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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빈 눈 밭에 활개치고 누운 유빈이
유빈눈 밭에 활개치고 누운 유빈이 ⓒ 문인숙

 

유빈이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가 눈에 띄여 빌려왔습니다. 그 책이 어린이 서가에 꽂혀있는 것도 기뻤고 오래 전에 읽었던 그 책을 다시 만난 것도 기뻤습니다.

 

잠시 신선한 공기를 마쉬며 도서관 뜰 나무 의자에 앉아 앞 부분만 조금 본다는 것이 반은 넘게 읽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기분은 맛난 음식 먹을 때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미륵을 그의 모친이 38세에 낳았다는 것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되어 감회가 더욱 새롭습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남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어미가 되어 딸 유빈이에게 늘 가슴 한 편으로 미안했던 마음이 이상스레 느긋해 지기도 했습니다.

 

미륵이 사촌 수암과 더불어 온갖 개구쟁이 짓을 다하며 자라는 모습에 우리 유빈이의 얼굴이 겹쳐지기도 하고, 해가 지면 사랑채에 내려와 남편의 잠자리를 정성껏 봐 드리고,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 집안 대소사를 소상히 전한 뒤 다시 안채로 올라가시는 현숙한 그 분 어머니 모습에서 현숙하고는 전혀 거리가 먼 이 못난 인숙이 모습이 겹쳐지기도 했습니다.

 

미륵의 아버님이 늦게 본 외동아들 미륵을 데리고 깊은 산 속 계곡으로 물맏이를 하러 간 모습에서 어디든 딸 유빈이를 데리고 다니길 좋아하는 남편 얼굴이 겹쳐지고, 장엄한 산 계곡 그곳에서 쓰러진 후 깊은 병을 얻어 결국 돌아가시는 대목에서는 오래오래 간절히 내 남편의 건강을 기원하게 되고...

 

단발머리 소녀 적 읽었던 그 책을 결혼을 하고 난 지금 읽는 기분이 이렇게 변하다니 새삼 인생의 굴레라는 걸 곱씹게 되었습니다. 어떤 삶을 사는가에 따라 같은 책을 읽는 느낌도 달라지는가 봅니다.

 

책 마지막 장에 이르면 미륵은 삼일운동에 가담하고 쫓기는 몸으로 무심히 흘러가는 압록강 앞에 서게 됩니다. 노년에 들어 선 그의 어머니는 그 먼 압록강까지 따라 나오셔서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작별을 고합니다.

 

너는 겁쟁이가 아니야
 나는 너를 믿는다
 용기를 내거라
 너라면 국경을 쉽게 넘고 유럽에 도착할 수 있을게다

 내 걱정은 말아라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세월은 빨리 가느니라
 비록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는 날이 있더라도
 너무 서러워 말아라.

 너는 나에게 많은 기쁨을 주었다.
 이제 네 길을 가거라!

 

한마디 한마디 너무나도 비장하고 너무나도 아름다워 읽고 또 읽었습니다. 끝까지 그의 어머님이 눈물을 흘리셨다는 대목은 없습니다. 가슴이 찢기듯 미어지는 슬픈 어머님 마음은 한 문장 한 문장 뚝뚝 피눈물이 흘러내리듯 느껴지건만.

 

책을 덮으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회에 젖었습니다.

 

어머니란 이러해야 비로소 어머니라 불리울 수 있는구나. 애간장이 녹아내리 듯 견딜 수 없는 슬픔이 닥쳐와도 의연히 견디어야만 하는 것이 어미로구나.

 

험한 삭풍이 몰아치는 세상으로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할 때,  '나는 너를 믿는다' 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자라야 비로소 어미라 불리울 수 있는구나. 자식을 그리 키워야 온전히 잘 키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구나.

 

그리고 자식이란 또 얼마나 많은 기쁨을 주는 존재인지. 그 보물을 품에 안겨준 하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그저 바라보며 기쁨을 얻는 것 이상 더 바랄 것이 무어란 말이던가.

 

한 권의 책이 또 한 번 내 삶을 깊이 깊이 눈물겹게 들여다 보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앞을 향해 전심전력을 다 해 달려가도록 다시 한 번 채찍질 해주었습니다. 


#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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