대지 위의 말발굽 소리처럼 심장은 거세게 쿵쾅거렸다. 온통 분노로 차오른 급격한 감정선의 흔들림은 마치 끝없는 심연에 빠진 영화 속 슬로우모션 장면처럼 머릿속을 진공상태로 만들어버렸고, 사람들 앞에 잘 포장되었던 내 본능적 악의는 거센 시험 앞에 그 자태가 가감없이 표출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달콤한 일요일 오후의 햇살 아래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이쿠, 야구하는구나!'

 

학교 운동장에는 스무 명이 넘는 청년들이 두 팀으로 갈라져 야구경기를 하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가. 야구라면 인간의 모든 기본 욕구를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환장하는 내게 눈 앞에서 벌어지는 야구경기는 정신놓고 보는 그야말로 최고의 구경거리. 그간 필요한 상황에서 놓친 영상이 많았기에 카메라와 캠코더를 두 손에 쥔 채로 에르모시요를 구경하던 난 그 자리에 아예 죽치고 앉아 그들만의 리그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야구 구경을 하다

 

팀원들은 대체로 20대로 사회인 친선 야구단쯤 되어 보였다.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선을 넘어 어느 정도 장비를 갖추고 임하는 경기였다. 경기는 나름대로 긴장감이 있었다. 아무렴 스무 명이 넘는 사내들 사이에서 약해 보이고 싶지는 않을 터. 선수마다 투구모션과 타격 메커니즘의 차이는 있었지만 경기에 대한 열정과 승리를 향한 집념만은 똑같았다.

 

투수가 공을 던지고 타석에서 힘차게 휘두른 배트가 '딱!'하는 파열음과 함께 공을 저 멀리 보내면 응원하는 같은 팀 선수는 환호성을 지른다. 그리고 타자는 히어로가 된다. 하지만 맥없이 삼진으로 물러나거나 어이없는 실책 플레이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고개숙인 남자로 만들어버린다.

 

 

승부의 세계에서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녀석의 공을 받아쳐서 안타를 만들어야 비로소 선수로서의 나의 가치가 인정받는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경기를 관람하다 별안간 나도 필드에서 먼지 풀풀 내며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를 관전만 하자니 몸이 살살 달아오르고 근질근질해 오는 것이 주체하지 못한 동네야구 근성이 똬리를 튼 것이다.

 

"이봐요들, 나도 좀 껴 줘. 같이 할 수 있을까?"

아까부터 호기심 있게 바라보던 선수들은 나를 더욱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 중 '난닝구'의 여백 사이로 단단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사내가 내게 물어왔다.

 

"야구 잘 해?"

대답대신 한 번 시원찮은 웃음으로 자신 있다는 무언의 언질을 건넸다. 대답대신 실력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래봬도 초등학교 시절 동네에서 유일하게 공사장 각목으로 짬뽕공을 넘겨 옆 동네 유리창을 깬 전력이 있는 홈런타자 출신이다. 명색이 WBC(World Baseball Classic) 4강국에서 왔는데 멕시칸 리그보다 한 수 위라는 것쯤은 보여줘야 체면이 설 것 아닌가.

 

"오케이, 그럼 지명타자로 출전해."

아마도 나의 건들건들하면서도 자신만만한 표정이 맘에 들었는지 리더인 듯이 보이는 사내가 흔쾌히 경기참여를 환영했다. 경기가 종반전이었기에 나는 팀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대타로 출전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대기 타석에서 지켜본 바로는 상대팀 투수의 투구 속도도 빠르지 않고 각도 무뎠다. 해볼만 했다. 최저 기준선을 2루타로 잡았다.

 

구경하다가 대타로 들어가 실력을 뽐내려고 했는데...

 

드디어 타석에 들어섰다. 다들 이 흥미로운 광경에 집중하고 있었다.
 

'잘 보거라. 너희들은 이제 곧 한국 야구의 매서운 맛을 보게 될 것이다. 홈런쳐도 나 스카웃 할 생각 말아라. 유감스럽게도 이 몸 바쁘시다. 자 제군들, 탄성과 환호를 날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국가대표의 마음으로 방망이 그랩을 꽉 움켜쥐고선 108실밥을 꿰맨 공을 기다렸다. 드디어 플레이. 첫 구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한참 비껴난 변화구였다. 여유롭게 타석을 발로 한 번 쓸고는 2구째를 기다렸다. 그리고 힘차게 스윙. 방망이는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하지만 펜스를 넘어갔어야 할 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뒤를 돌아봤다. 공은 포수 미트 속에 숨어 있었다. 짐짓 헛기침을 했다. 그리곤 마치 실수였다는 듯 호쾌하게 웃어넘겼다. 너무 화려한 걸 보여주려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3구도 스윙. 고개를 갸웃거렸고 슬슬 덕아웃 쪽에서는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더 민망한 건 상대팀 투수는 첫 구를 제외하고는 계속 느린 변화구로 한 가운데 정면승부를 펼치고 있다는 것. 마치 쳐 볼테면 쳐 보라는 식이었다. 그리고는 다음 공 두 개를 연거푸 유인구로 던졌지만 잘 참아내 투 스트라이크 쓰리볼 풀카운트에 이르렀다.

