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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또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상대의 '용서'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더 상하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겨레>와 삼성이 사과했다. 하지만 두 건의 '사과'가 너무 대조적이다.

 

<한겨레>가 24일 지면을 통해 사과했다. 삼성과 독자들에게 한 사과다. 1월 22일 '왜냐면'(33면)에 실린 삼성을 소재로 한 '그림'에 대해 사과했다. 외부 작가가 그린 그림이었다. 삼성 빌딩 오른쪽 위 모서리에 식칼이 꽂혀 있는 그림이다. 거대한 균열이 생겨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다.

 

대조적인 <한겨레>와 <삼성>의 사과

 

<한겨레>는 2면에 실은 '사과합니다'를 통해 "1월 22일치 33면에 삼성 건물을 칼로 찌르는, 표현이 지나친 그림이 실렸다"며 "언론의 정도를 걷고자 노력해온 본지의 제작 방침과 어울리지 않는 그 그림으로 마음이 상하셨거나 불편하셨을 독자와 삼성 가족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했다.

 

<한겨레>는 "'왜냐면' 지면이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공간으로… 작가의 그림을 실어왔지만 제작과정에서 꼼꼼히 살피지 못해 정제되지 못한 이미지가 그대로 실렸다"고 밝혔다.

 

그림을 그렸던 외부 작가의 말도 전했다. 프리랜서 작가 하수정씨는 "근간에 가장 중요한 시사적인 사안을 좀 더 날카롭게 수사해야 한다는 의미를 이미지화한 것"이었지만, "의도와 달리 표현의 수위가 독자들에게 부정적 인상을 줘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된 점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전해 왔다고 한다.

 

<한겨레>는 요즘 한창 삼성과 '전쟁'중이다. <한겨레>가 시작한 전쟁이 아니다. 삼성이 선포한 전쟁이다. 삼성 비자금 의혹을 집중적으로 보도한 <한겨레>에 대해 삼성은 지난해 11월 초 이후 일체의 광고를 중단했다. 얼마 전까지 <경향신문>에도 광고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22일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삼성중공업의 '사과광고'를 실으면서는 <경향신문>까지 광고를 게재했지만, <한겨레>에는 광고를 싣지 않았다. 노골적인 광고 압박이다.

 

삼성, <한겨레>에 노골적으로 광고 압박

 

마침 문제의 '식칼 꽂힌 삼성빌딩' 그림이 실린 것도 22일자 신문이다. 사과문을 실은 것은 그렇다면 <한겨레>가 삼성의 광고 압박에 무릎을 꿇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한겨레>는 24일에도 '삼성'을 집중 보도했다. 에버랜드 창고에서 발견되지 않은 비자금으로 구입한 의혹이 일고 있는 <행복한 눈물> 등의 행방에 관한 기사를 비롯해 삼성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삼성의 책임을 묻는 태안 주민들의 상경 시위 소식, 정부의 삼성중공업 피해 보상 촉구 기사를 크게 보도했다. 다른 신문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기사들이다.

 

<한겨레>의 사과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언론으로서 당연히 보도해야 할 의혹을 보도한 것에 대해 광고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삼성에 대한 <한겨레> 내부의 감정이나 정서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할 일에 대해서는 사과한 자세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의 '사과'는 대조적이다. 삼성은 22일 <한겨레>를 제외한 종합 일간지에 실은 사과광고(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에서 국민과 지역주민들에게 사과했다. 지역 주민들이 당한 고통과 피해, 그리고 생태계 파괴라는 재앙 앞에서는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한겨레>의 사과에 주목하는 이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직접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서해 북서방 해상에서 저희 해상 크레인이 항해 도중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충돌하여 원유가 유출되면서 서해 연안이 크게 오염"된 데 사과한다고만 했다. 사고 유발의 직접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도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설 경우 예상되는 법적·민사적 책임 문제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삼성의 이런 태도야말로 서해안 피해 주민들을 자극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너무 뒤늦은 사과인데다가, 여전히 자신들의 책임 소재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삼성 본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가진 태안군 주민들이 "사람을 죽여 놓고 47일 만에 미안하다고 말만 하고 보상도 안하는 것은 사과도 아니다"라며 비난한 것도 바로 이런 삼성측 태도 때문일 것이다.

 

삼성은 이런 '사과광고'마저 <한겨레>에는 싣지 않았다. 사과광고 내용의 진정성도 진정성이지만, 그 광고를 낸 의도 또한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외국에서 만약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기업의 비리나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보복적으로 광고를 주지 않으면서도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가능할까? 삼성의 이런 보복적 광고 압박 행위가 외국에 널리 알려진다면 삼성의 기업 이미지는 또 어떻게 될 것인가?

 

삼성이 <한겨레>의 '사과'에서 배워야 할 점일 듯싶다. 언론이나 기업이나 지켜야 할 사회적 덕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태그:#한겨레, #삼성, #광고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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