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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들이 사람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나 산꼭대기의 태극기와 돌탑은 이제 어느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풍경이 되어버렸구먼.”

 

축령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일행 한 사람이 하는 말이었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풍경은 결코 보기 쉬운 풍경이 아니었었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오르는 산마다 거의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눈 덮인 겨울 산에 오를 때마다 산새들이 가까이 다가왔고, 거의 대부분의 산꼭대기에서 돌탑과 태극기를 보았으니까.

 

지난 화요일(29일)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축령산에 올랐다. 며칠 전에 내린 많은 눈이 얼어붙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스럽긴 했지만 일단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청량리역 앞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마석에서 내려 다시 축령산행 시내버스를 갈아탔다. 마석에서 축령산행 버스는 1시간 30분 간격이었지만 5분 만에 탔으니 행운이었던 셈이다.

 

외방리 버스 종점에서 내려 산골짜기에 들어서니 멋진 얼음탑이 우리들을 반겨준다. 둥글둥글 꽃송이처럼 얼려놓은 얼음탑 뒤로 뾰족뾰족한 고드름들이 병풍처럼 에워싼 모습이 여간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구불구불 임도를 올라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자! 모두 아이젠 착용하지, 벌써부터 미끄러운 걸.”

항상 안전산행에 신경을 많이 쓰는 일행이 아이젠 착용을 독려한다. 예상했던 것처럼 등산로는 눈이 얼어붙어 있어서 미끄럽고 위험했다. 그래도 오르막길은 괜찮은 편이다. 내리막길이 더 위험하다.

 

20여분 올라가자 ‘숯가마터‘가 나타났다. 옛 사람들이 나무를 배어 숯을 만들어 팔아먹고 살았던 흔적이었다. 양지바른 곳이어서 잠간 쉬기로 했다.

 

“그런데 산 이름이 왜 축령산이야?”

“전설에 의하면 고려 말에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이 산으로 사냥을 나왔는데 짐승을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거야. 그런데 마을에서 몰이꾼으로 동원된 백성들이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고사를 지내야 사냥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했다는군. 그래서 처음에는 빌어산이라고 불렸는데 언젠가부터 한문자인 축령산으로 바뀌었다더군.”

 

전설이 그럴 듯하다. 하긴 이름 없는 산도 전설이 많은데 이만한 산에 전설이 없겠는가.

 

골짜기를 따라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골짜기 곳곳에는 흘러내리던 물이 얼어붙어 빙판을 이룬 곳들이 있어 조심조심 산을 올랐다. 그러나 능선 길로 접어들자 길은 예상보다 좋았다. 햇빛과 바람에 눈이 녹아 보송보송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곳곳에 녹지 않고 얼어붙어 있는 눈이 복병처럼 지키고 있어서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은 시야가 시원하게 열려 있었다. 오른편으로는 마주 보이는 주금산과 조금 멀리 천마산의 뾰족한 봉오리가 바라보인다.

 

“저 멀리 바라보이는 높은 산은 무슨 산이야?”

서울의 북한산이었다. 백운대와 인수봉이 하늘가에 산맥처럼 둘러쳐진 구름 아래 희미한 자태로 솟아 있고 능선으로 이어진 도봉산도 아스라한 모습이었다. 왼편으로는 운악산이 멀지 않고 명지산과 화악산이 가물가물한 모습이다.

 

“이쯤에서 간식을 먹는 것이 어때?“

능선에 불쑥 솟아 있는 바위는 남이장군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남이바위였다. 시간은 어느새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김밥과 떡, 그리고 과일을 꺼내 간식을 나눠 먹기 시작했다.

 

“어! 저 녀석들 좀 봐? 예쁘게 생긴 녀석들이 친구 하자고 다가왔네.”

우리 강산의 텃새 동고비 한 쌍이었다. 우리들이 간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뭘 좀 얻어먹겠다고 사람들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마침 배낭에 땅콩이 들어 있는 것이 생각났다. 산에서 으레 만나는 산새들에게 주려고 항상 준비해 놓는 것이다.