 

 

파울볼 두 개를 친 다음 7구 째. 드디어 투수의 공을 때려냈다. 하지만 공은 힘없이 내야로 굴러갔고 결국 난 땅볼 아웃이 되고 말았다. 변화구에 타이밍을 잡지 못해 빗맞은 것이다. 그 한 타석 이후 나는 즉시 방출 수모를 당했지만 보여준 것이 없었기에 항변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동양 용병타자에 대한 기대치가 있는 걸까. 마음씨 착한 상대팀 주장의 배려로 다시 반대편 팀에 전격 입단(?)해 그 다음 이닝에 타격기회를 부여받았다. 결과는 역시나 땅볼 아웃. 결국 2타수 무안타의 초라한 성적표로 경기를 끝마쳤다.

 

하지만 그들과 즐겁게 플레이를 했기에 경기가 끝나고는 서로 사진도 찍고 이메일 주소도 교환하며 기분좋게 하루 일정을 매조지하는 듯 보였다. 잠시 얘기를 나눈 후 스무 명 가량의 선수들은 일제히 뿔뿔이 흩어졌고, 난 텅 빈 운동장에 홀로 상념에 젖은 채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 때 나무그늘 아래 몇 명의 십대소년들이 보였다. 왠지 친숙한 느낌이다. 아까부터 계속 같은 자리에서 야구를 구경하던 녀석들이었는데 이제야 좀 더 선명하게 존재가 각인된 것이다. 항상 나보다는 상대를 중심으로 오픈 마인드로 다니자는 취지였기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먼저 다가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십대 소년들을 만나다

 

"뭐하고 있어?"

아이들은 내가 다가가자 수줍은 듯 자기네들끼리 웃다가 서툰 영어로 대답했다.

"야구경기 보다가 지금은 그냥 있어."

 

녀석들은 15세 정도 되어 보였으며 늘상 어울리는 동네 친구들인 듯했다. 조금은 덜 성숙한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었지만 웃는 모습이 시원하니 좋아보였다. 그리고 6명이었다.

"사진 한 번 찍어줄까?"

 

심심해 하는 아이들에게 뭔가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가난한 아이들이라 디지털 카메라나 캠코더에 대한 접근이 어려울 테니 이럴 때 한 번 경험시켜 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녀석들은 쑥스러워 하면서도 갖가지 포즈를 잡으며 사진 찍히는 걸 즐겼다.

 

그리고 사진 이미지를 보면서 신기해하며 마냥 좋아라했다. 한참을 그렇게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재미있게 놀았을까. 자기네들끼리 머리를 맞대 쑥덕공론을 하던 후에 갑자기 한 녀석이 제안을 해 왔다.

 

"네가 포즈를 취하고 있으면 우리가 직접 사진 찍어줄게."

사진기를 만져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남에게 자기 물건 안 빌려주는 쫌생이 같은 짓을 정말 치사하다고 생각하던 나였기에 단번에 '씨(Si)'로 화답했다. 이곳 아이들이 나로 인해 한 번이라도 이런 즐거운 경험을 갖게 된다는 점도 고무적이라 생각했다.

 

일단 작동이 간단한 디지털 카메라 조작법에 대해 알기 쉽게 하나하나 시연을 해 가며 가르쳐 주었다. 그 다음에 역시 캠코더를 같은 방법으로 설명하니 내 주위를 둘러싸 멀뚱히 구경하던 아이들은 일제히 '아!'하며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된 듯 해 일단 DSLR 카메라를 건넸다. 그리고 캠코더는 한 쪽에 놓아두었다. 카메라를 건네받은 한 녀석이 나를 향해 렌즈를 들이댔고 난 어설픈 포즈를 취했다. 다른 녀석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카메라를 바라보며 연신 웃어댄다.

 

아이는 사진을 찍으려다 위치 조절이 잘 되지 않는지 한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런 다음 렌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 정도면 내가 작게 나올텐데' 생각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몇 발자국 더욱 물러났다.

 

'녀석들 그렇게 가르쳐줬는데도 수정체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나?'

