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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4일. 노을이 아름다운 황새울 들녘은 ‘여명의 황새울’ 이라는 잔혹한 작전명과 함께 군인과 경찰의 발에 무참히 짓밟혔다. 대추 초등학교를 지키기 위해 3일 밤부터 모여든 2000여 명의 사람들은 주민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그러나 1만2000명의 경찰과 군대는 결국 누구도 대신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던 마을 철거를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으로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500여 명이 연행되고 12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16명에게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날 이후 1년 8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주민들과 평택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싸웠지만 결국 주민들은 작년 3월, 마을을 떠났다. 11월 13일에는 그곳에 한 때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울 만큼 말끔히 깎인 대추리 터 한복판에서 미군기지 건설 기공식이 열렸다.

 

주민들은 도두리 황새울 들녘 앞에서 규탄집회를 하며 애드벌룬이 떠 있고 폭죽이 터지는 기공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참담한 주민들의 심정과는 달리 그날의 끔찍했던 광경은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잊혀져갔다. 하지만 아직 평택을 지키려는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대나무 소지 여부만을 고려한 재판

 

지난 1월 7일 수원지방법원에서는 당시 영장을 발부받은 16명 중 일부의 재판이 있었다. 그 날 대나무를 들었다는 이유로 영장을 발부받은 이들에게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이라는 거창한 죄목이 씌워졌다.

 

검찰은 당시 부상을 당한 의경 몇 명의 피해상황 진술을 증거로 제출했고, 재판의 초점은 오로지 그들이 대나무를 들었느냐, 들지 않았느냐 하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재판에 참석한 당사자 몇 명이 대나무를 들고 있는 사진 역시 검찰 측 증거로 제시되었다.


평택 관련 연행자에 대한 재판에서 왜 그날 물리적 충돌이 있었는지, 왜 이들이 평택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했는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이 그날 평택에서 대나무를 들었고, 진압 과정에서 다친 전의경이 존재하고, 따라서 이들 모두에게 치상죄가 적용된다는 것이 재판의 논리의 전부였다. 이러한 상황에 부당함을 느낀 사람들 중 일부는 따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여 ‘제대로’ 재판정에 나설 것을 결정했다.

 

"미군기지 이전의 본질은 전략적 유연성"

 

오후 2시 시작된 재판에 들어가기에 앞서 재판장에서 정당함을 주장하기로 결의한 학생 6명과 이들을 지지하는 학생들, 어르신들이 모여 법원 앞에서 간단한 집회를 했다. 그리고 이후 참석한 재판에서 이들은 시종일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판사 앞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변론을 이어갔다.


ㄱ 학생 = “5월 3일 밤에 주한미군 기지 이전을 막겠다는 생각으로 평택에 갔다. 용산에서 평택으로 이주할 주한미군은 그 수가 줄어들지만 기동력이나 화력은 훨씬 높아진다. 이는 주한미군이 전시에 더욱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여 개입하기 위함이다.”

판사 = “그럼 대체 대안이 무엇이냐? 주한미군이 지금처럼 용산에 계속 주둔하라는 거냐? 결국 너희가 원하는 것은 주한미군 철군이 아니냐?”

ㄱ 학생 = “그렇다. 우리는 주한미군 철군을 원한다. 또한 당시 상황의 모든 책임을 시위대와 주민만 지게 되는 현재의 재판 역시 부당하다. 대나무를 들었느냐, 들지 않았느냐의 여부에만 초점을 맞춘 이 재판은 그 책임을 해당지역의 주민들과 당시 대추리에 있던 국민들에게 돌리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양심과 정의를 위해서 5월 4일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ㄴ 학생 = “전략적 유연성에는 ‘동북아 분쟁’이라는 단어가 명시되어 있다. 평택 기지 확장이 주한미군 재배치 전략에 따르고 평택 기지에서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에서 합의된 대로 수행한다면 그 분쟁과 견제의 대상은 중국이라고 생각한다. 주한미군 재배치 전략에 따라 서해안에 형성되고 있는 MD라인이 이를 이미 입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행히 지금은 북미 간에 평화의 분위기가 오는 것 같지만, 미군의 재배치는 지금껏 미국이 골칫거리로 여기는 우리의 이북 동포와의 전쟁에도 용이하다. 용산에서 미군이 빠져나가 평택으로 가는 것이 미군에게 있어 이북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전략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평화를 위한 935일간의 촛불에 청년의 분노를 보태다

 

학생들은 또한 이미 과거에 2번이나 강제 이주를 당하며 짠물이 들어오는 땅을 기름진 옥토로 가꾼 마을 주민들이 또 다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야 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ㄷ 학생= “마을 주민 분들은 935일 간 촛불을 드셨다. 70이 넘으신 어르신들이 날마다 모여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목소리를 외치셨다. 나는 찾아갈 때마다 고맙다고 따뜻하게 맞이하시는 어르신들을 잊을 수가 없다. 왜 안락한 노후를 보내셔야 할 어르신들이 가장 앞에서 싸우셔야 하는가? 평화를 위한 935일의 진정성이 왜 한낱 이기주의로 매도되어야 하는가? 도대체 한미동맹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어르신들의 한평생과 한반도 평화를 기지 확장과 맞바꿔야 한단 말인가? 왜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 행정대집행이라는 합법적인 절차로 ‘공무’가 되어야 하는가?” 

 

이날 재판에서 학생들이 원한 것은 단 한가지였다. 판결 과정에서 그날 평택에서 한 행동의 ‘동기’ 를 고려하는 것, 그것뿐이었다. 비록 혼잡한 상황 속에서 제대로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했지만, 왜 대나무를 들어가면서까지 그날 대추 초등학교를 지키려고 했는지, 무엇을 반대하기에 부상과 연행을 무릅쓰고 전날부터 대추리에 모여들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는지 단 한번만이라도 판사가 고려하는 것, 이것이 그들이 원하는 전부였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고작 6명이 법정에서 당당히 정당성을 이야기한들 무엇이 바뀔 수 있겠느냐고. 이미 주민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이주했고, 노을이 아름다운 황새울 들녘에는 미군 기지를 한창 세우고 있고, 사람들은 서서히 그날의 악몽을 잊어가고 있는데 6명의 학생이 법정에서 무얼 할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싸움은 더욱 가치가 있다. 모두가 평택을 잊었다고 해서 아직 평택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미국은 한반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서러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당한 그날의 시위대에 실정법을 들이대며 반성을 강요하고 처벌을 강행하는 법정과 노무현 정부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우는 것이 평택 싸움을 계속하는 길이고, 평택을 잊지 않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청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pilhwa.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평택#대추리#영장#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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