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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자주 하는 데다가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사는 내가 나이 마흔 중반에 배가 좀 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배 나온 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어가며 큰일 난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복부비만에 대한 폐해를 설명하면서 잔뜩 겁을 주는 친구 때문에 기어이 마음먹었다. ‘나도 운동이라는 걸 해보자!’

 

그런데 친구가 권하는 것은 경보였다. 동네에 학교가 있으니 운동장에서 빨리 걷기를 하라는 거였다. 돈 들 일도 없고 특별히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며, 그리 많은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닌, 대단히 서민적이고 간단한 운동이라는 거였다. 친구에게 그러마 하고 대답했지만 속으론 생각이 달랐다. ‘그까짓 걷기 가지고 어느 세월에 뱃살을 빼나. 적어도 뜀박질은 해야지.’

 

연 전에 동네 헬스클럽에서 3개월을 등록하면 왕창 세일을 한다는 현수막의 꼬임에 넘어가 아무도 몰래 등록했다가 작심삼일로 끝난 적이 있었다. 미리부터 혹시 그렇게 될지 몰라 가족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조깅하기로 결심하면서는 아내에게도 확실하게 선언을 해 놓았다. 그래야만 자신을 다잡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혹시 너무 피로에 찌들어 새벽에 일어날 수 없는 날은 밤 시간에 대체하기로 자신과 타협까지 해놓았다.

 

목표치를 더 높게 잡을까?

 

다음날 새벽부터 당장 실행에 들어갔다. 생각 같아서는 한 바퀴 200m 운동장을 스무 바퀴는 돌 것 같았지만 웬걸. 세 바퀴째 숨이 차서 걷다가 다시 일곱 바퀴째 또 걸어야 했다. 그러고도 결국 열 바퀴에서는 더 이상 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달랬다.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지는 말자.’

 

한 3일 뛰니 그나마 중간 한 바퀴 정도만 조금 느릿느릿 뛰면 열 바퀴를 채울 수 있었다. 폐가 갈수록 강해지는 것을 기뻐했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열 바퀴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대로 나가면 열흘 안엔 목표치 스무 바퀴를 돌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내 목표치를 삼십 바퀴 정도로 수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까지 될 정도였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처음엔 그토록 어려웠지만 이를 악물고 일어나 조깅을 시작한 지 어언 3일이 지나고 또 이틀이 더 지나자 나는 작심삼일의 공포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정말이지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뛸 작정을 했다. 그러고 나니 내 배가 벌써 쑥 들어간 것 같은 착각마저 들면서 당장 저울에 체중을 달아보고 싶은 유혹마저 들었다.

 

눈이 쏟아지는 날도 나가서 뛰었을 정도니 이젠 조금 추워졌다고 해서 운동장에 나가지 않을 내가 아니었다. 아내도 그러는 나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엿새째 날도 운동장에 나갔는데, 조금 춥긴 했지만 너무도 상쾌한 날이었다. 몸도 가벼워서 그날은 평소보다 대여섯 바퀴 정도는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밀려왔다. 잠깐 준비 체조를 하는 동안에도 뛰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였다.

 

원래 사람 몸이 그렇게 약합니까?

 

기어이 나는 심호흡을 한 다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마침 일요일이었던 그날 운동장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걷기 하는 노인들, 뛰고 있는 젊은이, 운동장에서 축구공으로 드리블 연습하는 못 보던 초등학생까지 있었다. 그 많은 사람을 헤쳐 가며 여유 있게 달리면서도 내 머릿속은 오늘 목표치를 열다섯 바퀴로 할까 스무 바퀴로 할까 망설였다. 여덟 바퀴를 지났건만 아직도 숨이 차지 않는 것을 느끼며 막 스무 바퀴로 결정하고 더욱 날렵하게 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억!’ 소리가 날 정도로 오른쪽 무릎에 강한 통증이 왔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할 정도였다. 걸음을 멈추고 다리를 주무른 다음 그래도 욕심이 치밀어 올라 다시 뛰려고 하니 무릎에 더욱 큰 통증이 밀려왔다. 하늘이 노랗게 탈색되는 느낌이었다. ‘근육이 놀랐나?’ 어쩔 수 없이 그날 더 이상의 조깅을 단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마치 꾀병을 내는 듯한 근육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다리를 절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 통증이 그다지 심각한 것인 줄을 몰랐다.

 

오후까지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고서야 결국 인대가 늘어났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니, 그까짓 조깅 좀 했다고 인대가 늘어날 정도로 사람 몸이 약합니까?”


앞으로 한동안 조깅을 하지 못하게 된 모든 원인이 마치 의사에게 있다는 듯 항의했다.


“사람 몸이 약한 게 아니라 환자님 몸이 약한 거죠. 그러게 운동을 하더라도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 겁니다. 몸에 맞게 하셨어야죠.”

 

그러게 운동도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의사는 나를 동정할 수 없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 모처럼 운동을 해보자는 어려운 결심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순간이었다. 거기에 남은 것은 무릎의 심한 고통뿐이었다. 옛말에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과유불급 過猶不及)고 함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진대, 그제야 친구가 처음부터 조깅이 아닌 경보를 권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무릎이 낫게 되면 다시 운동을 계속하게 될까 불안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처음부터 무식하게 대들었던 부끄러움에 아내 앞에서도 얼굴을 못들 지경이었다. 다시 운동을 하게 되면 좀 더 공부를 한 다음 시작할 일이다. 운동을 하더라도 지혜롭게 해야 한다는 것을 비싸게 배운 순간이었다.


태그:#과도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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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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