그 때였다. 갑자기 뒷걸음치던 아이들이 몸을 돌려 그대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해맑게 웃는 표정이다. 무슨 비장한 표정 따위가 아니었다. "뭐하는 거야? 얼른 와!"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몰랐다. 그저 내게 관심받기 위한 액션인가 정도로 생각한 거였다. 나는 몇 번이나 제자리에서 손을 흔들며 돌아오라고 소리쳤지만 녀석들의 발걸음이 아닌 메아리만 나에게 되돌아 올 뿐이었다.

 

아이들, 카메라를 들고 달아나다

 

갈수록 거리가 벌어지자 이제서야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옆에 있던 조그만 체구의 아이가 어느 틈엔가 캠코더를 낚아채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고 있는 것이었다. 도무지 상황파악이 안 되었다. 급작스런 반응에 당황한 나머지 발등에 말뚝을 박은 것처럼 몇 초간 땅에 발이 묶여 있었다. 그리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내 생애 가장 다급한 달음박질이었다.

 

하지만 미처 준비되지 않은 근육세포들을 조이는 데에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까지 거친 황야를 지나면서 체력적으로 상당히 지쳐 있었고, 어느덧 나도 질풍노도의 순발력을 따라잡기에는 벅찬 게으른 20대 후반이었다. 숨이 차오르고 어지러움을 견디다 못해 그만 하늘을 향해 서러운 눈초리를 쏘아댔다. 남들에게나 일어나야 했을 거라는 이기적인 망상들이 머리를 정신없이 두드렸다. 그리고 다시 그 시선이 힘없이 땅바닥에 쏟아지는 순간 난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 눈을 꼭 감아버렸다.

 

거친 호흡, 아득히 멀어져 사라진 아이들, 그리고 빈 손. 강도를 당한 것이다. 그것도 십대 아이들에게. 그들이 칼을 들고 위협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 쓰디쓴 신물이 올라올 만큼 허탈하고 어이가 없었다. 잃어버린 DSLR 사진기와 캠코더도 그렇지만 그 안에 소중한 자료들이 다 날아갔다.

 

초프롤레타리아 극빈 생활로 일구어가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250여만원 어치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지난 날의 추억과 글을 쓰기 위한 자료들은 정말 귀하디 귀한 것이었다. 더욱 마음이 아픈 건 그들 스스로 자신의 나라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학습효과 때문에 이제 앞으로 또 어떻게 그들에게 마음을 함부로 열 수가 있겠는가.

 

사건 직후 바로 에르모시요에 거주하며 유리 공장을 운영하는 이재붕 사장님께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고, 또 지인들에게 긴급메일을 보내 소식을 알리고 원만한 사건 해결을 위해 기도를 요청했다.

 

사장님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듯이 긴급히 차를 몰고 동네 순찰을 나섰다. 하지만 밀리언 시티인 에르모시요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지…. 윗동네, 아랫동네, 옆동네 샅샅이 훑어봤지만 끝내 그들의 족적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빈민가를 쑤시고 다니는 통에 마약구매의심자로 신고가 들어와 경찰에게 심문당하는 웃지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미 몸을 깊숙이 숨겼을 것이다.

 

"멕시코가 얼마나 위험한 동네인데. 여기 나랑 만나는 한인 한 명도 자동차를 두 번이나 잃어버렸어, 잠깐 차 세워둔 사이에. 결국 외딴 산길에서 발견은 했는데 타이어고 백미러고 뭐고 다 뜯어간 거야. 그 뿐인가? 난 공장을 털렸다네. 도둑들이 글쎄 아예 지붕을 뚫고 들어왔더라구. 걔네들은 심지어 콘크리트도 깨서 물건을 훔쳐가. 근데 더 지독한 건 뭔지 알아? 다음날 또 털어갔다는 거야. 며칠 뒤에 뚫린 지붕 수리하려고 대충 임시로 때우고 설마 또 오겠어 했는데 허를 찌른 거지.

 

잘 들어둬. 아마도 학교 다니지 않은 애들을 만난 것 같아. 돈 없어서 학교 못가는 애들도 많으니까. 여기 아이들은 말야, 길에서 인생을 배우거든. 그래서 거칠어. 학교에 다니는 애들보다 머리도 빨리 회전하고…. 거리에 있는 애들은 생존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더 빨리 파악하지. 참 영악하고 얍삽해. 게다가 가난하니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게 보이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어리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애들이 아니야. 그래도 몸 안 다친 걸 다행으로 생각해. 칼이라도 들었으면…."

