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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의 e-지식채널 에서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이라는 주제로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다. 수학문제 2개가 틀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모습을 사진과 자막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방학에도 쉬지 못하고 학원에서 공부하고 귀가하는 초등학생들
 방학에도 쉬지 못하고 학원에서 공부하고 귀가하는 초등학생들
ⓒ 최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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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장을 구하고 편안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라는 부모님의 생각을 따라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각종 학원들을 바쁘게 오간다. 스트레스와 피곤함이 가득담긴 책가방을 매고 학교, 학원, 집만을 왕복한다. 청소년들은 학교와 학원에 ‘공부하러’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집에 ‘잠시 눈 붙이러’ 다녀온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고3학생들의 수학능력시험이 끝나자마자 고3 대접을 받으며 치열한 입시 전쟁에 합류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방학에도 학원에 시달리고 있는 청소년들을 지난 일요일과 월요일에 차례로 만나보았다. 인터뷰에 응해준 학생들은 올 해 고교 1학년이 되는 장예린(가명, 15), 박지현(15) 양과 조원준(15) 군이다.

잠잘 시간뿐만 아니라 밥 먹을 시간조차 주지 않는 학원 수업

아이들의 원만한 성장과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에 8시간 정도의 수면을 취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학교 수업에서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학원에 가서 잠을 자야할 어두운 밤에 집에 돌아온다. 대체 언제 학원에 가서 몇 시까지 수업을 받는 것일까?

자진하여 인터뷰에 응해준, 올 해 고1이 되는 장예린(가명,15) 양.
 자진하여 인터뷰에 응해준, 올 해 고1이 되는 장예린(가명,15) 양.
ⓒ 최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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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학원에 가요. 지금은 방학이니까 주로 오후 1시에서 6시까지 학원에 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오후 5시에 학원에 가서 저녁 8시 반 쯤 집에 오구요.” - 장예린(가명, 15)

“학원은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가는데요. 요일마다 가는 시간이 달라요. 어떤 날은 밤 8시에 가서 10시에 집에 오구요. 다른 날은 점심 때 쯤에 가요. 12시에 가서 2시에 와요.” - 박지현(15)

“월요일하고 수요일은 저녁 6시에 가서 8시에 오구요, 화요일하고 목요일은 열두시에 가서 2시에 와요.” - 조원준(15)

세 학생이 다니는 학원들은, 영어와 수학을 전문으로 가르친다. 세 학생들의 대답은 ‘점심 때 쯤’으로 비슷하다. 점심이나 저녁은 어찌 해결하느냐고 물었더니 세 학생 모두 늦게 먹거나 굶는다고 대답했다. 청소년 시기는 성장기로 충분한 수면뿐 아니라 몸에 제 때 영양을 공급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밥까지 굶으며 학원에 매일 다니는 어린 학생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학원은 중요한 내용과 공식을 뽑아 선행학습을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왜 학생들은 끼니를 거르고 잠을 줄여가면서도 학원에 다니는 것일까? 대부분의 학원은 주요과목인 영어, 수학을 위주로 가르치며 종합학원에서는 국어와 사회, 과학 등도 함께 가르치는데, 학교 수업보다 수업진도를 선행한다. 학원에서 하는 선행학습은 중요한 부분만 짚어 빠르게 가르치되 반복해서 가르치므로 높은 학교 성적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 학원을 다니며 직접 선행 학습하는 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각 학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여 그 대답을 한데 묶어 보았다.

학원 수업이 주로 선행학습으로 이루어진다는데, 어느 정도의 선행학습을 하는지?
 
“지금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하니까 예전에 비해 진도가 매우 빨라요. 수준에 맞춰 나눈 반마다 진도 속도를 다르게 하지만 그래도 빨리 나가는 건 같아요. 지금 고등학교 1학년 수학 전 과정을 끝낸 반도 있어요.” - 장예린

“반마다 다른데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내용을 끝내고 다시 그 내용을 복습하고 있어요. 영어는 문법 기초를 배우고 있고 독해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수준의 문제집으로 공부해요” - 박지현

“수학 진도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내용은 다 배웠고, 다시 그 내용을 처음부터 하고 있어요.” - 조원준

매우 진도가 빠른 것 같은데, 그럼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해서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는지?