 

땅콩을 작게 깨뜨려 눈앞에 있는 바위 위에 뿌려 주었다. 그러자 녀석들은 금방 눈치를 채고 바위 위로 날아들었다. 다른 새와는 달리 마치 쥐나 고양이가 기는 것과 비슷한 동작으로 걷는 동고비 특유의 동작으로 다가와 먹이를 먹는다.

 
 

녀석들은 한꺼번에 오지 않고 암수컷이 번갈아 다가왔다. 그리고 땅콩조각 몇 개를 주워 먹은 후에 입에 잔뜩 물고 근처의 나무로 날아갔다. 그리고 먹이를 어디엔가 숨겨놓고 다시 날아와 물고 가는 동작을 반복했다.

 

“전에는 산새가 사람들 곁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청계산 이수봉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어느 산에서나 볼 수 있네. 자연이 사람들 곁으로 다가오는 이런 현상이 과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쉽게 판단이 되진 않지만 말이야.”

“산이 눈으로 뒤덮여 먹을 것이 없으니까 사람들 곁으로 다가와 먹이를 얻겠다는 것은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뭘.”

 

그래도 옛날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산새들이 요즘 사람들의 자연환경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 것을 감지한 때문일까? 자신들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간식을 먹고 정상으로 향했다. 남이바위에서 정상은 가까웠다. 정상에 오르자 해발 886m 라는 표지석과 함께 근래에 쌓아 올린 듯한 돌탑과 휘날리는 태극기가 생경하다. 전에 왔을 때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요즘은 산 위에 태극기 게양해 놓고 돌탑 쌓아 놓는 것이 유행인가 봐?”

“그러게 말이야. 가는 곳마다 태극기와 돌탑이네.”

“산꼭대기마다 이런 모습 보니까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걸. 자연은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좋은데 말이야.”

정말 그랬다. 산꼭대기마다 특색 없는 비슷한 인공조형물을 만들어 세워 놓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정상에서는 동북쪽으로 우뚝 솟은 용문산도 바라보였다. 축령산은 맞은편의 서리산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골짜기가 매우 아늑한 풍경이었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시원하게 열린 주변 경치를 둘러본 후 곧 하산길로 나섰다.

 

내리막길은 응달이어서 눈이 더 깊게 쌓여 있었다. 경사도 급하고 눈도 깊어 위험할 것 같았지만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어서 다행히 미끄럽지 않았다. 그래도 일행들은 엉금엉금 천천히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절고개 갈림길에서 서리산으로 오를까를 고려해 보았지만 우리일행들의 체력으로는 무리일 것 같아 곧장 주차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고개아래는 울창한 잣나무 숲이었다. 겨울산의 잎이 진 앙상한 활엽수들만 바라보다가 짙푸른 잣나무 숲속에 들어서니 싱그러움이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 매우 좋다.

 

골짜기는 해가 많이 들지 않아 쌓인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휴양림 펜션 가까이 이르자 훌쩍 키가 큰 잣나무 아래 비어 있는 벤치 하나가, 하얀 눈 속에 호젓한 외로움에 젖어 있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아 골짜기를 흐르는 물은 거의 말라 있었다.

 

마을에 이르자 어디선가 퍽! 퍽! 장작 패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니 정말 우연하게도 우리들이 점심을 예약한 음식점 ‘들꽃’의 뒤뜰이다. 나이가 60이 거의 다 되었다는 주인아저씨의 장작 쪼개는 솜씨가 대단하다. 도끼를 치켜들었다가 내리찍을 때마다 정확하게 장작을 쪼개고 있었다.

 

늦은 점심은 닭고기 요리와 토속 동동주가 입맛을 돋우었다. 모두들 시장했던지 입맛에 척척 감기는 동동주를 곁들여 맛있게 잘도 먹는다. 음식을 먹다가 뒤뜰에 나가보니 아저씨는 여전히 장작을 패고 있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아저씨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식당 안에 지핀 난로에 뗄 장작이라고 한다. 뻑! 뻑! 장작 패는 소리가 산골마을의 정적을 깨뜨린다. 식당 안으로 돌아와 먹던 음식을 마저 먹고 나왔지만 아저씨의 장작 패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 사이 짧은 겨울 해는 눈 쌓인 산마루에 걸려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축령산, #동고비, #장작, #숯가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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