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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빈곤문제연구소'에는 택배가 자주 온다. 곱게 말린 씨래기나 각종 야채가 배달되기도 하고, 속옷선물이 오기도 한다. 연구소의 도움을 받은 빈곤층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보내는 작은 선물들이다.

 

현재 연구소에서 상근하고 있는 김희성 상담실장 역시 한때 빈곤층으로 연구소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다. 김 상담실장은 빈곤을 탈출한 후 이곳에서 함께 상담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빈곤문제의 범위는 굉장히 넓었다. 노동자이건, 농민인건 가난한 이들의 문제는 모두 빈곤문제였다. 또한 가난한 이들은 비정규직이고, 노점상이고, 여성이고, 환자였다. 그래서 '한국빈곤문제연구소'는 이 모든 사람을 만나고, 이들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직접 제도개선에 뛰어들고 있다.

 

연구소의 상황은 열악했다. 사무실은 작은 가정집이었고, 상근자는 3명, 연구원은 류정순 소장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빈곤문제연구소'가 빈곤문제에 있어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상담과 현장방문을 통해 빈곤층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류정순 소장은 “제가 토론회에 나가서 전문가들에게 가끔씩 논리가 밀리면, 사례를 이야기합니다. 풍부한 실제사례 앞에서는 전문가들도 어쩔 수 없죠” 라며 웃는다.

 

류정순 소장은 이명박 당선인이 빈곤문제나 복지문제를 인권과 사회권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하며, 새 정부의 복지제도 훼손을 우려했다. 모든 진보진영에게 힘든 5년을 버텨나가기 위해 '한국빈곤문제연구소'는 기본적 체계를 갖추고, 연구 후계자 양성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빈곤 해결은 공동체와 인권, 더 나은 경제성장을 위한 문제

 

- 처음에 어떻게 연구소가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1999년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만들어지고, 2000년에 이것이 시행되었죠. 이 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면 시민단체들의 발의와 주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죠. 당시 64개의 시민단체가 참여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추진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가 구성되어  여론형성부터 국회압박까지 시민단체들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때 저도 거기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함께할 수 있는 시민단체나 복지단체들을 만나고, 실제 빈곤층을 찾아다니며 이 법을 홍보하고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법이 제정되고, 연대회의 활동이 끝났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이 법에 관해 문의를 해왔습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격은 무엇이고, 준비할 서류는 무엇인지, 이만큼 혜택을 받으면 맞게 받은 것인지, 동사무소에서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집으로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식구들이 저에게 화를 내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향린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교회 한쪽에 사무실을 얻어 '한국빈곤상담연구소'로 시작하게 되었죠. 1년 후 '한국빈곤문제연구소'로 명칭을 바꾸고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달랑 전화 한 대로 시작했죠. 그것도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집에서 쫓겨나면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거죠(웃음)."

 

- 빈곤문제’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이 왜 진보의 화두가 되어야 하나요?

"빈곤문제는 공동체의 붕괴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자본주의가 심화되기 전, 공동체가 살아있을 때는 적어도 가족 등의 공동체에서 경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책임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국가가 그것을 책임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 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그대로 사회에서도 소외되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개념이 점점 무색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빈곤문제는 결국 인권의 문제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거 빈곤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거나, 채무를 이행하지 못해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전기세나 수도세를 내지 못해서 이 추운 날 단전과 단수의 상황을 맞아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 헌법에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할 권리’, 즉 시민권으로서의 생존권이 명시되어 있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다 무용지물이죠.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도 이득입니다. 제가 우리나라 신용불량자들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 신용불량자 중 많은 사람들이 학력도 높고, 젊고, 도전정신이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이를 악물고 다시 살아갈 것입니다. 그들이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 그것이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익이죠."

 

재정과 연구인력이 가장 큰 문제

 

- 연구소에서는 주로 어떤 연구를 하시나요?

