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7년 7월 31일 화요일, 날씨 구름, 순례 39일째.
페드로조에서 순례종점(終點),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22km.
밤 4시 30분 출발, 오전 11시 도착.


만월을 걸어서, '해가 뜨기 직전이 더 깊은 어두움에 깔린다니...'

귀마개를 비집고 들어오는 낮은 알람소리를 알아들을 정도로 얕게, 잠들어있었다. 곧 호르케가 위층침대에서 조용히 내려와 모바일을 꺼내 보여준다. 흐린 눈을 가늘게 뜨고 들여다 본 시각은 세시 반, “어떻게 할래?”, “같이 갈래.”, 그리고 ‘언니 저 먼저 갈게요. 산티아고에서 뵈어요’, 하고 미리 적어둔 쪽지를 꺼내 옆자리 언니들의 가방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가방을 메고 침낭이며 우의를 정리하지도 못한 채 껴안고 나왔다.

복도에 짐을 풀어 하나하나 챙기고, 어제 사 둔 요거트에 빵을 조금 찍어먹었다. 걷기 위해 빵조각을 입에 가져가며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의자에 앉아있으니 주위를 오고가는 그들의 움직임 역시 느리듯 차분하다. 주위소리에 잠이 깬 은아 언니가 방문을 열고 나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무리하지 말고, 우리도 이따가 갈게”하며 인사를 건넨다. 조용히 현관을 열자 싸늘한 기운이 끼쳤다. “하늘 봐. 달 보이지?”,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 밤하늘에는 동그란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도로는 야간조명으로 사방이 또렷하게 구분될 만큼 환했다. ‘생각한 것처럼 위험한 일은 아니었구나’, 곧 큰길로부터 멀어져 숲길에 접어들자 높게 뻗은 나뭇잎들이 빛을 막아 주위가 새카맣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부연 그림자는 방향을 가늠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길 위에서 돌부리에 채일라, 무엇에 걸릴라 한 발짝 내딛는 것이 불안하기만 하다.

곧 앞서 걸어가는 이들의 온기, 낮은 숨소리, 자박자박 흙길을 걷는 발걸음소리가 느껴졌다. 시각에 의지했을 때엔 알지 못했던 작은 단서들이 암흑 속에서 빛이 된다. 그렇게 서로 한 마디 말도 없이 길을 걸었다. 내 앞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으니까…, 발걸음이 곧 자연스러워진다.

쉼 없이 걷다 모두 지쳤는지, “잠깐 여기서 쉬자” 하고 벤치도, 바도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에 짐을 던지고 주저앉았다. 완만한 경사를 가진 곳이라 몸이 뒤쪽으로 기울어 가방을 끌어안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랜턴의 빛이 어지럽게 움직이며 서로 물을 나눈다. 그저 가만 앉아있었더니 초콜릿 판을 쪼개 건네주기에 말없이 받아 삼켰다. 겨우 정신이 들어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곧게 자란 대나무 사이로 흰 달이 어른거렸다. 별빛이 드문드문 깜빡이고 댓잎들은 바람에 부딪히며 ‘솨아’, 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시 걷기 시작하고,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니 이제까지의 부연 형체마저 잃어 손으로 만지면 검댕이라도 묻어나올 칠흑이다. 얼마 되지 않아 땅 끝에서 어른거리는 빛이 붉은 파장을 만들어내며 주위를 밝혀간다. 일출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해가 뜨기 직전이 더 깊은 어두움에 깔린다니…’, 무엇인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생각을 헤치며 걸어 나갔다. 느닷없이 들리는 굉음에 돌아보니 커다란 비행기의 엔진소리였다. 철창을 붙들고 새벽을 나는 비행기의 이륙을 지켜보았다. 그곳은 산티아고 공항이었다.