 

"몸 안 다친 걸 다행으로 생각해"

 

사장님은 아무 경황 없는 내게 이런저런 말씀으로 위로해 주셨다. 멕시코에서 도둑을 당했다는 한인들 얘기는 원체 많이 들었지만 당사자 얘기를 들으니 또 그러려니 했다. 본인도 나보다 더한 어려운 과정을 거쳐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를 따뜻이 위로해 주신 것이다. 경찰에게는 카메라를 되찾는데 그들의 한 달 월급이 넘는 보상금을 메리트로 걸었지만 그들 역시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으니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했다.

 

더군다나 그들을 목격한 아이는 보복이 두려웠는지 두루뭉술한 대답만 해댈 뿐이었다. 결국 그 날은 밤 늦게까지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사장님 댁으로 돌아온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로부터 하루 뒤. 벌써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걸까? 한없이 마음이 차분해져 왔다. 메일에는 내 소식을 듣고 걱정하는 많은 분들이 답신을 해 왔다.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담긴 소중한 메일을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감사와 동시에 내가 좌절해서는 안 되겠단 의지가 솟구쳐 올랐다.

 

'사람을 믿지 말고 사랑하라. 가슴의 뜨거운 열기가 항상 있되 머리에는 그 열기가 올라가지 않게 하라. 포기란 없다. 이딴 걸로 포기하는 건 도무지 자존심이 허락칠 않는다. 다시 시작이다!'

 

메일함을 닫으며 지금의 난관이 전체 여정을 위한 백신이라 생각하고 처음 나 자신과 약속한대로 고집이 아닌 신념으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날마다 카메라와 캠코더를 찾으러 사방팔방 도시를 헤매기를 반복. 일주일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폐인 생활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되던 날, 나는 모든 걸 겸허하게 받아들인 채 그들을 내 마음 속에서 자유롭게 풀어주기로 했다. 어른이 된 후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때가 온다면 지금의 잘못을 반성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되길 바라면서….

 

 

"종성, 마음이 어때?"

현지인인 사장님 와이프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어왔다.

"묵상 중이에요. 이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났는지. 내가 깨달을만한 것이 무엇인지…."

멋쩍게 웃었다. 분노해 봐야 감정만 상할테니.

"좀 더 좋은 날이 올꺼야. 그 물건이 꼭 필요했던 사람에게 갔다고 생각해."

 

교양 넘치는 말투 때문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훨씬 더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순하디 순한 눈망울로 상대방의 마음을 풀어 헤친 다음 매몰차게 역공을 가한 녀석들. 처음에는 머릿속에서 장풍을 쏘아대고 이단 돌려차기와 극강파워 펀치를 날리는 스트리트 파이터가 되어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간헐적으로 의도치 않게 그들을 조금씩 감싸 안는 생각이 가슴에 차오르고 있었다.

 

용서. 마크 트웨인은 말한다. 용서란, 제비꽃이 자기를 밟아 뭉갠 발꿈치에 남기는 향기라고. 솔직히 완전히 분노가 씻겨지지 않은 채였지만 앙심을 품고 복수를 복수로 갚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명확한 결론에 도달했다.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결고운 향기를 남기는 것. 그것을 위해 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고결한 파동을 그들에게 보냈다.

 

한 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성인군자처럼 모든 것을 끌어안은 채 용서하고 도리어 축복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녀석들에 대한 감정이 분노에서 얄미움 정도로 희석되었다고나 할까. 머리로는 그런 모습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가슴에서는 살짝 낙담에 가까운 체념을 한 채 머뭇거리는 반쪽 관용. 아직 내 수준은 딱 여기까지다.

 

"좀 쉬어, 음악이나 들으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피곤할텐데."

거실 탁자에 하릴 없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내게 사장님은 한국에서 가져온 오래된 가요 를 틀며 말했다. 몸의 근육이 뻐근해져 오면서 기지개를 켜자 고체처럼 굳어 있던 긍정의 감정들이 다시 기체처럼 가슴 곳곳으로 퍼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무심히 듣던 그 음악 때문에 그만 눈물이 다 나 버렸다.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에 흐르는 노래가 꼭 내 어깨를 토닥거리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마라~."

노사연의 만남에 한 방에 박장대소하며 웃은 나는 그 때서야 감정의 스위치를 바꿔 눌렀다. 밝은 빛에 찬이슬이 사라지듯 가슴에 쌓인 응어리가 생각지도 못한 노래 한 소절에 나도 모르게 풀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노래를 따라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아이들을 향한 내 진심인지도 모를 마음으로 말이다. 인생을 통달한 사람처럼 내 입가에는 실로 오랫만에 미소가 오래도록 머금은 채 있었다.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덧붙이는 글 | 강도 사건으로 그간 올린 사진이 내용과 맞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음 호부턴 내용과 사진이 같이 나갑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태그:#세계일주, #비전노마드, #멕시코, #자전거,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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