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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은 자본가다."

 

좌파 지식인의 1980년대식 논리가 아니다. 미국의 주류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에 칼럼니스트 로버트 새뮤얼슨(Robert J. Samuelson)이 쓴 글이다. 새뮤얼슨은 '자본주의 내부의 적들' 제하의 칼럼(2008년 1 월23일자)에서 자본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capitalism's most dangerous enemies)을 서슴없이 자본가(capitalists)라고 조준했다.

 

대체 미국의 주류신문이 자본주의 내부의 적을 자본가로 고발한 칼럼을 실은 이유는 뭘까. 생게망게하게도 금융계의 높은 연봉과 보너스 때문이다. 새뮤얼슨은 기업에 입힌 큰 손실로 물러난 메릴린치 전 회장 스탠리 오닐이 퇴직금을 1억6100만 달러(1500억 원) 받은 사실을 보기로 들었다.

 

미국 자본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은 자본가

 

칼럼니스트로서 미국 신문이 부러웠던 까닭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미국 자본주의를 동경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적어도 미국 신문은 자본가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어서다.

 

여기서 한국의 자본가들을, 신문을 톺아볼 일이다. 한국에선 자본가를 자본가라 부르거나 쓰기조차 녹록치 않다.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라 쓰면, 언론계든 학계든 흘겨본다. 수구-보수만이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인이나 학자들, 심지어 네티즌까지 자본가라는 말에는 저항감을 갖는다. 그렇게 쓰는 언론인이나 학자는 언론사나 대학에 자리를 얻기 어렵다. 정년퇴임한 김수행 교수의 후임으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들이 진보적 학자를 선발하기 꺼려하는 현실을 보라.

 

물론, 사치스런 감상에 젖을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정직하게 다음 물음에 답할 때다. 만일 미국 자본주의나 미국 신문의 잣대를 한국의 자본가들에게 들이댄다면 어떻게 될까? 삼성그룹의 이건희나 현대자동차의 정몽구는 지금 어디에 있어야 할까?

 

그렇다. 정답은 감옥이다. 종신형이나 그에 버금가는 중형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 어떤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이 땅에선 한국 자본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이 자본가라는 말을 듣기 어렵다. 자본가를 적이라고 쓰는 언론인은 신문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 자본주의의 내일이다. 퇴직금 많이 받은 기업인에게 '자본주의의 적은 자본가'라는 비판을 주저 없이 날리는 미국 언론이 있기에, 미국 경제가 그나마 굴러가고 있는 게 아닐까?

 

다시 한국에 눈 돌려보자. 온 국가기관을 뇌물로 오염시킨 혐의를 받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푸른 바다를 검은 기름으로 오염시킨 삼성의 자본가를 보라. 지금도 자기 입은커녕 이름으로도 사과 한마디 없다.

 

부패하고 뻔뻔한 재벌을 비호하는 무리들

 

과연 그가 한국 자본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일까? 아니다. 한국 경제의 가장 위험한 적은 바로 그런 자본가를 비호하고 두남두는 언론이다. 그런 자본가를 추앙하며 대학에 삼성학과를 만들자고 부르대는 신문이 발행부수 1위인 게 현실이다.

 

한국 경제의, 한국 자본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은 언론만이 아니다. 그와 어금지금할 만큼 위험한 적이 있다. 누구일까. 바로 '친기업 정부'를 표방하고 나선 '이명박정부'다. 특히 당선자는 언죽번죽 주장했다. 친기업정부라는 말에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단다.

 

그렇다. 미국 주류언론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아예 부끄러움이란 모르는 이들이다. 대한민국에서 자본과 정치권력과 언론은 견고한 삼각동맹을 이루고 있다. 그것을 비판할 사회과학계마저 그 천박한 동맹에 포섭되어 간다. 한국 자본주의가, 한국 민주주의가, 참으로 우려스런 까닭이다. 하여, 명토박아 쓴다.

 

한국 자본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은 '친기업 정부'와 언론이다.  


태그:#친기업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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