스페인식으로 어려움을 이기는 법

주변은 금세 환해졌고 곧 넓게 닦인 길 양편으로 익숙한 내음이 느껴졌다. 곧게 자란 유칼립투스 나무의 열을 따라 걸으며 눈앞으로 안개가 빠르게 걷혀간다. 바람에게 모습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늘한 흐름 속에서 부연 구름을 헤치듯 바람을 가르듯 걸었다. 조용히 그들의 스페인어 수다를 들으며 한 발짝씩 줄어드는 걸음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 기분을 말로 붙들어두고 싶었다. 성취감, 만족감, 아쉬움, 기쁨, 슬픔, 허전함, 공허함…, 그러나 그 어떤 말도 꼭 들어맞지 않았다.

침묵에 잠긴 나와 달리 같이 걷는 이들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눈에 띄게 활발하다. 눈앞의 안개처럼 빠르게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들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들은 지나치게 시끄러웠다. 언제나 수줍어 나와 말 한 번 제대로 나눈 적 없었던 세바스의 열정적인 이야기에 산티와 호르케가 웃다 죽겠다는 듯이 껄껄거린다.

“세바스가 너무 힘드니까 이제부턴 지팡이를 말처럼 타고 가겠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너는 산티아고에 가서 콤포스텔라 받을 때 도보순례자가 아니라 말 탄 순례자 증서를 받아야 된다’고 하고 있었지. 나도 그럼 지팡이 말 타고 가 볼까!”

박차고 내달리며 ‘이히힝’ 말 울음소리를 내는 호르케를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와, 난 진짜 지금 죽겠는데…, 얘들은 나보다 더 힘들면 힘들었지 나을 리가 없는데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이 나는 거야?’ 어이없었다. 사진을 찍고 서로에게 장난을 치며 뛰듯 걷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아직 어린 애들이구나’ 생각하며 뒤를 천천히 따랐다.

그들은 얼마 되지 않아 남의 집 담 옆에 짐을 휙 놓아두고 뚝방에 앉아 쉬기 시작했다. 서로 찍은 사진들을 돌려보기도 하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푼다. 아무리 봐도 축축한 풀밭에 그냥 앉는 것이 탐탁지 않아 가만 서 있으니 와서 좀 앉으란다. 어설프게 자리에 끼어 가만 앉아 물어보았다.

“너희 안 힘들어? 난 말하는 것도 힘들어서 그냥 걷기만 하는데 어쩜 그렇게 끝없이 얘기들을 할 수 있어?”
“안 그래도 죽겠어. 너도 알겠지만 엊그제 리바디소에서도 풀밭에서 거의 못 자고 또 걷고, 그러고도 어젠 네 시간을 채 못 자고 한 밤에 나왔으니 휘청거리지.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힘든 채로 풀이 죽어있으면 계속 힘들어. 이렇게 힘들 때 오히려 더 많이 웃고 신나게 노는 게 우리가 어려움을 이기는 방법이야. 네가 스페인어를 할 수 있으면 같이 웃으면서 즐길 수 있을 텐데, 통역을 다 못해줘서 미안해. 아무리 영어로 말해도 스페인 사람이 아니면 하나도 안 웃긴 얘기들이라, 한국에도 그런 거 있지?”
“영어로 옮기는 것도 피곤한 일이잖아. 힘든데 무리하지 않아도 돼. 그냥 너희랑 함께 걷기만 해도 알 것 같아.”

그리고 산티가 놀랐다는 듯이 이야기를 건넨다.

“난 그동안 내가 행복할 때와 슬플 때 왜 그런지를 잘 몰랐어. 무엇이 나를 즐겁게 하고 우울하게 하는지를 전혀 몰랐지. 그런데 길을 걸으면서 점점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오늘 확실하게 알았어. 나는 햇빛이 쨍쨍한 날에 행복해. 그리고 햇빛을 볼 수 없으면 우울해져. 신기하지?”
“햇빛이 너의 에너지원이구나?”
“맞아. 태양의 힘으로 살아가는 거지. 그래서 지금은 좀 우울하지만, 곧 햇빛이 나겠지!”

이야기를 듣고 다시 그들의 낯빛을 살피니 그저 좋고 신나서 웃는 것이 아니었다. 그 활발함과 시끄러움 뒤편에는 무거운 피로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괴롭고 힘든 순간을 익살과 재치로 넘기는 모습에서 이런 것이 스페인 사람들의 힘이고 저력일까, 가볍게 생각했다.

