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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경로 : 투루힐로(Trujillo) → 찬찬 유적지(Chan Chan) → 파스카스마요(Pascasmayo) → 구아다루페(Guadalupe) → 초펜(Chopen) → 치클라요(Chiclayo)

"내 노란색 티셔츠가 없는데?"

아무리 온 가방을 뒤져도 노란색 티셔츠가 없다. 빨래방에서 찾아온 봉투를 보니 에릭이 한 개를 잘못 센 것이다. 그런데 10개라고 찾아왔으니 참 기가찬 노릇이다. 내 노란색 티셔츠가 없다고 해도 별 반응이 없고 자기는 제대로 잘 세었다고 하면서 계속 노트북으로 작업만 한다. 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자전거 바지랑 티셔츠는 다림질 하면 안 된다고까지 이야기했는데, 당신 기억하지?"

나는 에릭에게 빨리 노트북 작업을 집어 치우고 와서 빨래를 다시 세라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태연하다. 뭐 티셔츠 하나 가지고 또 난리를 피우냐는 투로 말한다. 나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에릭은 빨래를 다시 세었고, 하나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밤 9시30분. 빨래방에 가자고 하니 "문을 닫았을 테니 내일 가면 된다"고 또 여유를 피운다.

"당신이 찾을 때 10개라고 찾아왔고, 영수증도 없고, 우린 아무 증거도 없어. 그리고 그 티셔츠는 자전거 탈 때 무척 편하고 새 옷이야"라고 쏘아대며 혹시나 하고 에릭을 끌고 빨래방으로 갔건만 역시나 문을 닫았다. 오히려 에릭은 나더러 겨우 티셔츠 때문에 너무 화를 내지 말란다.

대부분 남미의 빨래방의 표지는 세탁기 모양이나 아니면 Lavanderia 또는 영어로 Laundry 라고 쓰여 있다.
▲ 우리를 부부 싸움 일보 직전에 가게 한 빨래방 대부분 남미의 빨래방의 표지는 세탁기 모양이나 아니면 Lavanderia 또는 영어로 Laundry 라고 쓰여 있다.
ⓒ 김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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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재는 저울
 빨래를 재는 저울
ⓒ 김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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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하게 대처하는 에릭의 모습에 나는 더욱 화가 났고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100개도 아니고 10개도 제대로 세지 못했을까! 분명히 빨래방 사람과 수다를 떨면서 양말을 한 켤레로 세지 않고 두 개로 센 것이다. 안 그래도 쓰레기가 많은 도로와 냄새가 펄펄나는 곳을 아무 불평하지 않고 나름대로 적응하면서 여행에 임하고 있건만 왜 날 화나게 하느냐구!

쓰레기가 바람에 날려도 태연하게 유유하게 달리는데 
왜 날 화나게 하느냐구!
 쓰레기가 바람에 날려도 태연하게 유유하게 달리는데 왜 날 화나게 하느냐구!
ⓒ 김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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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힘들게 여행하는 건가, 선진국에서 여행을 하면 이런 일이 없지 않느냐"고 계속 내 분에 이기지 못해서 쏘아대자 에릭은 '넌  떠들어라, 싸울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이불을 확 뒤집에 쓰고 잔다. 드르렁 드르렁, 코까지 골면서 말이다.

다음날 일찍 버스로 유적지를 방문하는 티켓을 끊어 놓아 숙소의 주인아저씨께 빨래방에 가서 우리 티셔츠를 꼭 찾아놓으라고 당부하는 것도 모자라, 거기에 쪽지까지 써서 주고 유적지를 방문했다. 유적지를 방문하면서도 내 머리 속은 '나의 노란 티셔츠가 과연 있을까?'하는 생각뿐이었다.

