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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을 비롯해 몇몇 지은이의 책은 “돈 주고 사서 봐야 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내게 돈 내고 읽고 싶은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 <88만원 세대>로 잘 알려진 우석훈이다.

 

나는 아직 <88만원 세대>를 읽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시사IN>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친절하게 책 내용을 알려줘서 딱히 시간을 내어 차분히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인이나 소설가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나, 어떤 분야의 평론가 혹은 ‘논객’이라는 애칭이 부자유스럽지 않은 인사들이나 말을 잘 버무리는 줄 알았다. 전공을 경제학이라고 밝힌 우석훈의 글을 읽기 전에는 말이다.

 

글쓰기 훈련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우석훈의 칼럼 모음집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또 다른 박노자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책날개에서 프랑스 파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인생의 4분의 1을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지냈다고 소개하는데, 내내 우리말로 사유하고 소통해 온 사람들을 기죽게 하는 우리말 솜씨가 책 내용만큼이나 사람을 반하게 한다.

 

칼럼 모음집은 어느 쪽을 펴서 읽든 상관이 없어, 아이를 돌보느라 장시간 책에 몰입하기 어려운 전업주부에게 참 반가운 책이다.

 

이 책에서 내가 제일 먼저 펼쳐든 쪽은 ‘2부 인물열전(人物列傳) 동시대의 각양각색 스펙트럼’이다. 박노자, 진중권, 지율, 강금실, 오세훈, 김지하로 이어지는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에 대해 적나라하게 서술하는 2부는 연방 고개를 끄덕이게 하다가도, 눈감아 버리고 싶은 질문들을 곳곳에서 던진다.

 

게다가 술자리에서 호기 좋게 떠들거나, 익명의 인터넷 댓글에서나 쓸 수 있을 직접적이고 날카로운 표현들을 거침없이 날린다. ‘우석훈’이라는 실명을 책장 맨 앞에 떡하니 달고서 말이다.

 

거론된 인물 중에 지은이와 비슷한 평가를 하고 있던 인물이 네 명이나 된다. 박노자, 진중권, 이상은, 그리고 김지하. 특히 이상은과 김지하에 대한 평가가 기억에 남는다.

 

… 그러나 문제는 국민들로부터 생겨났다. 그들은 박정희를 회상하며 규모를 사랑하는 메갈로마니아가 되었고, 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속도를 숭배하는 속도 중독에 걸렸다. 비정규직이나 그 이하의 국민들과는 상관없는, 이미 삶의 안정권에 들어간 일부 국민들은 규모와 속도를 동시에 추구하는 공룡들이 되었다. 아파트와 자동차도 커야 하고, 키도 커야 하고, 통장 예금액도 커야 한다. 그리고 빨라야 한다. 더욱 빠르고 더욱 커지는 것이 ‘생존의 법칙’이 된 이 나라에서 양극화는 작고 느리게 된 도태된 사람들과, 크고 빠르게 된 ‘성공한 인생’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속도 중독자들이 생각할 땐 느리게 살다보면 망하거나 도태될 것 같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다. 진짜로 성공하는 학문, 행복한 자영업, 평온한 가정, 마음의 평화는 모두 느린 인생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지혜’의 속성이다. 취리히에는 요즘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월급은 줄더라도 그들은 행복해 보인다. 억울한 것은 일주일에 이틀 노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학문이나 기술, 예술에서 절대로 스위스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국민소득도 말이다. 느리고 작은 것의 시대가 오는데, 우리나라 국민은 100층짜리 건물로 승부하던 1세기 전 메갈로마니아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국민들은 과속하지만, 국가는 ‘공회전’하는 것이 현 상황이다. (이 책 171-172쪽 일부)

 

이 대목은 서해대교 참사와 우리나라 사람들의 속도, 규모에 대한 집착에 대해 쓴 ‘오늘도 액셀을 밟고 있는가’의 일부이다. 생각 같아서는 전문을 다 옮기고 싶지만, 스포일러 짓도 적당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여기서 멈춘다.

 

한국 경제, 중남미형 경제로의 전환 신호

 

30대 초반에서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내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읽으라고 강요하고 싶은 부분은 ‘4부, 세상단평, 21세기의 대한민국 스케치’이다.

 

그는 우리나라 경제가 중남미형 구조와 비슷하게 될 것이라 우려한다. ‘강자 아니면 다 죽었다’의 사회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는 이미 중남미 국가의 전형을 따르기 시작했고, 40~50대 고소득층 남성 외에는 살아가기에 다 불편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여성, 20대, 장애인, 농민, 자영업자, 비정규직, 다 희망 없는 사회가 2007년 한국 사회이므로 중남미형 경제로의 전환 신호라고 본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정치, 정책, 경제, 환경 등 거대담론을 주로 다루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말하기 때문에 땅 위에 발을 굳건히 딛고 쓴 느낌이다. 게다가 ‘껍데기에 미쳐버린 공화국이여’ 같은 글에서는 카이스트의 도서구입비와 과천시의 도서구입비를 비교하며, 도서관 외관 키우기에만 여념이 없는 한국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를 날을 세워 지적한다.

 

또한,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정보센터’로 개명하여 도서구입비를 줄이고 건물 리노베이션에만 열을 올리는 파렴치한 구립 도서관들의 작태를 비판한다.

 

우석훈은 스위스와 우리나라가 산지가 70%이고, 자원이 없고,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고, 가진 것이라곤 오로지 사람뿐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나라라고 말한다. 스위스의 다당제 정치제도가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호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식 양당제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정책이나 외교 문제에 대해 국민투표라는 기막힌 카드를 한 장 더 가진 나라여서 내심 부러운 모양이다.

 

스위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는 나는 이 책을 통해 스위스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됐다. 그들의 경제지표나 뛰어난 외교, 깨끗한 환경은 물론 찬반 투표로 이라크 파병을 원천봉쇄한 국민투표마저도 부럽다.

 

한미 FTA와 같은 중대 사안을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진행하는 이 나라, 운하 건설로 경제를 일으키겠노라고 호언장담하는 ‘노가다 경제’ 대통령을 뽑은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스위스 같은 대안 모델이 있다는데 어떻게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나 경제성 검토 없는 이명박 당선인의 경부운하를 주제로 몇 주 전 목요일 밤, 100분이나 토론을 하고도 답을 못 내려, 시청자들로부터 아예 ‘끝장토론’을 하자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그날 늦은 밤까지 말도 뭣도 아닌 토론 내용을 지켜보면서 짜증과 한숨이 번갈아났는데, 우석훈의 이 책을 나의 좋은 벗들뿐 아니라 “5년간 우리나라를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대통령으로 일하게 될 이명박 당선인에게도 권하고 싶다.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명랑'의 코드로 읽은 한국 사회 스케치

우석훈 지음, 생각의나무(2007)


태그:#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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