'지금 기분이 어때?', '잘 모르겠어….'

곧 처음으로 만난 길가 작은 펜션의 바에서 카페와 ‘토스타다(Tostada, 딱딱한 토스트)’에 ‘만떼끼야(Mantequilla, 버터)’와 잼을 잔뜩 발라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산티아고를 앞두고 순례자 여권에 마지막 도장을 받았다. 어느새 ‘몬테 데 고조(Monte de Gozo)', 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순례자 숙소가 자리한 곳이었다. 동산 위에 정체불명의 거대한 조각상이 서 있고 그 곳에 서서 도시를 굽어볼 수 있었다. 날씨가 흐려 시야도 탁했다. 이곳으로부터 5킬로미터, 바라 마지않던 산티아고까지의 거리이다.

산티아고까지 5km.
순례자 숙소와 각종 시설이 있는 곳
▲ 몬테 도 고조 산티아고까지 5km. 순례자 숙소와 각종 시설이 있는 곳
ⓒ JH

관련사진보기


좁은 길을 따라 내리막을 타고 주위를 돌아보니 어느새 도시의 풍경으로 바뀌어 있다. 긴 다리를 따라 걷다 산티아고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도로를 긋는 찻길을 이리저리 피해 표지판 앞에 달려가 감격에 만세를 연호하는 호르케의 사진을 찍었다. 길로 되돌아와 “지금 기분이 어떠니?”, 그의 질문에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아까부터 계속 생각하던 건데, 잘 모르겠어. 처음엔 산티아고에만 닿으면 정말 기쁘고 모든 게 다 좋을 것만 같았어. 지겨운 하루걸음 신세도 끝나고 푹 쉴 수 있게 되는 거잖아. 그런데 지금은…, 복잡해. 이제 조금 알 것 같은데, 어떻게 걷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는 지도 겨우 알 것 같은데, 너와도 이제야 함께 걷기 시작했는데…. 산티아고에 닿으면 모두 헤어지게 되는 거잖아.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잖아. 원하든 원치 않든.”

그는 조금 생각하다 이야기를 건넸다.

“내가 멕시코에서 돌아온 다음 바로 오스트리아에 갔었다고 했잖아. 쉽지 않았어.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여자친구 하나만 믿고 떠났던 곳이라 내겐 그녀 말고는 아무도 없었어. 게다가 오스트리아는 조용해. 내겐 너무 조용해서 지루할 정도로 말야. 스페인이나 멕시코에 있었던 때처럼 수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왁자지껄하게 지냈던 것과는 천지차이였지. 물론 아름다운 자연,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함께 순례를 시작했을 정도로 친해진 그녀의 어머니와 보낸 시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지만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야.

그렇게 6개월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3일 만에 혼자서 펑펑 울었어. 나도 이해가 안 되는 거야. 슬퍼서 우는 건지 좋아서 우는 건지도 모르겠고, 왜 이제 와서 눈물이 나는 건지도 몰랐어. 그렇지만…, 이렇게 내 안에 감정의 그릇이 있다면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왔던 수많은 기억들, 느낌들이 끝까지 차올라서 그 경계를 넘을 어느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확 넘친 거지. 방금 네 얘기를 들으며 갑자기 그 때가 떠올랐어.”

반갑습니다.
▲ 산티아고 반갑습니다.
ⓒ JH

관련사진보기



마침내, Santiago de Compostela.

산티아고의 신도시, 별 다섯 개가 반짝거리는 으리으리한 호텔과 처음 보는 세련된 바, 각종 쇼핑센터와 쇼윈도에 진열된 고급 상품들을 부지런히 지나쳤다. 한바탕 시끄러운 집회와 유모차를 패대기치는 성난 남자를 조심스럽게 돌아 걸었다. 온통 시퍼런 쪽빛으로 칠한 외벽에 흰 산티아고 십자가를 그려 넣은 멋진 레스토랑을 바라보며 사진 한 장을 찍고 노란 화살표를 찾아 두리번거리자, 어느새 고즈넉한 옛 돌담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갑자기 내 팔을 꼭 붙들며 “준비 되었니?” 하고 묻는 호르케는 멀리 삐죽하게 올라선 첨탑을 가리킨다. 하늘에 가득한 잿빛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대성당의 높게 솟은 십자가에 목 언저리가 울렁거린다. 39일 동안 알게 모르게 내 안을 채우던 감정이 경계를 넘실거리며 나를 흔들었다.