"사실 우리 연구소에는 연구원이 없어요. 지금 상근하시는 3분은 모두 상담교육 분야의 직원들이고, 저 외에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앙꼬없는 진빵’이죠? (웃음) 그래서 주로 외부 교수님들이나 학자들을 프로젝트 형태로 묶어서 정부의 빈곤해결을 위한 정책과 복지제도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죠. 그 외에 일상적인 연구나 분석, 발표들은 제가 다 하고 있고요. 연구 보고서 하나 내려면 저 혼자 아주 난리굿을 칩니다(웃음). 그래도 매년 전화번호부 두께 정도의 논문집을 꼬박꼬박 내고 있습니다."

 

- 재정이 어려워서 연구원을 둘 수 없는 상황인가요?

"그렇죠. 전에 연구원이 2명 있었어요. 그런데 월급을 줄 수 없으니까 내보낼 수밖에 없죠. 지금 상근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고생이 많습니다. 돈 받고 일하는 일반적인 직장으로 생각하면 하실 수 없는 일이죠."

 

- 재정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계신가요?

"후원회원이 있기는 한데 대부분 저랑 제 남편의 친구들이죠. 신한은행에서 조금 지원해주고 있지만 그것도 아는 분을 통해서 받게 된 거고요. 그 외에는 논문집 판매나 연구프로젝트 진행 등으로 수입을 얻습니다. 제가 집에서 가져다 쓴 돈도 많고요(웃음)."

 

 

- 연구 외에는 어떤 활동이 있나요?

"상담활동과 제도개선운동, 교육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상담의 경우 전화, 인터넷으로도 이루어지고 실제 현장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주로 정부에서 시행하는 복지혜택을 안내하고, 혜택을 받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복지혜택이지만 실제 정부 담당부서를 찾아가고, 공무원을 만나고, 서류를 제출하는 일이 빈곤층에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무원들이 무시하는 일도 많고요. 그 외에도 민간지원이나 마이크로크레딧 등 빈곤층에게 도움이 되는 모든 혜택에 대해 정보를 보유하고,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제도개선운동은 주로 다른 단체들과 연대해서 국회에 청원도 하고, 집회도 하고 그런 일들이죠. 연금개혁연대, 장기요양보험연대, 의료급여개악저지공동행동 등이 있고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 주거단체들과도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되게는 초기에 시작했던 ‘국민기초생홟보장법’이 잘 지켜지도록 끊임없이 감시하는 거죠."

 

교육사업으로는 복지관과 같은 민간 복지단체들의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각종 복지제도를 안내하는 강연을 하고 있다. 80시간짜리 강의로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는데, 1년에 8군데 정도 한다. 현장에서 직접 빈민을 상대하는 사회복지사를 위한 교육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 그 외에 대중을 직접 만나는 자리는 없나요?

"한 달에 한번씩 정기토론회를 개최합니다. 얼마 전에 63차 토론회를 했죠. 매달 한번씩 토론회를 준비하는 게 어려울 것 같지만, 정부가 제대로 못하는 부분이 언제나 있어서 토론거리가 끊이지 않습니다(웃음). 사람들도 꾸준히 오고요."

 

복지는 사후, 시장에서 빈곤층을 생산하지 않는 것이 중요

 

 

-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주로 복지문제에 신경을 쓰시는 것 같은데요.

"빈곤문제의 한 측면을 복지가 담당하고 있죠. 사실 복지는 사후적 측면의 문제입니다. 사전적으로 빈곤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죠. 시장에서 빈곤층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일전에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10만 명으로 확대했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실 그런 자랑을 하기 전에 시장에서 빈곤층 100만 명이 늘어난 걸 생각해야죠. 결국 90만 명의 빈곤층은 방치된 거 아닙니까?

 

다만 지금 당장 절박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만 전에 자살하신 태안 군민의 경우를 보세요. 거창하게 지원 절차와 제도를 운운하기 전에 당장 생계가 막막한 그분들에게 생활비만 지원했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 시장에서 빈곤층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노동문제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맞아요. 노동시장에서 밀려나서 돈 못벌면 그게 바로 빈곤입니다. 그리고 일을 못해서 가난한 사람도 있고,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요. 비정규직이나 노점상 같은 사람들입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화하고 사대보험 혜택을 주어 빈곤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죠. 노점상의 경우도 무조건 불법 영업하지 말라고 몰아대지 말고, 그 사람들이 합법적인 영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지요."

