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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체의 롯지 창문으로 멀리 랑탕 리룽이 바라보인다.
 둔체의 롯지 창문으로 멀리 랑탕 리룽이 바라보인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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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이 찾아온 고소

사람들이 낮게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손목시계는 새벽 5시 30분을 알리고 있었다. 멀리 랑탕 리룽이 바라보이는 롯지(네팔에서 숙소를 일컫는 이름-기자 주) 창문엔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맞아, 오늘 랑탕 히말라야 순례를 시작하는 첫날이지.”

혼자 중얼거리며 침대 주위를 걸어보았다. 어제 가벼운 고소증상을 느껴 약을 먹고 잤기 때문이다. 발바닥은 공중에 붕 떠 걸음의 감촉을 느낄 수가 없었다. 머리는 은근히 어지러웠고, 속은 체한 것처럼 울렁거렸다. 손끝은 물에 오래 담겨 있을 때처럼 주름이 잡히면서 찡하고 저렸다. 풍랑 심한 바다를 건너는 배를 탄 것 같았다.

나를 히말라야로 이끈 심한기(품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 형은 “전형적인 고소증세”라며 “하루 더 쉬었다 가는 것도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고소는 체력과는 아무 상관없는 체질의 문제”라고도 했다.

설마 내게 고소가 찾아올까,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탓에 마음은 더욱 착잡했다. 계획대로라면 해발 2030m인 이곳 둔체를 떠나 오후 4~5시 무렵엔 해발 2210m에 위치한 툴루샤브루에 도착해야 한다.

‘시작도 못해보고 길을 접어야 하나.’
‘내 욕심 때문에 다른 일행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는데….’


혼자 떠난 길이 아니었기에 고민은 컸다.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걸어보고 증상이 심해지면 도중에 내려오기로 했다. 일행들이 배려해준 것이다. 나는 대열 맨 뒤에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히말라야를 걷는 까닭... 내 안의 산을 찾아서

둔체를 출발한지 두 시간이 흘렀을까. 순례 일행들이 모여 일정을 의논하고 있다. 고소증상이 심해진 나는 이 롯지에서 구토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둔체를 출발한지 두 시간이 흘렀을까. 순례 일행들이 모여 일정을 의논하고 있다. 고소증상이 심해진 나는 이 롯지에서 구토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 L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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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50분 둔체를 출발해 두 시간쯤 걸었을까. 고소 증상은 심해지기만 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어지럼증은 심해지고 호흡은 가빠졌다. 구토증상까지 나타났다.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무래도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다.”
“…….”
“고소증상이 왔는데 무리하면 큰 일 난다, 뇌혈관이 터지면 사망이야.”
“…형, 나 조금만 더 걷게 해줘요.”
“…조금이라도 더 이상해지면 바로 말해, 알았지?”

일행을 책임지고 있는 한기형의 얼굴은 염려로 굳어 있었다. 괜한 고집을 피워 형을 곤란하게 한 건 아닐까 스스로 책망도 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걸을 만했고, 또 나를 괴롭히는 고소의 괴로움보다는 걸어야 할 간절한 까닭이 더 깊었다.

자칫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왜 나는 이 길을 이토록 걷고 싶었던 것일까.

남들은 사진으로나 보는 세상 가장 높은 곳을, 난 두 발로 직접 걸었다는 자랑을 하고 싶어서? 해발 몇 천 미터까지 올라갔다는 정복의 허영심을 도시생활의 자신감으로 포장하고 싶어서? 고산 마을, 낯선 사람들로부터 ‘나마스떼’ 인사를 받으며 돈 조금 더 많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나는 히말라야 고봉 등반이 삶의 목표인 전문산악인이 아니다. 해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고봉을 기세 좋게 올라가 깃발을 꽂고 만세를 부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돈 조금 더 많은 나라의 국민을 내세우며 히말라야 고산마을에서 거들먹거리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많은 이들로부터 산악인 이상의 존경을 받고 있는 라인홀트 메스너. 그가 눈사태로 동생을 잃은 낭가파르바트 단독등반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그저 산을 오르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있는 산을 오르려는 것이다. 모든 기술을 배제하고 파트너도 없이 산을 오르려고 생각할수록 나는 환상 속에서 나만의 산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어쩌면 궁극적인 고독의 끝까지 가서 그 고독을 넘어 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 <검은 고독, 흰 고독> 중에서

내 마음 속에 들어있는 산도 저렇게 첩경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내 마음 속에 들어있는 산도 저렇게 첩경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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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내 안의 산에 들어서고 싶었을 뿐이다.

여러 가지 기대에 대한 포기, 그 포기에 대한 짜증, 짜증에 대한 신경질적인 분노, 그 분노에 대한 역겨움, 그런 역겨움을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또다시 용암처럼 분출하는 자기연민, 자기연민 때문에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옹졸함, 그 옹졸함으로 참된 용서를 청하지도 베풀지도 못하는 한심한 마음….

내 마음 속 산은 이토록 사나운 마음으로 능선을 이루고, 협곡을 만들고, 봉우리를 짓고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의 등고선보다 복잡한 감정선의 기복을 따라 내 안의 산은 더욱 험해져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마음 속 사나운 산을 이루고 있는 못된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씩 추려내는 것이 절실했다. 그 조각들이 기적처럼 순간에 없어지진 않겠지만 왜 조각들이 내 안에 기생하고 있었는지 헤아리고 싶었다.

하여 한 발 비켜서서 나를 바라보고 싶었다. 내 마음 속 산이 아닌 다른 산에서 내 안의 산을 건너다보고 싶었다. 그러면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똑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제대로 숨 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똑바로 걸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죽더라도 걷고 싶었다. 내 안의 산을 넘어서는 길이라면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소보다 더한 고통이 찾아와 랑탕 히말라야의 어느 길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앞 사람들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하지만 내 안의 봉오리와는 더욱 가까워졌고, 마음은 수상하리만큼 평온해져 갔다.

랑탕 히말라야 순례를 시작한 날의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하지만 고소증상을 심하게 앓았던 나는 온통 회색빛만을 기억하고 있다.
 랑탕 히말라야 순례를 시작한 날의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하지만 고소증상을 심하게 앓았던 나는 온통 회색빛만을 기억하고 있다.
ⓒ L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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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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