산티아고 구도시
▲ 산티아고에서 산티아고 구도시
ⓒ Jorge Sevilla

관련사진보기



거리의 악사는 파이프오르간을 닮은 갈리시아 지역의 민속 악기를 품에 안고 찢어지는 고음을 터널에 울리고, 우리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 광장에서 방향을 모르고 두리번거리는 나를 향해 “바로 여기야.” 하고 등 뒤를 가리킨다. 무심코 돌아본 곳에는 순례의 종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우뚝 서 있었다.

산티아고 대성당
▲ 산티아고에서 산티아고 대성당
ⓒ JH

관련사진보기


호르케는 카메라를 맡기고 산티와 세바스와 함께 만세를 부르고는 서로 껴안고 철퍼덕 누워버린다. 대광장 돌바닥에 등을 기댄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그에게 건넸다. 나도 곧 가방을 풀고 촬영버튼을 눌러 산티에게 전했다. 주섬주섬 몇 마디를 채 꺼내지 못하고 그저 바닥에 꿇어앉아 하염없이 대성당을 쳐다보다 곧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그리는 것으로 서툰 기념식을 마쳤다.

곧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숨이 막힐 정도로 끌어 안겼다. 먼지도 더러움도 안중에 없이 바닥에 드러누워 빙그르르 굴렀다. 마치 산티아고 땅이 나를 꼬옥 보듬어주는 것만 같았다. ‘잘 왔어. 그동안 고생 많았어. 네 새카맣게 탄 팔뚝을 봐도 알겠는걸. 다리는 괜찮니? 이제 편히 쉬렴. 정말 잘 왔어’, 작고 따뜻한 목소리를 건넸다. 나는 정말 기뻐서, 그 기쁨을 차마 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기쁨에 겨워 있었다.

탈혼과 멍함의 경계에 있던 나를 깨운 것은 호르케의 목소리였다. “콤포스텔라 받으러 가자. 바로 저기야.”,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들여다본 시계는 열한 시가 조금 넘었다. 순례자 사무실에 찾아가 그 동안 닿았던 곳의 도장이 빼곡하게 들어찬 두 권의 여권을 들이밀고 한 장의 상장을 받았다. 라틴어로 무엇인가 잔뜩 쓰여진 종이 한 장, 지금까지 받아본 몇 안 되는 상장 가운데 가장 뜻 깊은 것이었다.

정오의 순례자 미사에서

순례자 사무소 앞 작은 광장에서 요세페 수사님을 만난 호르케는 마치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듯 그를 꼭 껴안았다. 순례를 시작한 부르고스에서 ‘연극처럼 보이는 수도복’을 입고 다니는 세 사람의 프란치스코 수사들을 만났다. 신기하기만 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처음 말을 건 후 그들은 내내 함께 걷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그가 떠난 날, 나는 수사님들과 함께 숙소를 청소하고 아침미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레온으로 갔다. 그리고 나도, 호르케도 20일 만에 산티아고에서 요세페 수사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난 널 봤다니까’, 하고 아무리 말해도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수사님을 접점으로 나와 호르케의 처음 만남이 다시 쓰여지는 순간이었다. 열두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그와는 미사 후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수사님과 나는 대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안은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한 뼘 자리를 찾는 것도 힘들었다. 말씀과 강론 덕분에 앉아있을 수 있게 되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가방에 기대 고개를 꺾다시피 하며 잠들었다. 금세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시장바닥 같은 분주함에 심드렁해져서 빨리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퇴장성가를 부를 때만 손꼽았다. 마치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처럼, 관광객에게 점령당해 내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머리가 다 아팠다. 줄을 서서 성체를 받고,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수사님이 나를 끌어 ‘저기’를 보라고 손짓하신다.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소리와 높은 소프라노의 성가가 시작되고, 어디서 나타난 십여 명의 갈색 로브를 입은 남자들이 제대 주위에 섰다. 금빛의 거대한 향로에 유황을 붓고 불을 붙이자 부연 연기가 올랐다. 남자들이 천정에 그 끝이 매달린 긴 줄을 힘껏 당기자 향로는 힘을 받아 허공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성당의 좌우로 호를 긋는 향로는 곧 안정적인 펜듈럼을 그리고, 은은한 유황의 향기가 사방에 퍼졌다.

