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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중구난방’, ‘갈팡질팡’, ‘아마추어’….

 

요즘 누리꾼들이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의 교육정책 기사에 달아놓는 꼬리표다. 물론 이 같은 ‘사자성어’는 이유가 있다. ‘학교와 교육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 달 26일 출범한 인수위가 한 달여 간 쏟아놓은 말과 행동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장면1] 자사고와 기숙고도 헷갈리는 이 당선인

 

이명박 당선인의 첫 신년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14일. 이 당선인은 이날 ‘사교육 열풍’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음처럼 말했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는 농촌 지역이나 중소도시에 설립해서 그 지역 학생을 우선 뽑고, 모자라면 다른 지역에서 학생을 뽑을 것이다.”

 

이 당선인이 공약한 자사고 100개 전환 등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가 사교육 진원지가 될 것이란 여론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맞으려면 농촌지역이나 중소도시에 있는 인문계 사립고를 두 학교 걸러 한 학교씩 자사고로 바꿔야 한다. 이 당선인이 지목한 중소도시와 농촌지역 사립고는 349개(중소도시 211개, 읍면지역 131개, 도서벽지 7개)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말은 기자회견 다음 날인 15일 ‘착각에 따른 말실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인수위 관계자는 “기숙형공립고교를 농어촌지역과 중소도시에 우선해서 전환한다는 당초 공약이 있는데 이에 대해 말씀을 하신 것”이라면서 “(당선인이) 답변에서 자율형사립학교라고 (잘못) 표현하신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한만중 전교조 정책실장은 “스스로 낸 핵심 공약까지 착각하는 교육현장 인식수준이 걱정스럽다”고 혀를 찼다.

 

[장면2] '영어몰입', 위원장과 간사 말도 뒤집나?

 

영어몰입교육에 ‘몰입’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난 28일 인수위가 그 동안 ‘몰입’ 자세에서 벗어나 한 발을 뺐다.

 

이날 인수위는 오후 브리핑에서 “영어교과 이외에 다른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이른바 ‘몰입교육’을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런 발표는 그 동안 인수위 핵심 관계자들의 발언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은 것이다. 사실 ‘몰입교육’ 말풍선을 터뜨린 이는 다름 아닌 이경숙 인수위원장과 이주호 사회교육문화분과위 간사였다.

 

지난 22일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 인수위원장은 “일반과목에도 영어수업을 할 수 있다”면서 영어교육 개혁을 강조한 바 있다.(<국민일보> 29일치 인용)

 

사흘 뒤인 25일, 교육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 이 간사는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사나 과학에 대해서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다”면서 “몰입교육의 경우 일시에 실시하기는 힘드니 농어촌 중심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오마이뉴스> 29일치 인용)

 

인수위의 이런 ‘중구난방’식 태도는 학부모의 마음을 더욱 ‘갈팡질팡’하게 만들고 있다. 인수위 스스로 위원장과 교육정책 입안 실무 책임자가 발언한 내용 뒤엎기를 반복하고 있는 탓이다.

 

[장면3] '인재과학부' 혼란상과 교육부도 당혹해 한 학교명 공개

 

지난 16일 발표된 ‘인재과학부’란 명칭을 둘러싼 혼란상은 인수위의 논의 구조를 알 수 있게 한 바로미터였다. 결국 부처 명칭에 ‘교육’이란 말을 다시 끼워 넣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 명칭 논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관계자조차도 논의에서 배제된 사실을 시인한 것.

 

이 관계자는 지난 17일 “이번 명칭 결정은 인수위 (사회교육문화) 분과와 상의 없이 (정부혁신·규제개혁) TF팀이 결정한 것”이라고 속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 2일 학생 성적과 학교 이름까지 공개토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인수위의 태도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런 요구 자체가 정보공개법 위반이라는 말 자체가 교육부에서도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인수위의 이 같은 요구는 지난 해 4월 통과된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안’(교육정보공개법)을 정면으로 거스른 행위였다.

 

지난해 법 통과 당시, 국회는 여야 합의로 현 대통령직 인수위 이주호 사회교육문화분과위 간사가 발의한 교육정보공개법 원안 내용 가운데 ‘개별 학교의 명칭 제공 불가’ 규정을 추가해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태도에 대해 교육시민단체에서는 “인수위 간사 본인이 낸 교육정보공개법 원안이 수정됐는데도 모법을 위반하는 시행령을 만들라고 강요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열만 내는 인수위, 귀를 열어라"

 

‘실력(전문성)은 없으면서 열(성)만 내는 교사가 학생들을 가장 많이 망친다.’

 

학교 교사들 사이에서 수십 년째 떠도는 말이다. 대개 위와 같은 교사일수록 성급하다. 이에 따라 학생들을 향해 귀를 열기보다는 몽둥이를 들기 십상이다.

 

이것이 바로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교육정책을 쏟아냈다가 주워 담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인수위의 모습은 아닐까.

 

전교조가 29일 여론조사전문기관에 의뢰해 발표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대다수가 인수위가 교육정책 발표에서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인수위의 교육정책 변경 시 여론수렴 과정 필요성’을 묻는 물음에 찬성은 88.1%나 되는 반면, 반대는 10.4%에 지나지 않았다.

 

지방의 한 국립대총장도 인수위에 다음처럼 ‘귀를 열 것’을 주문했다.

 

“인수위의 교육정책 방향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을 책임도 지지 못하면서 너무 성급하게 내놓고 있다. 교육 이해당사자와 함께 더 깊이 논의한 뒤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 인수위는 좀 더 폭넓은 의견을 듣기 위해 귀를 열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명박 교육정책, #인수위, #영어몰입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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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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