 

- '한국빈곤문제연구소'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실제 빈민층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특히 빈곤 연구는 빈곤 당사자들 속에서 살지 않고는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빈민이 느끼는 문제, 현장에서 점검되는 제도의 문제를 바탕으로 연구와 운동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죠. 상담과 현장 방문을 많이 하는 우리 연구소는 그래서 가장 현실성 높은 대안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제가 바빠서 인터넷 상담만 맡고 있지만,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꼭 현장상담을 나갔습니다. 한 때 서울역 근처의 노숙자 분들을 상대로 오랜기간 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도 벽면에 붙은 화려한 아파트 광고를 봤습니다. 아주 멋진 아파트 앞에서 아름다운 여성이 ‘여기 와서 사세요’라고 하면서 웃고 있는 광고였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속에서 울화와 욕이 치밀더라고요. '그래, 너희 잘난 것들은 잘난 집에서 잘 살아봐라, 나는 이렇게 길바닥에서 노숙하는데…' 한번도 그런 광고를 보면서 거부감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빈민들의 감정에 동화되더라고요."

 

-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재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재정이 어려우면 규모를 줄이면 되죠. 돈이야 모으려면 모을 수도 있으니까요.

 

정작 어려운 문제는 사람을 발굴하는 일임을 요즘 느끼고 있어요. 좋은 활동가와 좋은 연구자를 만나서 이 사업을 확산시키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이제 나이도 많고, 벌써 손주도 봤거든요. 제 연구를 함께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는 후계자를 세워야 할 필요성을 많이 느낍니다. 좋은 운동가, 젊은 운동가를 찾아서 부소장이나 사무총장으로 세워 연구소를 함께 꾸려가고 싶어요."

 

이명박 시대, 복지운동은 투쟁태세로

 

- 이명박 시대에 빈곤문제는 어떻게 되리라 전망하십니까?

"이제까지 빈곤층을 위한 복지운동은 공세적인 편이었습니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많이 요구했고, 실현도 되었죠. 그런데 이제 수세에 몰릴 것으로 봅니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 있는 복지제도도 많이 훼손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빈곤단체나 복지단체들은 극단적인 투쟁으로까지 나가야 하지 않을까? 연대를 통해 투쟁태세로 가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시대에 가장 큰 이슈가 될 문제는 ‘비정규직’이라고 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비정규직은 노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빈곤의 문제이기도 하죠."

 

- 왜 이명박 정부가 복지제도를 훼손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빈곤문제, 복지문제는 결국 인권의 문제입니다. 인권 중에서도 사회권의 문제이죠. 그런데 이명박 당선인은 인권과 사회권, 생존권에 대한 철학이 없습니다. 그런 개념이 없는 상황에서 비효율적이거나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없앨 수 있는 것이죠.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배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일단 이명박 정부 5년을 우리 연구소 뿐 아니라 전체 진보진영이 잘 버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살아남아야죠. 자칫 잘못하면 일본처럼 진보의 싹이 마를 수도 있어요.

 

우리 연구소의 경우 기본적인 체제를 갖추는 것부터 하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 연구소는 사단법인이 아니어서 임의단체에 불과합니다. 제가 없으면 사라질 수도 있는 거죠. 올해는 운영위원들과 논의를 통해서 사단법인으로의 체계를 갖추고, 그것을 통해 재정확대 방안도 간구할 생각입니다. 그래야 연구원들도 확충할 수 있겠죠. 장기적 운영을 할 수 있는 기본적 준비를 갖추어갈 생각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국빈곤문제연구소(소장 류정순) 
서울시 강남구 개포2동 169-1 삼원주택 102호 홈페이지 www.poverty21.com.ne.kr 
전화 02-577-6809 / 팩스 02-577-6011 

이 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대안정책 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이수연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


태그:#진보연구소,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 #빈민,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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