언제부턴가 나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애들 장난’이라고만 여기던 그 향로의 움직임이 꼭 나와 같았다. 그것은 내 길과 같았다. 아니, 내 삶과 같았다. 이리 흔들리고 저리 치이며 원점을 두고 맴돌았던 바로 그 모습인 것만 같았다. 움직임이 잦아들고 의식과 미사가 모두 끝나고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를 뜰 줄 몰랐다. 가슴께를 부여잡고 흐느끼며 울었다. 마음 그릇이 차고 넘치는 순간이었다. 쉬이 눈물이 멎지 않아 더 이상 친구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터덜터덜 성당을 나섰다.

빼곡한 계단을 따라 내려오다 윤소 언니와 은아 언니를 만났다. 방금 도착했다고 하신다. 나는 제대로 인사를 건네지도 못하고 계단 한 쪽에 앉아 울기만 했다. 윤소 언니의 위로를 받고 은아 언니의 손수건을 건네받아 눈물을 찍어냈다. 산티는 ‘잘했다’며 뺨을 쓸어내리고 호르케는 조금 떨어진 계단에 기대고 앉아 나를 바라보며 ‘내가 말했지’하는 것처럼 웃는다. 대체 왜 우는지도 모르는 채 끝없이 흐르는 눈물, 오스트리아에서 돌아와 3일 만에 눈물을 쏟은 그의 마음이 이와 같았을까. 그렇게 뾰족뾰족한 성당계단에 몸을 뉘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지금, 산티아고는 축제의 절정

광장을 가득 채운 인파, 오늘은 축제의 마지막 날
▲ 산티아고에서 광장을 가득 채운 인파, 오늘은 축제의 마지막 날
ⓒ JH

관련사진보기


곧 짐을 꾸리고 떠날 채비를 하는 산티와 세바스, 그들은 오늘 이 곳에 사는 친구네 집에서 하루를 묵고 바로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언제나 함께였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미안하기만 한 이들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 다들 잘 지내고” 했더니 세바스가 불쑥 “너희 집 주소 적어줘”, 그래서 별 생각 없이 한국의 집 주소를 적어주었다. “너희 집에 행복한 담배 잔뜩 보내줄게” 하고 한바탕 웃기에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기다릴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들과 인사를 하고, 시간이 꽤 흘러 숙소를 정하기 위해 움직였다. 약간의 의견충돌, 혹은 순례자 숙소가 아닌 일반 숙소에서의 혼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과 호르케는 숙소를 달리했다. “요세페 수사님께 수도원 모임 초대를 받았어. 아홉시 반에 대성당에서 만나자”, 약속 하나만을 남기고 헤어졌다.

짐을 푼 곳은 과거의 수도원을 개조한 곳으로 대성당 바로 옆에 붙어있어 위치가 좋았다. 아름다운 정원과 물 흐르는 분수를 지나 방에 들어서니 침대 세 개가 빼곡하게 놓인 단촐한 구성이 마음에 쏙 들었다. 무엇보다 정말 오래간만에 만나는 시트가 제대로 깔린 침대가 반가웠다. 점심부터 같이하기로 하고 숙소에 딸린 식당에 내려갔다.

과거 수도원의 식당이었는지 드높은 천정 한쪽에는 독서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실내를 가득 채운 손님들의 수발을 다 받아내지 못하는 일손들을 오랜 시간 기다려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새하얀 시트를 펼치고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가 달콤한 낮잠을 즐기고, 부스스하게 깨어 몸을 씻었다.