“시험 때 좋은 성적을 받았어요. 단지 학원에서 시험대비용으로 문제를 많이 풀게 하기 때문이지만요. 학원에서 공부하기 때문에 집에서 따로 공부해야 하는 부담은 없어요. 그렇지만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집에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 장예린

“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해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학교에서 선생님이 깜빡하고 가르쳐주시지 않은 중요 부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줘요. 학원에서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깜빡하신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걸 꼼꼼히 짚어주거든요.” - 박지현

“네. 학교 수업 내용이 이해되지 않을 때, 학원에서 배운 걸 떠올려요.” - 조원준

그럼 학원에서 하는 선행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요. 계속 문제만 풀게 하니까 굳이 필요한 것 같진 않아요. 어려운 문제에 막혀 고민하지 않게 그런 문제를 미리 짚어주고 가르쳐주는 것뿐이니까요.”  - 장예린

“아니요. 꼭 필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선행학습을 하면 좋긴 하지만, 학교 선생님과 학교 수업에 소홀해지게 되요.” - 박지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학원에서 공부하는 걸 집에서 그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 조원준

그럼 학습 진도의 차이를 제외하고 두 수업이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가?

“수학을 예로 들면요. 학원 수업은 공식만 딱 가르쳐줘요. 그냥 이거다, 하고 문제를 풀라고 해요. 그런데 학교는 그 공식이 어떻게 유도되는지 증명하는 내용하고 방법을 다 가르쳐줘요.”  - 장예린

두번째로 인터뷰한, 올 해 고1이 되는 박지현(15) 양
 두번째로 인터뷰한, 올 해 고1이 되는 박지현(15)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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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학원 수업하고 학교 수업에 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학교는 배우는 과목이 많다보니 그냥 넘어가는 부분도 있고, 시험기간에 상관없이 계속 수업진도를 나가는데, 학원은 학교 시험기간에 맞게 시간표를 빨리 바꾼다는 정도의 차이는 느껴요. 학원은 주요 과목 수업에서 학교보다 많은 것을 짚어주죠.”  - 박지현

“학교랑 학원은 별 차이가 없어요. 다만 누가 가르치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같은 내용이라도 학교에서 잘 가르칠 수도 있고, 학원에서 잘 가르칠 수 있는 게 다르니까요.” - 조원준
 
학원의 많은 과제가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 없게 해
 
대부분의 학원들은 선행학습과 학습 과정의 반복체계로 수업을 진행한다. 중요한 공식이나 결과만 짚어 가르치고 학교보다 빠른 속도로 수업을 진행한다. 빠른 학습 속도로 인해 아이들이 공부한 내용을 잊지 않도록 총 학습 과정에 대한 선행학습을 마치면 이를 다시 복습한다. 즉, 학원에서 한 번 들은 내용을 학교에서 다시 듣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두 번 내지 세 번 들은 내용을 학교에서 또 듣는 것이다.

같은 내용이 두 번 넘게 반복되니 아이들이 지루해할 법도 하다.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아이들이 느꼈을 애로 사항에 대해 질문했다. 아이들은 의외로 선행학습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학원의 많은 공부량과 과제량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올 해 고1이 되는 조원준(15) 군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올 해 고1이 되는 조원준(15)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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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나만의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많으면 하루에 한 시간 정도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요. 나만의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학원 숙제나 학교 숙제를 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저나 다른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학원 숙제를 학교로 가져와 학교 수업시간에 몰래 풀기도 해요.” - 장예린

