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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봉사대' 회장직을 맡은 홍순분(70·여)씨는 봉사활동도 열심이지만 자전거 사랑도 유별나다. 그는 자전거를 안방에 모시고(?) 산다. 홍씨 집 안방 한편에는 선수들이 탈법한 날렵한 모양의 ’싸이클‘ 이 모셔져 있다.

 

자전거에 쏟는 각별한 애정은 홍씨 남편 김형필(83)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20년 전인 지난 87년도에 자전거를 타고 경기도 군포에서 부산까지 여행을 다녀왔을 정도로 자전거를 좋아한다. 지난 17일 오후 2시에 한무리 나눔의 집(자선단체, 경기도 군포시)에서 홍씨 부부를 만나 인터뷰를 한 후 부근에 있는 집을 방문했다.

 

"실버 봉사대 회장님인데요, 부부가 함께 요즘도 자전거 타고 다녀요."

 

이 말을 듣고 노부부를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경기도 군포 한무리 나눔의 집에서 일하는 후배에게 들은 말이다.

 

한겨울에 노인들이 자전거 타고 다닌다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굉장한 자전거 마니아 일 것이라 생각했다. 


‘실버 봉사대’는 한무리 나눔의 집 봉사 프로그램 중 한 가지다. 노인이 노인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해서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는 노인이 거동이 불편한 무의탁 노인을 찾아가 말벗도 되어주고 설거지 등 집안일도 거들어 주는 봉사활동이다.

 

부인 홍씨가 자전거를 배우게 된 것은 그의 아들 때문이다. 소아마비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셋째 아들 통학시키고자 자전거 핸들을 잡은 것이 인연이 되었다. 셋째 아들 나이는 현재 42세다. 홍씨가 자전거 핸들을 처음 잡은 것은 그의 나이 36세 때 일이다. 홍씨는 그때 일을 이렇게 회상한다.

 

“졸업할 때까지 자전거로 통학시켰어요. 힘은 들었지만 덕분에 상을 받기도 했어요. 우리 아이 5학년 때 어버이날에 학교에서 ‘어버이상’을 주더군요. 그렇게 해서 배운 자전거가 평생 취미가 되었지요.”

 

실버 봉사대 회장, 아들 통학시키기 위해 자전거 타기 시작

 

홍씨 남편 김형필씨는 젊은 시절 짐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장사하러 다니다가 자전거 마니아가 됐다. 전남 담양이 고향인 김씨는 16세에 혈혈단신 서울로 상경해서 술과 채소 배달 등을 했다.

 

“먹고 살기 위해 짐자전거를 탔어요. 서울 남대문에서 술 배달했고, 6·25 때는 종로 4가에서 실을 배달하기도 했어요. 그 후에는 이곳 군포로 내려와서 야채 장사를 했어요. 야채를 자전거에 싣고 다니면서 이곳저곳 다니며 팔았어요.”

 

자전거 타기가 생활에서 취미로 바뀐 것은 마흔다섯부터다. 그때부터 자전거 행상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했다. 김씨 자전거 이력은 화려하다. 취미로만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김씨 집 안방에는 그동안 자전거 대회에 나가서 타온 상장과 트로피 기념 메달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지난 87년 9월, 미사리에서 열린 철인 3종 경기에서 김씨는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 그 당시 이미 예순을 훌쩍 넘겼다는 것을 감안하면 경이적인 기록이다.

 

"64년도에는 남면(경기도 군포 옛 지명)에서 짐 자전거 달리기 대회 나가서 3등 했고, 87년 9월에는 미사리에서 열린 철인 3종 경기 나가서 3등 했어요. 그 당시 미사리 대회에는 트위스트 김인가 하는 연예인도 참가 했었어요."

 

예순다섯 살이던 지난 89년도에는 일본에서 열리는 철인 3종경기에 출전할 뻔했다고 한다. 하지만 연습에 몰두한 나머지 과로로 쓰러져서 출전을 포기해야 했다. 김씨는 그것이 지금도 못내 아쉬운 눈치다. 얼굴에 아쉬운 빛이 역력했다.

 

안양싸이클협회 회장직을 역임한 것도 주요한 이력이다. 김씨는 20년 전 안양 싸이클인들을 대표하는 회장이었다. 그 당시 회원들과 함께 군포에서 출발해서 부산을 거쳐 휴전선 부근 임진각에 이르는 자전거 대장정을 했다. 자전거 대장정을 마치고 받은 상패는 지금도 집에 보관되어 있다.

 

예순 넘어 철인 3종 경기 출전 3위 입상

 

“지금은 20년 전에 비해서 자전거 타기가 너무 힘들어요. 차가 많아져서 그렇지요. 그래서 요즘은 도로에 못 나가고 안양천 변에서만 자전거 타요. 도로에 나가면 차들 때문에 위험 합니다. 도로에 자전거 타고 나가려면 여러 명이 한꺼번에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차들이 조금 양보해 주거든요. 20년 전에는 도로는 울퉁불퉁했어도 차가 적어서 자전거 타기 좋았어요.”

 

요즘 자전거 타는 데 불편한 점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역시 도로 문제였다. 자전거와 함께 평생을 살아온 팔순 라이더도 역시 도로 문제가 불편했던 것이다. 도심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겪는 불편함이다.

 

김씨는 요즘도 부인과 함께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있다. 5km에서 10km 정도를 자전거로 달리기도 하고 컨디션이 좋은 날은 군포에서 한강 둔치까지 왕복하기도 한다.

 

자전거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부부 인생을 보았다. 인생역정을 자전거와 함께 헤쳐왔기에 이들 부부에게는 자전거가 곧 인생이었던 것이다. 남편 김씨에게는 자전거가 곧 생활이었고 취미였으며 인생의 동반자였다.

 

부인 홍씨도 마찬가지다. 소아마비 걸린 아들 학교 보내기 위해서 잡게 된 핸들을 잡게 되었고, 그 핸들을 일흔이 될 때까지 놓지 않았다. 비록 남편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홍씨도 크고 작은 싸이클 대회에 나가서 입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팔순 라이더 김형필씨와 부인 홍순분씨를 통해서 본 자전거 인생은 역동적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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