곧 언니들과 함께 오후 나들이를 하기로 하고 숙소를 나와 대성당으로 향했다. 미사만 하고 급히 나온 터라 제대로 본 것이 없었다.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고 긴 줄을 기다려 앞사람들을 따라 성 야고보 상을 덥썩 껴안았다. 쇠 냄새가 확 끼쳤다. 무덤에도 꾸벅 인사를 하고 대성당을 나와 시내를 걸었다. 방향을 모르고 길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에 휩쓸려 도착한 곳은 ‘알라메다 공원(Parque de la Alameda)’이었다.

짙푸른 신록의 나무들 아래 범퍼카와 바이킹이 화려한 조명을 뽐내며 돌아가고 뻥튀기 같은 과자를 늘어놓고 파는 노점, 온갖 상품을 가득 채우고 한몫 잡아볼 것을 유혹하는 뽑기 트럭, 기름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연신 츄러스를 튀겨내는 모습은 보고 있기만 해도 뜨거웠다. 마치 한국의 작은 마을축제를 보는 것만 같았다. 도너츠를 튀겨내고 공기총으로 인형을 쏘아 맞추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상의 끝이 부르는 소리 - Camino de Finisterre

공원 주위를 빙그르르 돌아 걸어 나가자 곧 조용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산티아고 대성당이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조망점에 닿았다. 커다란 나무를 빙 두른 벤치에 앉아 대성당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첨탑의 날카로움을 가만 쳐다보았다. 한 달을 넘게 그리던 곳에 와 있건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헛헛함이 느껴졌다.

구도시의 전경
▲ 산티아고에서 구도시의 전경
ⓒ JH

관련사진보기



대성당을 배경삼아 사진을 몇 장 찍고 공원을 빠져나오며 바쁘게 ‘피니스테레(Finisterre, 갈리시안:Fisterra)'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땅끝이라는 의미를 가진 피니스테레는 산티아고로부터 시작해 약 100킬로미터를 걸으면 도착하는 바닷가 마을이다. 과거 스페인 사람들은 이곳을 땅끝이라 믿었나 보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도 땅끝은 피니스테레가 아니고, 이베리아 반도를 기준으로 하면 그 영예는 포르투갈의 ‘로카 곶(Cabo da Roca)’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비록 지리상 땅끝의 의미는 잃었을지언정 산티아고 순례자들에게는 최후의 종착지이자 ‘순례의 끝’을 위한 새로운 목표점이다. 무엇보다 피니스테레의 등대에서 순례자들이 지금까지 함께 걸어왔던 신발, 옷, 혹은 자신의 과거를 의미하는 물건들을 불태우고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의식이 전통처럼 되어있다. 나로서는 거금을 주고 산 아까운 등산화도, 달랑 두 벌뿐인 옷도, 그 무엇도 태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대서양을 보고 싶었다. 그림 같은 멋진 해변에서 휴식을 갖고 싶었다. 순례를 정리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 그냥, 걷고 싶었다. 스물스물 번져오는 공허함을 메우고 싶었다.

바로 산티아고 관광센터로 향해 ‘피니스테레-무씨아’ 순례정보가 담긴 얇은 책 한 권을 챙겼다. 골짝골짝 오르내림이 심하다는 정보가 불현듯 떠올랐다. 오전에 들렀던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를 마친 이들의 지팡이가 잔뜩 쌓여있던 것을 기억하고 괜찮은 녀석을 골라왔다. 급할 것 하나 없는데도 서두르고 있었다.

작은 수도원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평화를 빌다

숙소에 돌아와 지팡이를 매만지고, 자료들을 훑어보는 사이에 호르케와 약속했던 시각이 가까워졌다. 노을이 지는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그를 만나 프란치스코 수도원으로 향했다. 으리으리한 호텔과 성당을 지나 담벼락을 따라 걷자 순례자 숙소가 나타났다. 입구가 닫혀있어 한참을 수도원 주위를 서성이다 들어갈 수 있었다. 갈색 수도복을 입은 수사님들과 오늘 이 숙소에서 묵고 있는 순례자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계단을 따라 위층의 작은 성당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소성당 앞에는 제대와 독서대가 있었다. 드문드문 촛불이 켜지고 곧 몇 개의 긴 의자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라시온(Oracion)’, 순례자 기도모임의 시작이었다. 잔잔한 성가 속에서 짧은 침묵, 제대 앞의 수사는 작은 초에 불을 붙여 순례자들에게 건네며 그 빛을 서로서로 이어갈 것을 부탁했다. 어느새 내게 온 작은 초에서 작게 불타는 따뜻한 불빛을 쳐다보다 옆 사람에게 전해주었다. 곧 호르케가 독서대 앞에서 스페인어로, 윤소 언니가 영어로, 이탈리아 순례자가 이탈리아어로 성서를 봉독했다.