“제 시간에 비해서 학원 숙제가 너무 많고요. 제 뜻과 상관없이 남들 다 쉬는 주말에 자꾸 나와서 보충수업을 시켜요. 쉬고 싶거나 제 나름대로 다른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면, ‘그래서는 높은 점수 못 받는다.’ 라고 학원에서 말해서 억지로 학원에 나오게 해요. 그리고 학원 자체에서 본 시험을 가지고 점수에 따라 공부할 양을 조절해서 나머지 공부를 시켜서 싫어요.” - 박지현

“일단 밤늦게까지 밖에 있잖아요. 잠잘 시간이 부족해요. 그래서 학교에서 쉬는 시간, 점심시간 틈틈이 잠을 자요.” - 조원준

학교에서 따라가지 못하는 학습내용을 보충하고자 다니는 곳이 학원이다. 그런데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어 학원의 수업과 과제가 학교 수업을 방해한다. 과제량이 얼마나 되냐고 물으니 세 학생 모두 하루에 30문제 가량의 수학문제를 풀어야 하고, 100여개의 영어단어도 따로 외워야 한다고 답했다. 장예린 학생의 경우에는 숙제 후, 영어 단어를 확실히 암기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본다. 만약 시험 점수가 좋지 않으면 밤늦게까지 남아 단어를 암기하고 ‘깜지(종이에 틀린 것을 반복하여 써서 빽빽이 채우는 것)’를 해야 한다. 아이들은 이 많고 힘겨운 과제들이 지겹지 않을까. 아이들은 왜 학원을 다닐까. 본 기자의 질문에 대해 세 학생들은 진지하게 답했다.

“엄마가 다니라고 해서 다니고 있지만, 앞으로 고등학교에 가서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요.”  - 장예린

“미리 공부하면 고등학교 수업을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남들도 다 다니는데 저 혼자 학원 다니지 않으면 나중에 뒤쳐질까봐 걱정되기도 해서요.” - 박지현

“혼자 하는 것보다 학원에 다니는 편이 공부하기 수월해요. 학원에 다니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니까요.” - 조원준

세 학생들은 몸이 피곤하고 지칠 정도로 학원이 비록 많은 공부를 시키고, 학교 수업에 방해를 주지만,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 과연 그러할까. 이들이 말하는 도움이란 새로 진학한 학교에서 학습할 내용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는 것을 뜻한다.
학원이 밀집해 있는 수원시 정자동 상가 건물. 한 건물 내에 자그마치 25개의 학원이 밀집해 있다.
 학원이 밀집해 있는 수원시 정자동 상가 건물. 한 건물 내에 자그마치 25개의 학원이 밀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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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인성’ 교육을 학교보다 먼저 가르쳐주지 못한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으로 ‘인성교육의 부재’가 자주 지적된다. 학원보다 학교에서 친구와 어울리고 학교 선생님의 세심한 지도를 받는다면 우리나라의 인성 교육은 한층 나아질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학원에 다니느라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를 잃고 시험 성적이 우수하게 나오는 것에 급급하다보니 정작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심성과 사회성 부분에 많은 빈틈이 보이게 된다.
 
피곤하고 지치지만 미래의 성과를 위해 노력하는 두 학생들을 보며 본 기자는 밝은 미래를 기대하면서도 마음이 씁쓸했다. 세상에는 성적과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존재한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면 피아노도 배우고 여행도 가보고 싶다는 지현 양이나, 직접 아르바이트를 해 땀 흘려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원준 군에게 학원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지 못한다. 학원에 가는 대신 친구들을 만나 마음껏 놀고 싶다는 장예린 양은 학원숙제가 있다며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나갈 준비를 한다.
 
주말인데도 숙제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웬걸. 주중에 내주는 과제량의 두 배는 더 되는 분량의 문제와 230개가 넘는 영어단어가 예린 양을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청소년임을 새삼 느꼈다. 어느 누구든 쉴 수 있는 일요일조차 쉴 수 없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수원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청소년, #학원,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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