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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한나라의 세상'이 된 것 같다.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어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데 이어 현재로서는 제1당인 대통합민주신당마저 한나라당 출신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대표가 됨으로써 명실상부한 '한나라의 세상'이 된 것이다. 올해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설 것을 호언장담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자유신당(가칭)의 존재까지 감안한다면 더욱 더 그러하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창조한국당이라는 야당이 있긴 하나, 한나라당의 가치가 지배하는 현 정치권의 상황에서 그리 큰 변수가 되지 못할 것 같다. 5년 전 정권탈환에 실패했던 한나라당은 영남이라는 총선 텃밭이 건재하여 오히려 더 똘똘 뭉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은 여전히 정체성 혼란과 분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다른 당들도 모두 대선 참패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의 세상, 진보적 가치의 전멸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보수적 정치세력인 한나라당의 가치를 감안하면, 한마디로 진보적 가치의 전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니 이명박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아래 인수위)가 정부 부처의 보고를 받으면서 과거 5공 시절 '국보위' 같은 오만한 행태를 보여도, 오락가락 정책 혼선을 초래해도, '5공식 언론통제 행태'를 보여 사과하는 일이 벌어져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일 5년 전에 노무현의 인수위가 휴대전화 요금 20% 인하를 천명했다면 아마도 한나라당과 보수 신문들이 시장경제체제를 무시하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며 포퓰리즘의 극치라며 난리를 쳤을 것이다. 신용불량자 대책이나 주택정책 등에서와 같이 며칠 사이에 정책이 오락가락했다면 '아마추어 정권'이라며 비판을 퍼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나라의 세상'에서는 과속과 독주를 제어하고 견제할 세력이 없다. 야당들이 대선 참패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사이, 그렇게도 비판언론을 자부했던 보수 신문들은 이명박 인수위와의 밀월관계를 즐기고 있으며 정부 부처나 기관들은 새 정부에 코드를 맞춰 생존을 꾀하기에 급급하다. 지방권력, 중앙권력, 언론권력, 경제권력 모두 하나의 권력으로 몰려가는 '신독재국가의 유령'이 어슬렁거리는 듯하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것이 대운하의 무조건 착공과 교육정책의 혼란이다. 이 사안들은 잘못되면 전 국토와 국민에게 크나큰 재앙이 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며, 다시 돌이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당선인 측은 이미 대운하는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며 밀어붙일 태세이고, 교육정책을 단기적인 경제정책 짜듯이 마구 흔들어 놓아 학생, 학부모, 학교, 사교육시장 전체가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이미 대운하 착공에 대해 외국 사례나 우리 국토의 환경이나 경제적 여건을 들어 여러 전문가들이 비판하고 있다. 벌써부터 주변 지역 땅값이 들썩이는데, 착공을 밀어붙인다면 환경 파괴와 개발 광풍에 휩싸일 것이 명약관화하다. 좁은 국토에서 배가 산으로 가는 이런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 정부에 의해 추진된다는 것 자체가 정신나간 짓이다.

 

배가 산으로 가는 대운하와 사교육만 신이 난 교육정책

 

교육정책은 또 어떤가? 경제를 주무르던 사람들이 교육마저도 시장판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일부 유명사립대학과 사교육시장만 신이 났다. 대학자율화와 고등학교 선택권 확대는 중학교, 초등학교까지 입시 경쟁과 사교육 천국을 만들 것이다. 교육부를 무력화하고 올해 처음 실시된 대학입시 방식을 당장 바꾼다고 설치니, 교육 현장이 고삐 풀린 망아지 꼴이 되어 가고 있다.

 

앞으로 야당 노릇을 할 정치세력들이 이번 4월 총선에서 유의미한 정치세력, 견제세력으로 살아남으려면,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려는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목숨 걸고 비판하고 반대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이것이야말로 최소한의 진보적 가치이며 정치적 존재를 증명할 길이다.

 

이것이 또한 국민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비판과 정책이다. 불도저로 밀어붙이는 식의 대운하 착공을 불안하게 보는 국민들이 많다. 또한 현재 공교육 체계를 흔들고 교육의 시장화와 사교육화를 반대하는 국민들 또한 많다. 이런 국민들의 우려를 대변해 줄 정치세력이 시급하고 절실하다. 4월 총선에서 이것으로 승부하고 평가받아 한나라당의 견제세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선 하루 빨리 대운하를 반대하고, 시장주의적 교육정책을 반대하는 이 두 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 세력의 결집이 필요하다. 이것은 정치적 이합집산이 아니라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 견제 세력을 새롭게 창출하기 위한 가치 통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가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흔들림 없는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한나라당은 그렇게 해서 정권을 되찾았다.


태그:#대운하 , #인수위, #교육시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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