“병마와 싸워나가던 프란치스코 성인이 주님의 빛을 통해 평화를 만난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작은 자리에서 여러분이 빛을 나눠받고 서로에게 전했듯이…. 순례를 통해 여러분들이 길 위에서 받았던 빛과 평화를 세상에 널리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천 년 전 세상에 빛을 전하기 위해 오셨던 예수님, 그리고 그 빛을 전해 받았던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모두 순례자였습니다. 여러분의 순례는 오늘 이 곳에서 끝나지만 삶의 순례를 이어나가며 세상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빛이 되십시오.”

세 갈래의 가지를 가진 작은 램프에 불꽃을 붙이고 이야기를 거두는 수사님, 제대에 놓인 램프에서 타오르는 불빛들은 바로 믿음과 희망, 사랑이었다. 곧 제대를 둘러싸고 손을 맞잡고, 영어로, 스페인어로, 이탈리아어로, 한국어로 주님의 기도를 함께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한 구절 한 구절이 각 나라 말의 기도와 맞물려나가며 “아멘”으로 끝맺을 때, 진정 하나이며 공변된 교회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을 돌아가며 한 사람씩 안으며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파체(Pace)” 혹은 “피스(Peace)”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나의 빛이 또 다른 빛을 밝힌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밝힌다. 사람들의 연결고리, 그 아름다운 그물망을…, 책도, 강의도, 실험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소성당을 빠져나와 숙소 마당을 빙 둘러서서 서로의 느낌을 가볍게 나누었다. 기도를 이끈 수사님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확한 발음의 한국어로 인사를 하셔서 깜짝 놀랐다. 수도원의 한국 수사님들로부터 배우셨단다. 나도 수사님 앞에 서서 “감사합니다.”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수도원을 빠져나오며 호르케와 나란히 걸으며 “이렇게 멋진 모임에 초대해줘서 고마워.” 했더니 “나도 꼭 카리온 느낌이 나서 좋았어. 수녀님들 기억하지?” 그리고 나는 조심히 이야기를 건넸다.

“아까 숙소 정할 때 다른 곳으로 가서 미안해. 좀 복잡하긴 하지만 더 이상 순례자 숙소가 아닌 곳에서 다 같이 한 방을 쓰는 게 우리한테는 조금 생소한 일이었어.”
“걱정 마. 나도 이해해. 굳이 같은 곳에서 지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너희 마음에 드는 곳에서 편히 쉬는 게 더 중요한 거지.”

그리고 그의 피니스테레 계획이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될 수 있다면 같이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엔가, 곧 마드리드로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피니스테레는 언제 갈 거야?”
“맞아. 마드리드에 사는 세바스의 친구가 발렌시아까지 데려다 줄 수 있다고 해서, 최대한 빨리 순례를 마치고 마드리드로 가야 해. 전에도 얘기했지만 나에게 산티아고는 큰 의미가 없어. 내가 진짜로 목표하는 건 바로 피니스테레거든. 서두르고 싶진 않은데…. 복잡하네.”

그럼 복잡한 것은 차치하고, “이제부터는 뭐 할 거니?” 물었더니 우선 숙소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볼 예정이라고 한다. “오늘 밤에 광장에서 퀸 트리뷰트 콘서트가 있대. 난 그곳에 가 보려고” 했더니 “나도 별 일 없으면 그쯤에 있을 것 같아” 하며 이따가 보자고 한다.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혹시 모를 도난사고에 대비하여)몸을 가볍게 하고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갑자기 천둥소리가 울린다. 폭죽소리를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산티아고의 오래된 건물 사이를 수놓은 불꽃을 쳐다보았다. 우리들의 순례의 완성을 축하해주는 것만 같았다.