1986년 유네스코에 등재됨. 20 Qaudrokilometer가 모두 Adobe (붉은 벽돌)로 지어졌으며 100,000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 된다고 함. 종교, 행정,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Chimu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 유적지 찬찬(Chan Chan) 1986년 유네스코에 등재됨. 20 Qaudrokilometer가 모두 Adobe (붉은 벽돌)로 지어졌으며 100,000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 된다고 함. 종교, 행정,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Chimu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 김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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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어망, 새, 동물,바다와 관련된 선 문양 및 생활과 관련된 것을 담이나 벽에 만들어 놓음.
 파도, 어망, 새, 동물,바다와 관련된 선 문양 및 생활과 관련된 것을 담이나 벽에 만들어 놓음.
ⓒ 김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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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는 총9광장이 있는데 첫 광장이 제례 광장이며 두 남자의 동상이 있는데 이문을 통과 할 때 기분이 아주 묘하다.
 유적지는 총9광장이 있는데 첫 광장이 제례 광장이며 두 남자의 동상이 있는데 이문을 통과 할 때 기분이 아주 묘하다.
ⓒ 김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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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방문을 마치고 저녁에 빨래방에 도착하여 상황을 설명하니 주인은 분명히 10개를 다 찾아갔다며 남은 빨래가 없다고 한다.

"그 티셔츠 없으면 우리 부인이 날 죽인대요."

에릭이 우리가 세 번에나 당신 가게에 빨래를 맡겼었고, 주인에게 다른 사람의 빨래를 다 뒤져서라도 찾아야 한다고 강조에 강조를 하니 주인은 좀 머뭇거리면서 빨래를 찾는 척했다. 혹시 다른 지점에 있을지도 모른다며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전화를 하더니 그곳에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된 상황이건 간에 내 티셔츠가 있다는 것이다.

티셔츠를 받아오면서 든 생각은  "참 희한한 일"이라는 것이다. 아침에 호스텔 주인이 와서 이야기 할 때도 없다고 하고, 우리가 빨래가 없어졌다고 할 때도 남은 빨래가 없다고 그렇게 강조하던 주인이 갑자기 다른 지점에 혹시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며 찾아준 것이다. 아마도 주인이 '슬쩍'하려고 하다가 내가 그리도 발을 동동 구르고 부부싸움까지 했다고 하니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빨래방 사건은 이것만이 아니다. 한 번은 빨래가 다음날 다 된다고 해서 가니 그 다음날에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 다음날은 여행을 해야 하고 꼭 그날 찾아 가야 한다고 하니 머뭇거리면서 좀 기다리다고 한다. 30분을 기다리니 그제서야 빨래를 가지고 나온다. 빨래를 맡길 때 말리는 것도 기계에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그냥 해에다 말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날 찾아가야 한다고 우기니까 그때 건조기에 빨래를 넣고 돌린 것이다. 남미에선 이런 경험을 자주 했다.

"오후의 바다를 보며"

바다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잠시나마 고향 경포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투루힐로에서 14km 떨어진 곳에 Huanchaco라는 관광지가 있다. 이곳은 휴양지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Mochias와 Chimus 시대의 페루 선조들이 사용했던 고깃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에도 이 배는 고기잡이 배로 이용 되고 있는데 이름은 Caballitos de Totora 이다. 짚 같은 것으로 엮었는데 모양이 특이하다. 바다의 파도도 엄청 높고 날씨도 서늘한데 해변가에서 모래성을 쌓으면서 노는 아이들, 사랑을 속삭이는 남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 난 에스프로소 한잔과 와인을 마시며  유년 시절을 떠올려 본다.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기잡이 배로 이용하고 있다.
▲ Caballitos de Totora 라는 페루 선조들의 배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기잡이 배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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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파도를 헤치면서 고기를 잡으러 갈까보나!
 높은 파도를 헤치면서 고기를 잡으러 갈까보나!
ⓒ 김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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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잡은 생선, 감자 튀김과 아보카드 를 곁들인 요리
 갓잡은 생선, 감자 튀김과 아보카드 를 곁들인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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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은 자전거를 두고 아마존을 다녀온 여행기를 들려드립니다. 함께 타잔이 되어 보시죠!

덧붙이는 글 | 김문숙 기자는 남편인 에릭 베어하임과 지난 2005년 부터 아르헨티나와 칠레, 볼리비아, 페루를 여행한 후 2007년, 6개월의 휴식을 취한 뒤 현재 자전거를 타고 페루 북쪽과 에콰도르를 여행 중이다. -저서『안데스 넘어 남미를 달린다』(나래울)



태그:#남미자전거여행, #세계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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