한밤의 축하공연, We are the Champions!

자정께 도착한 광장에는 지금까지의 어떤 무대보다 거대한 장막이 광장 한 편을 뒤덮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이 커다란 무대가 염려스럽지 않다. 그러나 인산인해를 이루는 군중 가운데 누군가를 찾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지쳐 언니들과 계단에 앉아 공연을 기다리다 “저기, 호르케 아냐?” 하고 가리키는 쪽에서 그를 찾을 수 있었다. 명당자리를 내던지고 후다닥 뛰어 내려가 “얼마나 찾았는데! 못 만날 줄 알았어” 하고 잠시 이산가족 상봉 분위기를 연출했다. 곧 천지를 울리는 음악소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를 쏙 닮은 모습을 하고 나온 보컬은 목소리 역시 쉬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꽤 비슷했다. 귀에 익은 유명한 곡들이 연주되고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신나서 손을 들고 껑충껑충 뛰며 공연을 즐겼다. ‘Bohemian Rhapsody’, ‘I want to break free’에 맞춰 나 역시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소심하게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I was born to love you’가 흐르고, ‘너도 참 신세가 처량하다. 사랑하는 여자친구랑 함께 있으면 딱 맞는 곳인데’, 순간 생각했다. 귀를 찢는 음악소리를 헤치고 옆에 서 있는 호르케를 향해 “너 지금 여자친구 생각하지?” 했더니 “맞아. 방금 전화했어” 그의 옆모습은 짙은 피로감이 역력했다. 그러나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We are the Champions’…, ‘바로 우리를 위한 곡이네?’ 하고 헤벌쭉 웃으며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불렀다. 두 시간을 조금 넘긴 콘서트는 몇 번의 앙코르를 받고는 장막을 내렸다. 얼굴도 모르는 이의 남자친구를 옆에 꿰차고 즐겼던 조금 웃긴 콘서트였다. 내내 서 있느라 조금 피곤했다.

언니들과 둘러서서 “이제 뭐하지?”하고 고심했다. 스페인 식으로 하자면 밤은 이제 시작되었고, 나도 더 놀고 즐기고 싶지만 ‘여기까지’ 라는 알듯 말 듯한 신호가 들려왔다. “진짜 더 놀고 싶은데 아무래도 내일도 있으니까, 오늘은 그만 숙소로 돌아갈게” 했더니 “그래. 나도 이제 깨어있은 지 24시간이 다 되어가고…, 더 이상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으니까”, 그리고 헤어지려는데 문득 내일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너 내일은 어떻게 할 거야? 바로 피니스테레로 갈 거니?” 하고 물었더니, “아, 내일이 있었지…. 우선은 열두 시에 순례자 협회 앞에서 만나자. 그리고 그때 만나서 확실하게 하자” 약속을 정하고 헤어졌다. 공연의 감동을 노닥거리며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 또 아쉬움. 그렇지만 ‘여기까지’ 라고 내게 속삭이던 목소리를 따라가기로 했다. 언니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내 기억이 맞다면 며칠 전 길 위에서 그는 4일 내에 피니스테레 순례를 마치고 마드리드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새하얗게 백짓장이 된 남은 날들, 며칠을 쉬고 다시 걷기 시작해도 상관이 없는데도 쫓기듯 피니스테레 행을 채근하는 것은 남은 3일의 마지막 걸음만큼은 그와 함께 걷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전등이 꺼지기 직전에 쳐다본 시계는 세 시 근처였다.

40여 일간 이어지던 순례의 피로를 채 풀지도 못하고 내일부터는 ‘세상 끝’이라는 피니스테레를 향해 걷는다. 지금부터 아홉 시간 후, 순례자 사무소 앞에서 다시 이어질 새로운, 또 다른 순례를 앞두고 눈을 감았다. 다시, 시작이다.


태그:#산티아고가는길, #카미노데산티아고, #스페인, #도보여행, #성지순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